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엔님 늦었지만 다시 한 번 생일 축하드려요!

이 바로 전에 올린 글 http://stemofdia.tistory.com/53 의 전모가 드러나는 (?) 내용입니다 ㅎ헿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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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가볍게 손을 흔든다.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여 알아 봤다는 신호를 하고 남자가 앉아 있는 자리 가까이까지 다가갔다. 자신의 몫으로 시켜둔 듯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물잔에 송글 송글 작은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 걸 보면 약속한 시간 전에 미리 와 있었던 것 같았다. 크리스는 남자의 앞 자리 의자를 빼서 앉았다. 남자가 씨익, 익숙한 미소를 지었다. 카페 창가 너머에서 들어오는 햇빛에 안경이 반짝 빛났다.

 

많이 따뜻해졌죠?”

그렇네. 이제 곧 4월이니까.”

봄인데 선배, 데이트는 안 하세요?”

“…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직원이 가져다 준 메뉴판을 넘기던 크리스의 손길이 질문을 듣는 동시에 잠시 멎었다. 핫핫, 오늘 제가 연락 드린 이유랑 좀 통하는 게 있어서요. 넉살 좋은 웃음 소리를 그냥 넘겨 들을 만큼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리스의 이마에 살짝 주름이 생겼다.

 

여자친구랑 싸우셨나 보네요.”

누구 덕에.”

, 설마 여자친구 분이 제가 좋대요?”

 

그럼 곤란한데. 진심으로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짓는 미유키 카즈야를 보고 크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직원을 불러 따뜻한 차 한 잔을 부탁했다.

 

오늘은 커피 안 드시네요?”

“…. 지금 마셨다간 속이 쓰릴 것 같아서.”

핫하, 선배. 건강 관리는 확실히 하셔야죠~”

너랑 만난다고 데이트도 포기했다. 용건만 짧게 얘기 해.”

 

음료를 벌컥 벌컥 들이킨 미유키가 음, 그게 말이죠. 하고 입을 열었다.

 

크리스와 미유키가 같은 대학에 진학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엔 야구는 취미로 남겨놓기로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건 그라운드가 아니라 학교 근처의 식당이었다. 스포츠과학과 신입생들을 데리고 온 크리스와, 경영학과 선배들을 따라온 미유키. 고등학교에 이어 다시 선후배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미유키는 첫 상담을 부탁한 날 인사말처럼 말을 꺼냈다. 식당에서 만난 개강 첫날 이후 미유키는 2주 전, 크리스에게 개인적으로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 세이도 고등학교에 남겨두고 온 첫사랑과 작년 코시엔 이후 처음으로 연락이 닿았다는 것이었다. 최근 연애를 시작한 크리스는 왜 자신을 상담역으로 골랐냐고 물었고, 미유키는 멋쩍은 듯 웃으며

 

크리스 선배가 가장 잘 알 것 같아서요.’

 

라는 대답을 했었다. 그렇게 웃는 미유키의 모습은 처음 보았고, 또 크리스 본인이 알 것 같다고 한 걸 봐서는 야구부 매니저들 중 한 사람인 것 같아 크리스는 흔쾌히 연애 상담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저께, 여자친구가 전화하기 30분 전, 상담할 일이 또 생겼다는 미유키의 말을 먼저 들은 크리스는 여자친구와의 벚꽃 데이트를 선약이 있어서.’라는 어정쩡한 말로 거절해 그녀의 분노 섞인 잔소리를 듣고 막 헤어진 참이었다. 잔뜩 화나 있을 그녀를 생각하며 크리스는 짐작하고 있던 바를 말했다.

 

지난 번에 말한 그 애 얘기야?”

, 지난 주말 학교에서 OB 모임이 있었잖아요.”

무슨 일이 있었나 보지?”

그게고백을 받았어요.”

 

답지 않게 말을 질질 끌던 미유키가 핫하 하는 웃음소리로 쑥스러움을 덮으려고 했다. 생각보다 얘기가 짧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 크리스가 잘됐네. 하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날 MT가 있어 참석하지 못했던 모임이기에 궁금한 것도 있었다.

 

그래서 사귀기로 했어?”

, 그게 또…. 이야기하자면 길어요.”

자세하게 말해 봐.”

제가 고백은 꽤 받아봤다고 생각하는데, 화장실 앞에서 받은 고백은 그게 처음이었어요.”

화장실?”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가 되풀이하자 미유키가 큼큼,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목이 타는지 음료를 반쯤 비워냈다.

 

“OB 모임 대강 끝나고 슬슬 뒷풀이 장소로 이동하려는데 제가 잠깐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비웠거든요. 그때 따라왔던 모양이에요.”

대단하네.”

계속 둘만 있을 기회를 노린 것 같아요. 고백 받는데 중간에 울기 시작해서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그 정도면 꽤 귀여운 편이군. 게다가 네 첫사랑이라며.”

그렇죠. 근데….”

 

미유키가 마저 이야기하려던 순간, 직원이 크리스가 주문한 홍차를 들고 나타났다. 조그만 비스킷과 함께 찻잔을 내려놓고 사라지는 직원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크리스가 이야기를 재촉했다.

 

얼굴이 빨개져서는 시선을 못 맞추는데, 우는 걸 달래다가 그게 너무 귀여워서 키스해버렸어요.”

? 너도 좋아한다고 말은 한 거야?”

아뇨, 핫핫하.”

사귀기 전부터 스킨쉽이라니, 어지간히도 좋았나 보네.”

저도 키스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는데 이걸로 대답이 된 것 같아서 그냥 아무 말 안 했어요.”

둘 다 마음을 확인했으니 해피 엔딩 아닌가?”

….”

 

크리스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삼킬 때까지 미유키는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올해 코시엔 끝날 때까지는 안 사귀려고요.”

????”

 

미유키의 조그만 배려 덕분에, 크리스는 뜨거운 홍차에 사레가 들리는 일을 피했다. 놓칠 뻔한 찻잔을 가까스로 테이블 위에 내려 놓은 크리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둘 다 서로를 좋아하고, 키스까지 했다며. ??”

그 녀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방해하다니, ?”

지금 그 녀석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데 이미 졸업한 제가 끼어 들게 되면 많이 힘들 게 분명하거든요.”

그거, 그 애한테 얘기는 한 건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한 크리스가 진지하게 질문했다. 남은 음료를 한 번에 다 마신 미유키가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신경 쓰게 만들 것 같아서요. 그냥 혼란스러운 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더 편할 거에요.”

 

미유키는 담담하게 말을 끝맺었다. 크리스는 복잡해진 마음에 찻잔을 손에 쥐고 들었다. 목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홍차의 빈자리에 갑작스럽게 떠오른 질문이 차 올랐다.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은데, 왜 나에게 얘기한 거지?”

지난 번에도 말씀 드렸던 것 같은데, 선배가 그 녀석을 가장 잘 이해할 것 같아서요.”

내가? 요시카와를?”

, 매니저가 아닌데.”

매니저가 아니라고?”

제가 선배에게 부탁 드린 건 선배가 그 녀석 포수였기 때문인데요?”

 

다시 차를 들이키던 크리스는 이번에는 사레가 들리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터져 나오는 기침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개까지 숙여가며 콜록대던 크리스는 일어선 미유키의 그림자에 겨우 얼굴을 들었다.

 

그냥, 선배는 알고 계셨으면 하기도 했어요.”

 

계산은 제가 할게요. 계산서를 들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에 멈췄다고 생각한 기침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크리스는 황망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 해 여름이 끝날 때까지 크리스는 미유키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사와무라가 선배에게 상담하고 싶은 게 있다고 메일을 보낸 순간 어쩔 수 없이 학교 앞 그 카페에 다시 앉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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