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속도 답답하고 덕심도 사그라들고 했었는데 로투스 스프레드 퍼먹고 기운 내서 급히 쓴 글! 15분짜리에요 다시 안 읽어봤어요 미안해 크리스 에이준 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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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그 장면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졸업식을 하루 앞둔 교내는 차분하게 정돈된 느낌이었다졸업식 식순을 익히느라 예행식도 해보고취악대와 합창단이 각각 리허설 삼아 공연도 했다재학생 대표로 선발된 녀석이 쭈뼛쭈뼛하느라 예행식이 조금 길어져 모두가 야유하곤 했다. 3학년들은 이미 돌아간 듯 했고다른 학년 학생들도 평소보다 일찍 끝난 수업에 다들 삼삼오오 모여 하교하던 중이었다나는 담임이 모아오라고 한 과제물을 모아 교무실에 들렀다어머,수고했어미유키 군미안한데 이 쓰레기통도 좀 비워줄 수 있을까부탁할게하고 말하는 담임의 책상엔 공문이 잔뜩 쌓여 있어서나는 하루쯤 좋은 일을 한다는 심정으로 쓰레기통을 들고 나갔던 것 같다.

 

그렇다나는 결코 그 장면을 보고자 해서 본 것이 아니다.

 

별로 무겁지 않은 쓰레기통을 대강 비우고나는 담임이 주머니에 넣어 주었던 드링크를 비웠다아직 피지 않은 벚꽃이 바람에 흔들린다이제 새로운 봄이 시작된다새로운 팀과 함께빈 드링크 병을 힘 주어 잡고 유리 분리수거 함으로 던지려던 찰나였다소각장 근처벚꽃나무가 잔뜩 심어진 곳에서 인기척이 났다이 시즌 그런 장소는 모두 특정한 목적을 위해 쓰이곤 하지나는 혹시나 분위기를 깰 까봐 빈 병을 조심스레 통에 넣고 돌아서던 찰나에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선배를 좋아해요.

…….

받아주지 않으셔도 됨다.

 

당장 오늘 아침도 공을 받아 달라 조르던 목소리가 낮게 깔린 채로 담담히 마음을 고백하고 있었다그 녀석답지 않게 부끄러움도 없이 조용하다 싶었다그리고 나는 그 녀석이 좋아한다 말하는 선배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사심이 섞이지 않았다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요즘 그 녀석을 멍하니 바라볼 때가 늘었다는 건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지적할 정도였으니.

 

모퉁이를 슬그머니 돌려던 나는 이어지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면?

그냥선배의 넥타이를 받고 싶슴다.

넥타이?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슴다여긴 가쿠란이 아니니까 두번째 단추를 받을 수 없잖아요.

 

그쵸하고 애써 묻는 말 끝이 잔뜩 떨리고 있었다고개를 숙인 녀석의 등이 작게 떨린다나를 등지고 있어서 선배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곧 부스럭하는 소리와 함께 넥타이 없이 맨 셔츠였던 그 녀석의 셔츠 칼라 밑으로 천천히 넥타이가 매어졌다.

 

……. 감사함다.

나도사와무라 널 좋아했어.

……..

앞으로도 응원하마.

선배도미국에서도 잘 할 거라 믿슴다.

 

선배가 그 녀석을 지나쳐간다나는 선배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꼈다한동안 그 자리에 굳어 있던 녀석이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나는 녀석의 팔을 붙잡아 세웠다.

 

그 넥타이누구 꺼야?

….. 미유키 선배.

누구 꺼냐고.

 

녀석은 대답이 없다나는 녀석이 매고 있던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그리고 내 자켓 아래에서 달랑이던 넥타이를 풀어내 녀석에 손에 확 쥐어줬다.

 

선배뭐하는 검까!!!

내 꺼 써.

?

내 꺼 쓰라고이거 말고.

 

녀석을 지나쳐 소각장으로 걸어 갔다아까 쓰레기통을 비웠던 자리에 녀석의 목에 매어 있었던 넥타이를 집어 던졌다.

 

기숙사 가면 네 넥타이 나한테 줘.

….. 선배.

안 그러면 내일 학년 주임한테 걸린단 말야♡

…….

이따 연습 시간에 보자.

 

쓰레기통을 들고 소각장을 빠져 나왔다남겨진 녀석의 얼굴이 어떤지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나는 결코 그런 장면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녀석의 얼굴도버려진 넥타이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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