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급습

연성/글 2014. 6. 3. 00:10

킁님께 써드리기로 했던 미사와... 인데 역시나 한달 늦은 뒷북잼 ㅠㅠㅠㅠㅠㅠ

사랑합니다 킁님.... 파스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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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키는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제 연습 후에 다같이 몰려 가서 마셨던 기억이 늦은 주말 아침 침대 위를 둥둥 채우고 있었다. 안경도 벗지 않고 잠에 들었는지 콧잔등이 시큰하게 아프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다잡고 슬리퍼를 직직 끌며 방문을 열자 평소에 거실에서 마주쳐도 인사만 주고 받던 룸메이트가 서 있다. 무슨 일이냐 묻는 미유키에게 그는 머쓱한 미소를 아침 인사 대신 되돌려주었다. 그러고는 애인이 온다면 미리 말을 해주지 그랬냐며 웃고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어 보이더니 좋은 하루 보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현관문 너머로 후닥닥 사라진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파트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것을 들으며 멍하니 서 있던 미유키는 급한 일인가보다 하고 멋대로 짐작했다.

 

아침부터 난리야…”

 

뒤통수를 벅벅 긁은 미유키는 거실 구석 군청색 담요가 걸쳐진 소파에 다가가 앉았다. 먼지가 풀썩 이는 걸 보니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축축 늘어지는 몸은 오늘치 기초 훈련량을 끝내면 완전히 녹아버릴 만큼 지칠 게 뻔했다. 룸메가 없다는 걸 변명 삼아 은근슬쩍 청소를 다음주 주말로 미루며, 미유키는 파트너 어쩌고저쩌고 횡설수설하던 룸메의 말을 떠올렸다. 반사적으로 지금쯤 잠자리에 들었을 일본의 누군가가 생각에 꼬리를 물고 머리 속으로 떠오른다. 매일 아침, 자기 전에 꼭 좋은 아침이라고 연락이 오긴 했었는데아직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어젯밤의 미유키처럼 그도 친구들과 한 잔 하고 있는 거겠지. 담요를 끌어 내려 슬슬 덮으며 미유키가 다시 눈을 감으려던 찰나였다.

 

사람이 왔는데 자는 검까!!”

“…… 술이 덜 깼나... 헛소리가 들리네.”

눈 감지 마!!”

 

곧 멱살이 붙잡히듯 상체가 번쩍 기대있던 방향과는 반대로 쏠렸다. 그제서야 느릿하게 눈을 끔뻑이던 미유키는 눈 앞을 잠시 의심했다. 소파 앞에 선 사와무라가 정신 차리십쇼!! 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칼칼하게 마른 목으로 몇 번 목소리를 고른 미유키가, 여전히 멍한 시선으로 물었다.

 

사와무라?”

그럼 내가 누구겠슴까!!”

여기 미국 맞지?”

아까 당신 룸메 봤잖아!!”

 

씩씩대던 사와무라가 제 풀에 지쳤는지 미유키의 티셔츠를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소파에 몸을 기댄 미유키가 빤히 사와무라를 올려 보다가 안경을 벗어 옷자락에 쓱쓱 닦는다.

 

아직도 꿈 같슴까?”
아니왜 그렇게 새까매졌나 싶어서.”

당신도 까맣게 탔거든!!”

그리고 키도 큰 것 같아서.”

 

이어지는 말에 사와무라가 그, 그쵸? 하고 어색하게 되물었다. , 조금 정도는. 하고 수긍하자 사와무라가 이제 내가 선배보다 클 검다! 하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건 아닐 것 같은데, 하고 대답하고 싶은 것을 일단 꾹 눌러 삼키고 미유키는 두 팔을 느슨히 벌렸다.

 

이리와.”

 

사와무라는 말없이 미유키에게 다가가 안겼다. 얇은 티셔츠 너머로 쿵쾅대는 소리가 듣기 좋다. 미유키는 그대로 가만히 팔을 두르는 사와무라의 등을 토닥였다.

 

? 보고 싶어서 죽을 뻔 했다고?”
-.”

연락도 없어서 서운했다고?”
아니라니까요.”

핫핫, 근데 그럼 왜 온 거야, 여기까지는.”

 

달래듯이 건네는 말에 사와무라가 미유키에게 몸을 기대었다. 겹쳐진 체온이 오랜만이라는 감각을 일깨우듯 조금 뜨겁다. 사와무라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얘기해주기 싫은데요.”

이야, 이제 튕길 줄도 알아?”

예쁜 구석이 있어야 얘기를 해주든 말든 하지 않겠슴까.”

 

불만을 잔뜩 품고 주욱 나온 볼 위에 뽀뽀하자 사와무라가 팩 고개를 돌렸다.

 

이래도 안 예뻐?”

전혀 안 예쁨다.”

 

사와무라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미유키는 핫핫 웃고는 사와무라의 어깨로 손을 옮겼다. 전보다 꽤나 단단해진 어깨가 만져졌다. 반팔 셔츠의 소매 아래로 보이는 뽀얀 팔뚝이 건강하게 탄 다른 곳과는 선연한 대비를 이루었다. 실내 연습장보다는 그라운드를 선호하는 성향은 아직도 그대로인 듯 했다.

 

내 말은 죽어도 안 듣더니 요즘은 트레이닝도 열심히 하나 보네.”
, 그렇슴다.”

지금 포수가 마음에 드나 봐?”

 

허리를 쓰다듬던 손이 옷 아래로 느껴지는 근육을 마음껏 주물거리기 시작한다. 몸을 체크하는 것이 아닌 명백하게 다른 의도를 띄는 손길을 거부하지 않으며 사와무라는 안경 너머 눈빛 속 날카로움을 읽어냈다.

 

선배랑 다시 배터리 하려면 이것도 부족함다.”

 

미유키가 잠시 말문이 막힌 사이에 사와무라가 왼손을 올려 미유키의 안경을 벗겨냈다. 그리고 미유키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가볍게 오고 가던 입맞춤이 조금 깊어지려는 순간 사와무라가 고개를 살짝 돌려 입술을 떼어냈다. 갑작스레 끊긴 키스에 뚫어져라 내려바도는 미유키의 시선을 헤헹 하는 미소로 맞받아친 사와무라가 입술을 핥으며 씨익 웃었다.

 

이 정도는 해야 예쁜 짓 아니겠슴까.”
핫핫하, 내가 졌어.”

 

미유키는 사와무라를 강하게 끌어 안았다.

 

보고 싶었어, 사와무라.”

나도 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사와무라의 허리를 쓰다듬던 미유키의 손이 바지 속으로 스윽 들어갔다.

 

여기까지 온 거, 아깝지 않게 예쁜 짓 잔뜩 해줄게♡

“… 적당히 해주셨음 좋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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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님께 써드리기로 했던 후루사와인데 너무 늦어서 면목이 없네요.. 헣허허헣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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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무라는 목청 높여 소리를 지르다가 칼칼해진 목에 큼큼 헛기침을 했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일어서서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이유도 물병을 찾으러 몸을 숙였을 때였다. 경기장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는 여기가 어디인지 옆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순간 떠올리지 못할 정도였다. 마운드에 올라선 것도 아닌데 자꾸만 손에 땀이 차서 미끄러지는 손을 바지춤에 슥슥 문질러 닦는데, 그 손을 덥석 잡아오는 손길에야 사와무라는 펜스 너머에서 의식을 떼어낼 수 있었다.

 

사와무라, 앉아. 안 보여.”

, 어어.”

 

탁하게 잠긴 목소리에 조금 놀란 사와무라가 주섬주섬 자리에 앉자 후루야는 손을 놓는 것도 잊어버리고 다시 그라운드에 집중한다. 좌석 아래에 놓아 두었던 물병을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더듬더듬 찾으며 사와무라는 후루야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끔 긴장 섞인 호흡으로 목울대를 울리는 것만 제외하면 후루야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경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와무라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곧은 시선이 경기장에 직구처럼 들어가 박힌다. 조용하게 불타고 있는 시선이 마치 한창 시합 중인 그와 마주하는 듯 했다. 사와무라의 오른손을 잡고 있는 손이 금방이라도 공을 던지고 싶은 것처럼 움찔움찔거릴 때마다 후루야를 바라보고 있던 사와무라도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곧이어 양 옆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에 사와무라 또한 황급히 시선을 경기장으로 돌렸다. 날아온 공에 후루야가 벌떡 일어섰다. 사와무라도 끌려가듯 몸을 일으켰다가 펜스를 아슬아슬하게 넘어온 공으로 얼른 손을 뻗었다.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 어억?!”

공을 받으려다가 순간 끌어당겨진 손에 중심을 잃은 사와무라가 비틀, 하고 후루야 쪽으로 엎어졌다. 다행히 후루야가 지탱하듯 잡고 있던 손 때문에 넘어지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사이에 홈런볼은 뒤쪽 줄에 앉아 있던 남자의 손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 좋은 기회였는데.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아쉬운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나갔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순간에야 여전히 힘을 주어 잡고 있던 손을 알아차렸다. 슬그머니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르려는 마음을 애써 모른 척 고개를 돌리면서 슬쩍 손을 놓으려는데 홈런볼을 잡은 남자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어이구, 하고 그를 타박했다.

 

그 공 애들 줘라. 홈런볼은 원래 애들 주는 거여.”

 

머쓱해진 남자가 가볍게 던진 공에 후루야와 사와무라 모두 몸을 돌려 팔을 내밀었다가 어정쩡하게 공을 사이에 두고 다시 손을 잡은 격이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할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어지간히 욕심 많은 놈들이구만. 너희들, 투수지?”

!!”

.”

반으로 나눌 수는 없으니 알아서 정해라, 허허.”

 

예나 지금이나 투수들은 이기적이라니까. 흘리듯이 혼잣말을 남긴 할아버지는 홈런 장면을 되풀이하는 전광판으로 시선을 올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 두 사람도 몸을 돌려 경기장을 향했다.

 

 

결국 그날 경기의 승패는 알 수 없었다. 한창 동점으로 따라붙은 6회 초에 걸려온 전화 때문이었다. 쿠라모치는 사와무라가 핸드폰 플립을 열자마자 야!!! 하고 소리질렀다.

 

너 지금 어디야!!!’

야구장인데요?”
지금 몇 시인지는 알아?!’

그러니까 일곱 시.”

점호 한 시간 남았으니까 얼른 돌아와라, ?’

 

너 때문에 기합 받으면 오늘밤은 내쫓을 거다. 협박조로 끝나는 말에 사와무라가 서둘러 플립을 닫았다. 그리고 경기에 여전히 집중한 듯한 후루야를 쿡쿡 찔렀다.

 

, 어쩌지? 들어가야겠는데.”
“….
좀 더 보고 싶은데.”
나도 보고 싶긴 한데늦었다간 운동장에서 자게 생겼다.”

 

후루야가 필드에 꽂혀 있던 시선을 스윽 사와무라에게로 옮겨 사와무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경기장을 바라본다. !! 사와무라가 소리치자 후루야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내 방에서 자면 되잖아.”

?”

선배들도 없고…”

 

후루야가 답지 않게 조금 머뭇거렸다.

 

내 침대에서 같이 자든가.”

!!!”

 

사와무라가 잔뜩 얼굴을 붉힌 채 버럭 소리치자 시끄럽다 이놈아! 하고 뒤에서 할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자라목을 한 사와무라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네 방에서 자면 내일 연습 제대로 못하잖아.”

살살 하면 되잖아.”

뭘 살살 하는데?!!”

 

후루야가 냉큼 입을 다무는 걸 본 사와무라가 잔뜩 씩씩댔다. 벗어두었던 후드티를 주섬주섬 집어 들은 사와무라가 후루야의 주머니를 가리켰다. 부우웅, 아까부터 진동하던 핸드폰을 애써 가리려던 후루야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자리를 완전히 뜨려던 순간 6회 초가 더 이상의 득점 없이 끝이 났고, 그라운드 정비 후 이어지는 경기에 엉덩이만 띄운 채 경기를 지켜보던 후루야와 사와무라가 경기장을 나선 건 8시 반이 넘어가던 시각이었다.

 

 

결국 점호에 늦어 쿠라모치에게 밤새 달달 볶인 사와무라는 다음날 아침 식당에서 만난 후루야에게 잔뜩 성질을 냈다. 휑하니 아침 런닝을 하러 사라지는 사와무라의 뒷모습에 하루이치가 후루야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에이준 군이랑 더 가까워지겠다고 데이트하려던 거 아니었어?”
.”
근데 더 멀어진 것 같은데…”
“….
그런가?”

 

기껏 야구장 표를 구해줬더니 분명히 둘 다 야구만 보다 왔을 게 뻔했다. 하루이치는 앞으로 후루야가 고민이 있어 보이는 얼굴을 할 때는 먼저 말을 걸지 않기로 마음 속으로 결심했다. 나서서 도와줘 봤자 나아지는 게 없으니 도와준 사람도 허탈하다.

 

그래도 난 좋았는데.”

 

후루야는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손 안에 빠듯하게 잡히는 야구공의 감촉이 따끈하고 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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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 타는 걸로 장난하는 미유키는 당해봐야!! 성반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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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끝내고 씻고 나와서 옷을 갈아입을 때에야 미유키는 유니폼 바지 무릎 부근 솔기가 뜯어져 있는 것을 알아챘다. 며칠 전 시합에서 찢어진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할까. 새 유니폼을 꺼내기엔 별 크지 않은 흠집이었지만 그냥 두었다가는 더 벌어져서 결국 완전히 찢어질 게 뻔했다.

 

직접 꿰매는 건 귀찮고….’

 

머리의 물기를 털면서 욕실을 나서는데, 그라운드 언저리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오케이. 미유키는 유니폼 바지를 한 손에 덜렁 덜렁 들고 씨익 웃으며 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내일 시합 준비를 위해 매니저들이 좀 늦게까지 남아 있을 거라고, 매니저들 일이 끝나면 역까지라도 데려다 주라고 타카시마가 슬쩍 언질을 주었던 게 생각이 났다. 목소리가 완전히 들릴 만큼 가까이 가자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매니저들은 이미 다 돌아간 모양이었다. 나야 좋지.

 

이것 좀 꿰매어 달라고 하고, 데려다 준다고 하면 좋으면서 아닌 척 해주겠지.’

 

근처까지 다가가 사와무라! 하고 그녀를 놀라게 하려던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목소리에 이어서 흘러나오는 다른 목소리 때문에 순간 입을 닫았다. 발소리를 조금 낮춰서 운동장 벤치 옆 코너까지 갔을 때였다.

 

좀 해주세요, 선배.”

내가 네 보모냐?”
보모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전 선배가 달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가장 많이 도와주신 분이니까요.

한 학년 어린 후배의 말에 사와무라가 잠시 멍해졌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더니 코슈가 줄곧 내밀고 있던 것을 낚아챘다.

 

“…. 이번만이야.”

감사합니다.”

 

툴툴대는 듯한 목소리가 수긍의 뜻을 내어놓자 코슈의 얼굴에 확 생기가 돈다. 미유키는 바지를 들고 있던 손에 꾸욱 힘을 주었다. 벤치 앞에 서 있는 코슈를 한 번 흘낏 본 사와무라가 뭐해, 앉아. 하고 오른쪽에 놓여 있던 반짇고리를 벤치 밑으로 내려 놓았다.

 

“1군 올라가서도 열심히 해라.”
안 그래도 더 열심히 할 거에요.”

너 같은 놈이 꼭 건방져져서는 나태해지더라.”

안 그럴 거에요.”

 

주고 받는 대화 한 마디마다 사와무라의 손가락이 코슈의 등 번호 위를 한 땀씩, 정성스럽게 바느질했다. 시침 핀을 꽂아둔 번호판과 유니폼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손가락을 한참 동안 조용히 내려다 보던 코슈가, 윗면과 오른쪽 면이 완전히 고정되었을 즈음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 지금 사귀는 사람 없죠.”
그건 왜 물어.”

 

사와무라가 퉁명스레 대답하며 바삐 손을 움직였다. 벌써 9시가 넘었다. 슬슬 돌아가야 내일 아침 시합 시간에 맞춰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사와무라의 손에 시선을 집중하던 코슈가 고개를 들어 사와무라를 빤히 바라봤다.

 

근데 좋아하는 사람은 야구부에 있죠?”
“………..”

 

침묵을 고수하던 사와무라가 앗, 하고 조그맣게 신음 소리를 냈다. 바늘이 유니폼을 붙잡고 있던 오른손 검지를 찔러 방울 방울 피가 솟았다. 코슈는 사와무라의 손목을 잡았다.

 

그 사람 대신이라도 좋으니까 저랑 사귀어요.”

???”
저 선배 좋아해요.”

놀리지마.”

장난 아니에요. 그래서 선배한테 부탁 드린 거에요.”

 

손을 빼내려던 사와무라는 억센 악력에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핏방울이 동그랗게 손 끝에 맺혀 있었다. 그 손가락을 자신의 유니폼으로 닦으며 지혈하기 시작한 코슈가 말을 이었다.

 

선배가 등 번호 달아주시면, 어떤 시합이든지 거뜬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

 

입술을 달싹이던 사와무라가 그대로 멈추었다. 코슈는 사와무라의 손을 감쌌던 유니폼을 걷어냈다. 어느새 피가 멎어 흔적도 남지 않은 손 끝에 가볍게 입을 맞추자 사와무라가 살짝 몸을 떨었다.

 

대답은 내일 시합 끝나고 해주세요. 늦었으니까.”

“……”

오늘은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사와무라의 손을 잡고 코슈가 몸을 일으켰다. 맥없이 딸려간 팔을 지켜보던 사와무라는 입술을 깨물다가 곧이어 일어섰다. 사와무라가 내려놓았던 반짇고리를 챙기고, 코슈는 벤치에 걸쳐 두었던 자신의 카디건을 사와무라에게 입혔다. 그리고 앉아 있느라 구겨져 있던 사와무라의 옷매무새를 대강 다듬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카디건 단추를 다 채운 코슈가 사와무라의 손을 다시 잡았다.

 

안 춥죠?”
“……
…”

 

조용히 흘러나온 대답에 코슈가 잡고 있던 사와무라의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두 사람은 그대로 그라운드를 가로 질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미유키는 발걸음을 돌려 기숙사로 향했다. 유니폼을 힘주어 쥐고 있던 손은 아까부터 피가 통하지 않아 저렸다. 내일이 저 건방진 후배가 1군으로 참가하는 첫 시합이다. 언제부터 깨물고 있었는지 모를 입술을 다시금 짓씹었다. 머리 속과 마음 속이 모두 시꺼멓게 활활 타오르는 감각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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힝님 생일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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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싱글 웃고 있는 저 낯짝이 가증스럽다. 어쩌다가 내가 이 선생님 편집자를 맡게 되어선. 사와무라는 들고 있던 피크닉 바구니 손잡이를 힘주어 잡았다. 사와무라의 시선을 눈치챈 미유키가 사와무라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왜? 새삼스레 반했어?"

"입 좀 다물어 주십쇼, 선생님."

"한 대 치게?"


미소만큼 짜증나는 목소리에 사와무라가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미유키를 말로 이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미유키의 말에 사와무라는 바구니를 들고 있지 않았더라면 진심으로 미유키에게 한 방 날릴 뻔 했다.


"난 에이준 군한테라면 맞아도 좋은데."

"그만 좀 놀리십쇼!!!!!"


미유키의 말에 일일히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사와무라는 이를 갈며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에게 미유키가 목적지를 말하는 것을 들으며 사와무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 



갈 곳이 있다고 아침까지 자신이 말하는 것들을 준비해서 작업실로 오라던 미유키의 말에 새벽부터 일어나느라 피곤했다. 시간을 맞춰서 갔더니 선생님께서는 숙면 중. 멱살을 잡고 싶은 마음을 꾸욱 참고 흔들어 깨우자 갑자기 껴안으려고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었다. 어찌저찌 깨워 놓자 아침밥은? 하고 태연하게 묻는 얼굴에 이를 갈며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커피까지 마신 후에야 미유키는 느적느적 씻으러 갔고, 그제서야 사와무라는 쇼파에 잠시 앉을 수 있었다. 가볍게 입은 미유키가 사와무라가 늘어져 있는 쇼파 앞에 섰다.


"다 챙겨 왔지?"

"네..."

"오케이, 가자!"

 

평소의 나른한 분위기와는 달리 꽤 설레어하는 듯한 얼굴에 의외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뭐 타고 가시게요? 하고 사와무라가 묻자 미유키는 '난 새벽까지 마감해서 운전하기 싫은데.' 하고 속이 터질 만한 대답을 내어 놓았다. 결국 사와무라는 여태까지 쌓인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마감, 저도 같이 했지 말임다!!"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할 수록 속이 쓰려오는 것만 같아서, 사와무라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눈을 떴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온통 푸르고 파랗다. 계절은 어느새 봄을 지나쳐 여름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조잘조잘 말이 많았던 미유키는 언제 가지고 나온 건지, 묵묵히 책을 읽고 있다. 따스한 날씨, 나지막히 흘러 나오는 클래식, 그리고 요람처럼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차 안에서 사와무라는 다시 스르륵 눈을 감았다.



도착한 곳은 평일 아침이라 한적한 어느 공원이었다. 공원 한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하천 위로 늘어진 벚나무 가지가 아침 햇빛을 받아 파르랗게 빛났다.


"뒤늦은 꽃구경임까..."

"뭐, 겸사 겸사."


미유키는 사와무라보다 한 걸음 앞서 걸어나갔다. 미유키를 먼저 스친 봄바람이 연한 벚꽃 향을 풍겼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하천 위로 놓인 돌다리를 건넜다. 벚나무 사이로 난 계단을 올라가 그 옆에 조금 도톰하게 쌓인 둔덕 위에 돗자리를 펼친 미유키가 사와무라에게 눈짓을 했다.


"여기 앉자."

"꽃도 다 졌지 않슴까."

"그래도 운치 있지 않아? 생기도 느껴지고."


돗자리에 누워 벚나무를 바라보며 미유키가 씨익 웃었다. 사와무라는 조용히 바구니를 내려놓고, 미유키의 옆에 앉았다.


"에이준 군도 누워봐. 되게 편한데."

"어떤 분 덕분에 누우면 바로 잘 것 같아서 말임다."

"핫핫하, 미안해."


골이 난 사와무라의 말에 웃음기 섞인 사과로 대답하며,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몸을 뒤에서 끌어 안아 눕혔다. 


"뭐하시는 검까!!"

"자도 되니까 같이 눕자~"


생각보다 미유키의 팔 힘이 의외로 강해서, 사와무라는 꼼짝없이 안겨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끊어 놓고 시간이 없어서 다니지 못한 헬스장 회원권이 갑자기 눈 앞에 아른거렸다. 예전보다 체력이 좀 떨어진 것 같긴 했었는데... 팔 근육을 만져보는 사와무라에게 미유키가 말했다. 


"그 상태로 저기 나무들 한 번 봐봐."

"뭐가 보인다고 아까부터...!!"


사와무라가 그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놀란 표정의 사와무라를 힐끗 본 미유키는 베고 있던 책을 꺼내어들고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 듬더니 누운 채로 책을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책이 미유키의 얼굴 위로 그림자를 남겼다.


"'그는 벤치에 앉았다. 그녀도 따라와 앉았다. 꽃은 이미 다 지고 없었다. 그 대신 새싹이 꽃자리마다 움 터 있었다.'"

"......"

"'소녀가 말했다. 우리는 꽃이었던 게 아닐까. 소년은 말없이 소녀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


미유키가 놀라 굳어진 사와무라의 손을 잡았다. 사와무라는 풍경을 내려다보던 시선을 가까스로 미유키에게로 옮겼다. 안경 너머로 사와무라와 한 번 눈빛을 주고 받고, 미유키는 다시 책을 보았다.


"'소년이 말했다. 내년 봄에 이 곳에서, 다시 만나자.'"

"... 당신이 어떻게 그 책을..."


책을 덮은 미유키가 씨익 웃었다.


"원래 이 자리에 벤치가 있었는데, 재작년 여름 태풍 때문에 부서졌어."

"그럼 당신이...!!"

"수업 땡땡이치고 여기 누워 있다가 갑자기 그 장면이 딱 떠오르더라고."


책 표지는 아무 글씨도 없이 온통 까맸다. 자세히 보니 책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원고 묶음에 가까웠지만 사와무라는 책의 제목을 아무 어려움 없이 떠올릴 수 있었다. 


"봄."

"원제는 청춘이었는데 그때 담당자가 너무 촌스럽다고 바꾸래서."


미유키는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그 대신 원고 묶음을 사와무라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담당 편집자?"

"어떻게 생각하냐니..."

"여름을 내는 게 좋을까?"


사와무라는 멍하니 미유키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미유키는 마음 한 구석이 잔뜩 간질간질해지는 것만 같았다. 8년 전 네가 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도 방금 전 같은 표정을 지었을까?


"그 안에 '여름' 원고도 들어 있어. 그걸 읽은 네 의견을 듣고 싶어."

"그게, 무슨... 저, 저는 아직 햇병아리고...!!"

"어려운 건 아냐. 그냥 읽고 난 후의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은 것 뿐이니까."


미유키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와무라의 뒤에 놓여 있던 바구니를 끌어 당겼다. 


"일단 밥부터 먹자."


원고 값은 에이준 군의 정성 어린 도시락으로 받을게.

미유키의 장난스런 목소리에야 사와무라는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멋대로 도시락을 꺼내 펼치기 시작하는 미유키에게 신간 하나로 퉁칠 수는 없슴다!! 하고 외쳤다. 이미 샌드위치를 하나 꺼내어 한 입 물은 미유키가 웅얼거리며 키스라도 해주리? 하며 빵부스러기가 묻은 입술을 내밀었고 사와무라는 더럽다며 얼른 피했다. 사와무라의 무릎 위에 놓인 '봄' 위로 때늦은 벚꽃잎이 팔랑이며 내려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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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엔님이 트위터 해시태그   를 단번에 맞히셔서 ㅋㅋㅋㅋ 드리는 글입니다~~

리퀘 키워드는 비밀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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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매미 소리가 아직 후덥지근한 초가을 저녁 공기를 갈랐다. 코 끝에 와 닿는 가쁜 숨결 위로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면 눈 앞의 사와무라가 붉어진 눈매로 따라 웃었다. 그 모습이 못내 사랑스러워서 코 끝 위에 한 번 더 키스를 남기자 사와무라가 간지럽다며 미유키를 밀어냈다. 다시 시선이 마주치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템포로 느릿하게 눈이 감긴다. 한 뼘 더 가까워진 찰나, 바스락대는 소리에 사와무라가 화들짝 놀라더니 두 걸음 뒤로 멀어졌다. 한 번 심호흡할 시간이 지난 후에, 실내 연습장의 열린 문 사이로 카와카미가 나타났다.

 

미유키, 감독님이 부르시던데?”

“10분 내로 갈게.”

그리고 내일 투수진 배치도 전하라고 하셨어.”

 

카와카미가 손에 들려 있던 종이 한 장을 팔락였다. 고개를 끄덕인 미유키는 카와카미의 발걸음이 멀어지자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는 사와무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긴장해?”

, 저희 비밀 연애 중 아님까!”

, 그렇지.”

 

너의 일방적인 비밀 연애지만. 덧붙이고 싶은 말을 꿀꺽 삼키고 미유키가 대답했다. 사와무라가 큼큼, 헛기침을 했다.

 

선배는 주장이고…. 일단 안 알려지는 게 좋다고 생각함다.”

 

제 딴에는 제법 진지하게 말한 건지 표정이 단단하게 굳어 있다. 그래, 너 좋을 대로 해라. 미유키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유키가 사와무라에게 고백한 건 여름방학 끝 무렵이었다. 좋아하는 감정을 확연하게 티 내면서도 고백하려는 시도조차 없길래 참다 못한 미유키가 슬쩍 찔러본 말 한 마디에 사와무라는 와르르 무너졌다. 달래기 위해 껴안은 몸이 잔뜩 굳어 있어서, 사와무라의 대답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대로 분위기 좋게 이마에라도 입 맞추려던 순간 펜스 너머 날아온 공만 아니었더라면 꽤나 청춘의 한 장면 같았을 것이라고 미유키는 생각했다. 어쨌든 아침 연습에 늦은 벌로 여름 이후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 제거를 맡은 사람과 그 감시를 명분으로 추가 연습에 빠져 있던 사람은 단번에 운동장 구석으로 향하는 시선들을 느낄 수 있었다. 공을 주우러 가볍게 뛰어 오는 발소리를 들은 사와무라가 흠칫, 몸을 떨었다가 바로 바닥에 널려 있는 잡초로 뻣뻣한 몸을 숙인다. 그리고 멈칫하더니 주저 앉아 풀을 뽑기 시작했다. 달려 온 후루야가 공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고 대강 후루야가 날린 홈런인 것을 알아챈 미유키가 공이 떨어진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에 떨어졌어.”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후루야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 보고, 미유키는 발 끝으로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은 사와무라의 엉덩이를 툭툭 건드렸다. 건드리지 마십쇼! 하고 외칠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사와무라는 말 없이 풀을 뽑고 있었다.

 

와무라, 내외해?”

“…. 아뇨.....”

그럼 뭐 하는 거야?”

선배도 저도 남자니까…. 비밀로, 사귀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풀을 뽑던 손이 멈추었다. 발갛게 물든 뒷목덜미를 내려보면서 미유키는 웃음을 삼켰다. 좋아하는 것도 제대로 숨기지 못했는데, 과연 네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모든 야구부원이 알게 될 것을 확신했지만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제안을 말리는 대신, ‘그래.’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와무라는 그 이후, 근 한 달 동안 비밀 연애를 하는 중이었다. 연습장 문을 나선 미유키가 문을 닫자, 문의 그림자에 기대 있던 쿠라모치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다가왔다. 미유키는 예의 미소를 지었다. 쿠라모치의 얼굴이 급격히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으로 변해갔다.

 

무슨 일이야?”

“…. 그래, 무슨 일 있다.”

 

쿠라모치가 인상을 구겼다. 미유키는 고개를 돌려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한 번 확인하고 다시 쿠라모치로 시선을 향했다.

 

, 언제까지 그 비밀 연애할 거냐??”

, 나랑 사와무라랑 사귀는 거 어떻게 알았어?”

숨길 걸 숨겨!!”

 

새삼스레 놀란 척 미유키가 일부러 눈을 크게 뜨자 쿠라모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도 다른 사람들이 닦달해서 총대 매듯 나온 자리라 불편하기만 했다.

 

“1학년 애들이 나한테 묻더라. 언제까지 미유키 선배랑 사와무라 닭털 날리는 꼴을 못 본 척 해야 하냐고.”

우리가 그렇게 티가 났던가?”

아오!!!”

 

저걸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쿠라모치가 낮게 중얼거린 걸 들었는지 미유키가 절레절레 손을 저었다.

 

안돼, 나 얼굴에 상처 나면 사와무라가 울어.”

……”

쿠라모치는 인내심의 심지에 불이 붙는 것을 느꼈다. 심지가 다 타면 주장이고 동료고 뭐고 한 대 때려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쿠라모치의 주먹을 본 미유키가 핫하 웃었다.

 

, 나는 비밀 연애 하자고 한 적 없어. 어차피 숨기지도 못하는 거 애써 봤자 귀찮고 힘만 들잖냐.”

그럼 사와무라는 왜 저러는 건데?”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다나.”

 

다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내가 그럼 뭐라고 하겠어. 기특하기만 하지.

씨익 웃는 얼굴에 쿠라모치의 마음 속 심지가 타닥타닥 잘도 타 들어갔다.

 

그래서 그냥 놔 두시겠다?”

그것도 있고. 혼자 안절부절 못 하는 거 보면 귀엽기도 하고.”

작작 좀 해라, ?!”

 

짧디 짧은 인내심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쿠라모치가 결국 폭발했다. 미유키는 그런 쿠라모치에게 여자친구라도 소개해줄까? 하는 말로 속을 박박 긁어놓을 뿐이었다.

 

 

 

사와무라는 5호실 문을 열었다. 이 시간대면 쿠라모치가 게임기를 사와무라에게 집어 던지며 여태까지 뭘 하고 있었냐고 물을 텐데, 어쩐지 조용하다 싶더니 아무도 없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카와카미 때문에 놀랐던 가슴이 아직도 한 구석에서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사와무라가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그 때, 똑똑 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에이준 군, ?’ 하는 하루이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와무라는 침대에 누운 채 아니!! 하고 크게 대답했다. 하루이치가 머뭇머뭇 문을 열고 들어 왔다.

 

저기, 에이준 군….”

?”

내가 할 말이 있는데….”

 

평소보다 더욱 더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사와무라는 몸을 바로 일으켜 앉았다. 연애 상담이라도? 하고 짓궂게 되묻자 붉은 기가 감돌던 하루이치의 얼굴에 완전히 홍조가 올랐다. 사와무라는 침대를 팡팡 치며 호기롭게 외쳤다.

 

그래 하룻치!! 그래서 상대는 누구야??”

아니, 그게 아니라….”

 

고개를 저어 자리에 앉는 걸 사양한 하루이치가 숨을 골랐다. 오늘따라 따라 주지 않는 제비 뽑기 운을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거의 악귀처럼 변했던 쿠라모치의 얼굴을 떠올리며 하루이치는 잘 떼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 에이준 군이…. 미유키 선배랑 사귀는 거 아니까, 이제 안 숨기려고 해도 돼.”

“…… ?”

, 난 말했어!! 잘 자!!”

 

다다다 한 달음에 말을 쏟아낸 하루이치가 급히 5호실을 벗어났다. 사와무라는 닫히는 5호실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던져진 말을 다시 곱씹었다. 머리가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부끄러움에 반응해 얼굴에 뜨겁게 열이 쏠렸다.

 

으아아아!!!!!!”

아오, 저 바보…..”

 

미유키 카즈야!!!!!!

복도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 소리에 복도 끝에서 5호실을 바라보던 쿠라모치가 머리를 짚었다. 그 뒤에 서 있던 카와카미가 난처한 미소를 지은 채 애써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5호실 바깥 벽에 붙어 있듯이 기대 있던 하루이치는 속으로 에이준 군, 미안해…! 라는 말을 수십 번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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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ts사와] 시구

연성/글 2014. 4. 19. 03:59

※TS 주의!!

성반전 주의!!! 프로 선수 미유키와 아이돌 에이쨩 이야기!

 http://stemofdia.tistory.com/58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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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정확히 미트에 박혀 들어가는 공을 보며 선수들은 감탄했고 힘껏 공을 던진 순간 출렁이는 가슴에 관중석은 환호했다. 정작 시구를 던진 본인은 미유키가 제대로 받아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귀여운 미소로 마무리한 것과는 확연히 다르게 잔뜩 부루퉁한 얼굴로 에이는 탈의실로 향했다. XX리 유니폼을 벗어 던지는데, 등판에 박힌 번호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2?”

 

순간 에이의 머리 속에 씨익 얄밉게 웃고 뒤돌아서던 남자의 등이 떠올랐다. 정확히 적혀 있던 2라는 숫자. 유니폼을 쥐고 있던 손이 들끓는 감정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에이가 들고 있던 유니폼을 확 내팽개치려던 그 때, 똑똑 하고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잔뜩 주름이 간 유니폼을 의자에 던지고, 입고 왔던 요XX리 점퍼를 급히 걸친 에이가 네~ 하는 대답과 함께 문을 열었다.

 

핫핫,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열어주네요?”

“…. .”

그렇게 얼굴 안 굳혀도."

 

에이 씨가 한X 팬인 건 알고 있어요.

방금 전 떠올렸던 모습과 완전히 같은 미소로, 미유키가 말을 이었다. 에이는 억지로 미소를 띄우려고 했지만 놀란 마음에 쉽사리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아이돌 데뷔 3년 차, 웃는 얼굴이라면 얼마든지 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에이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유키는 들고 온 것을 내밀었다. 에이가 입었었던 한X 티셔츠였다. 티셔츠를 알아본 에이가 급히 손을 내밀었지만 미유키는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돌려드린다는 건 아니고.”

그럼 뭐하자는 거에요.”

말했잖아요, 에이 씨 팬이라고.”

 

뻗었던 손을 아무렇지 않은 척 내린 에이가 고개를 숙이고 입을 꽉 다물었다. 눈 앞의 남자가 뭘 원하는 지 대강 감이 왔다. 이미지 깨지는 걸 막아줄 테니 뭔가 해달라는 거겠지. 팬이라고 말하는 남자들은 모두 같은 의도를 품곤 했었다. 이를 악문 에이가 점퍼 자락을 꽉 쥐었다가 놓았다. 경기장과 멀리 떨어진 탈의실을 배정 받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의도적이었던 걸까. 에이는 점퍼를 벗어 들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시선을 올리자 드물게 놀란 얼굴의 미유키가 어? ? 하는 소리를 냈다. 미유키의 손에 들린 펜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 , 에이 씨, 더워요?”

…. , . , 땀을 흘렸더니, 좀 더워서….”

, 그러시구나…”

 

미유키가 놀란 얼굴로 허둥지둥 화제를 돌렸다. 탑만 입은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지만 에이도 황급히 손부채질을 하며 부끄러움으로 붉어지는 얼굴을 살짝 돌렸다. 약올리는 듯한 미소 대신 부드러운 얼굴을 한 미유키가 티셔츠와 펜을 에이에게 건넸다.

 

싸인 부탁드려요.”

“… 여기에요?”

. 에이 씨 우리 팀 안 좋아하는 거 안다니까요.”

 

티셔츠와 펜을 받아 들고 미유키를 한참 올려다 보던 에이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몸을 숙여 집어 던졌던 요XX리 유니폼을 들어 올렸다유니폼 등판을 한 손으로 받치고 펜 뚜껑을 입으로 잡아 뺀 다음 등번호 아래에 싸인을 휘갈겼다. TO. 미유키 카즈야. 까지 한 번에 써내려 간 에이가 유니폼을 건넸다. 미유키가 놀란 듯 지켜보다 반사적으로 유니폼을 받아 든 걸 확인한 에이가 뚜껑을 꾸욱 닫았다. 펜을 던지자 미유키가 후다닥 받았다. X 티셔츠를 입고, 점퍼를 손에 든 채로 탈의실 문 앞에 선 에이가 뒤를 돌았다.

 

, 미유키 씨.”

?”

그거, 사이즈 안 맞아서 못 입겠던데요.”

 

가슴이 끼더라구요.

미유키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번져나가는 것을 보며 에이는 경쾌하게 탈의실을 나섰다. 평소와는 달리 입까지 벌린 미유키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XX리 점퍼를 걸치고, 포니테일을 찰랑이며 사라지는 에이의 뒷모습을 뒤늦게 따라 나온 미유키가 황망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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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주의

프로선수 미유키랑 아이돌 에이준!으로...

아거님이 그리신 에이쨩이 너무 귀여워서ㅠㅠㅠ 시구하는 에이쨩을 보겠다고 조각조각 쓴 것이...




아직 입장도 하지 않은 관중석은 텅 비어 있었다. 단단하게 다져진 마운드를 밟고 올라서서 한 바퀴 둘러본 느낌은 마치 무대에 올라 최종 리허설을 준비하던 것과 같았다. 손에 묻어나는 송진 가루를 잘 털어냈다. 마지막으로 공을 던져 본 게 언제더라.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취미 삼아 했던 캐치볼이었던 것 같은데. 에이는 다부지게 마운드 위에 섰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데뷔할 때보다도 크게 고동치고 있었다. 모자를 고쳐 쓰고 베이스를 바라보았다. 햇빛에 고글이 번쩍 빛난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먼 베이스까지의 거리에 놀랐던 마음이 포수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확 식었다.

                        

하필이면 요XX리에서 부르다니.’

 

날씨가 조금 더웠지만 에이는 요XX리 구단 마크가 새겨진 야구 점퍼를 벗을 수 없었다. 매니저에게서 시구 스케쥴이 잡혔다는 얘기에 당연히 한X이려니 생각하고 입고 온 티셔츠 위로 땀이 배였다. 베이스에 앉아 있던 포수가 미트를 팡팡 치더니 미트의 입을 벌린다. 에이는 찌푸려진 인상을 고칠 생각도 않고 자세를 잡아 그대로 팔을 휘둘러 공을 던졌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공이 베이스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포수가 두 걸음 물러나 급히 에이의 공을 받았다. 젠장, 제대로 던지려고 했는데. 매니저가 들었다면 이미지 관리! 하고 외쳤을 말을 입 속으로 중얼거린 에이는 표정을 고치고 베이스로 다가갔다.

 

죄송해요, 너무 오랜만에 던져봐서….”

, 아닙니다.”

많이 느리죠?”

 

다가오는 에이를 보고 포수가 천천히 일어났다. 에이는 한껏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큰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고글을 벗던 남자가 에이와 시선이 마주치자 핫하, 웃었다.

 

에이 씨, 야구 좋아해요?”

? , 가끔 보는 정도에요.”

해 본 적은 없어요?”

캐치볼은 해봤어요.”

 

중학교 시절 남자아이들이 하는 야구팀에 들어가겠다고 기를 쓰다가 결국 캐치볼팀을 만든 전적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겁할 만 할 말을 애교 있게 입에 담은 에이가 의식적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많이 느려서요?”

에이 씨라면 괜찮은 투수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싶어서요.”

 

씨익 웃은 남자가 에이에게 공을 건네주었다. 공을 받은 에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시구 때도 이렇게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때맞춰 감독이 남자를 호출했고, 그는 에이에게 꾸벅 목례를 해 보이고는 덕아웃으로 몸을 돌렸다. 에이는 베이스를 밟고 있는 자신의 발로 시선을 내렸다. 새 운동화가 하얗게 빛났다. 운동화고 티셔츠고 모래범벅이 될 때까지 연습하던 날도 있었는데. 뿌득, 이를 간 에이가 고개를 들었다.

 

!! 미유키!!!!!”

“?!”

 

놀란 얼굴의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부들부들 분노 반, 부러움 반으로 몸을 떨던 에이가 크게 소리 질렀다.

 

시구 때는 더 세게 던질 거니까 알아서 받아!!!!!”

 

그리고 홱 몸을 돌려 반대편 덕아웃에 서 있던 매니저에게로 달려가버렸다. 갑자기 울려 퍼진 선전보고에 미유키가 황망한 얼굴을 했다가, 곧 미트에 닿아오던 공의 감촉을 느끼고는 크게 웃었다.

 

 

물병과 수건을 들고 있던 매니저는 에이가 가까이 오자마자 등짝을 철썩 때렸다.

 

!! 선수한테 반말하는 건 뭐야!!”

아 뭐 어때서!! 어차피 야구 볼 때마다 맨날 씹는 이름인 걸!!”

아오!!!”

 

답답한 듯 다시 한 번 손을 들어올렸다가 겨우 참고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는 매니저에게서 물병을 받아 든 에이가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오늘 진짜 제대로 던질 거야.”

너 야구하러 나왔냐? 앨범 홍보는?”

지금 그게 중요해?”
그게 중요하니까 온 거지!!”

 

눈을 부릅뜬 에이가 위협적인 시선으로 미유키가 서 있는 쪽을 바라 보았다. 시선을 느낀 미유키가 감독에게 이것 저것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도 등 뒤쪽으로 손을 한 번 흔들었다.

 

절대 못 받게 던져서 완전 창피 줄 거야…”

에이준!!!”

 

에이는 매니저에게 등짝 두 대를 더 맞고서야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여차하면 야구 점퍼를 벗겠다는 말에 결국 매니저가 최후 통첩을 했다.


"너 진짜 어쩌려고!"
"
야구 좋아하는 게 뭐 어때서!"
"
당분간 야구 경기 생방으로 볼 생각은 꿈도 마. 그 시간에 죄다 스케쥴 잡아 둘 거야."
"......"

입을 부루퉁하게 내민 에이가 그대로 야구 점퍼를 벗더니 한X 티셔츠 끝자락에 손가락을 걸어 올렸다. 무슨 짓을 하나 보자 싶던 매니저가 에이가 그대로 손을 끌어 올려 티셔츠를 벗으려고 하자 기겁했다.

"
너 뭐해!!"
"
티셔츠 벗으면 되잖아!"
"
!!"
"
안에 어차피 탑 입었어. 이대로 시구하면 되죠?"

미유키 앞에서처럼 애교 있게 말꼬리를 올린 에이가 샐쭉한 시선으로 매니저를 노려봤다. 아이고 머리야. 매니저는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머리에 손을 올리고 항복 의사를 표시했다. 에이는 티셔츠를 곱게 개어 매니저에게 내밀었다. 그 순간, 중간에 끼어드는 손이 있었다.

"
이건 내가 받아갈게요."
"
왜 당신이...!"
"
초면에 반말 들은 값으로. 그대신 이거 입고 오늘 시구하세요."

미유키가 내민 유니폼에는 요XX리 로고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순간 확 찌푸려지는 에이의 표정을 본 미유키가 핫핫 웃었다.

"
사이즈 안 맞을 것 같은데요."
"
정확하게 맞을 거에요."

왜냐면 제가 에이 씨 팬이거든요
입을 떡 벌린 매니저와 놀라서 굳은 에이를 뒤로 한 채 미유키는 한X 티셔츠를 들고 사라졌다. 뒤늦게 아끼는 티셔츠를 빼앗긴 걸 안 에이가 펄펄 날뛰었지만 격려 차 걸려온 전화 속 사장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는 바람에 그날 에이는 어쩔 수 없이 요XX리 유니폼을 입고 공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이즈는, 에이에게 맞춘 것처럼 꼭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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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라사와] 감기

연성/글 2014. 4. 12. 09:58

부추님은 쿠라사와가 보고 싶으다 하셨어~~ 예이예이예에ㅔㅔ~~~ (feat.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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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아파?

 

시야가 부옇게 흐리다. 분명히 귀는 막은 적이 없었는데 와닿는 목소리도 희뿌연한 시야처럼 흐릿하게 들렸다. 느릿하게 눈을 끔뻑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쿠ㄹ…”

 

이름을 부르려고 했지만 가문 날 길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목이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몇 번이고 침을 삼켜 가며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터져 나오는 기침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

 

거 봐, 그러니까 어제 일찍 자라고 했잖아.”

 

꼭 말 안 듣고 제 고집 부리다가선배가 나더러 들으라는 듯 툴툴대다가, 내 눈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큼큼 헛기침을 했다. 몸이 침대에 녹아 달라붙은 것처럼 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이불이 목 끝까지 덮여 있어서 더웠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사지를 허우적거리면서 이불 밖으로 벗어나려고 했더니 선배가 이마를 꾸욱 눌러 저지했다.

 

열도 이렇게 끓으면서 뛰긴 뭘 뛴다고.”

“…..”

 

그게 아니라 덥단 말이에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메마른 목은 다시 기침만 할 뿐이었다.

 

가만히 있어.”

 

선배가 이마를 누르던 손을 바르게 폈다. 차가운 손바닥이 닿자 온통 뜨거웠던 몸이 조금 식는 것도 같았다. 선배가 손을 떼더니 잔뜩 화난 얼굴로 나를 본다. 나는 입만 뻐끔대서 대답했다.

 

왜요???’

왜긴 왜야, 이 지경이 되도록 혼자 끙끙 앓았냐?”

?’

자기 컨디션은 자기가 관리하는 거다, 이 바보야.”

 

선배의 손이 주먹을 쥔다. 나는 다가올 아픔을 예상하며 눈을 감았다. 딱 소리 나게 내 이마를 강타한 꿀밤 이후에 평소라면 관절기 공격이 이어졌을 텐데, 그대신 차가운 것이 볼에 닿았다.

 

, 나도 아픈 사람은 안 괴롭히거든?”

그럴 것 같았는데요.’

뭐래. 일어날 수 있겠어?”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침대와 하나가 된 듯한 몸뚱어리는 바르작대는 게 고작이었다. 어이구, 엄청 부려 먹네. 하소연을 하듯 투덜대던 선배가 내 등과 침대 사이로 팔을 집어 넣어 나를 일으켰다. 침대와 맞닿은 벽에 몸을 기댈 수 있게 되자 뚜껑을 딴 이온음료를 건넨다.

 

마셔. 온통 축축한 거 보니까 탈수 오겠다.”

“…..”

 

손을 뻗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힘들었다. 바둥거리는 몸짓으로 내 상태를 대강 파악한 듯 선배가 팍 인상을 썼다.

 

알았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

 

고개를 끄덕이자 팍팍 한숨을 쉬며 선배가 침대 위로 올라와 앉았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 대신 침대 스프링이 잔뜩 삐걱거렸다. 선배가 한쪽 팔을 뻗어 내 등을 단단하게 받치고 그대로 나를 품 안에 반쯤 안듯이 지탱한다. 놀란 내가 벗어나려고 움직이자 등을 받치던 손이 내 등을 꼬집었다.

 

“!!!”
, 마셔.”

 

입가에 와 닿는 음료수 방울방울에 잊고 있던 갈증이 되살아났다. 나는 선배가 대주는 음료수를 그대로 꼴깍 꼴깍 삼켰다. 단번에 음료수의 절반 정도를 비우자 꺼끌했던 목 안이 조금 편안해졌다. 삼키지 못한 음료수가 턱을 따라 흘러내리는 걸 본 선배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내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끌어 올려 닦아냈다. 나는 눈빛으로 항의했다.

 

그럼 내 옷으로 닦아?”

“…..”

아주머니께 죽 만들어 달라고 부탁 드렸어.”

 

침대에서 일어난 선배가 나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다. 틱틱대는 말과는 달리 손 끝에서 다정함이 묻어 나와 나는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어쭈, 웃을 기운도 있어?”

 

대답 대신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랬더니 선배의 차가운 양 손이 내 뺨을 가볍게 쥐었다 놓았다.

 

너 그대로 누워 있어. 자지 말고!!”

 

자연스럽게 눈이 감겨와 스르륵 눈을 감으니 불호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어느새 선배의 발소리가 의식 저 너머로 멀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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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엔님 늦었지만 다시 한 번 생일 축하드려요!

이 바로 전에 올린 글 http://stemofdia.tistory.com/53 의 전모가 드러나는 (?) 내용입니다 ㅎ헿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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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가볍게 손을 흔든다.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여 알아 봤다는 신호를 하고 남자가 앉아 있는 자리 가까이까지 다가갔다. 자신의 몫으로 시켜둔 듯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물잔에 송글 송글 작은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 걸 보면 약속한 시간 전에 미리 와 있었던 것 같았다. 크리스는 남자의 앞 자리 의자를 빼서 앉았다. 남자가 씨익, 익숙한 미소를 지었다. 카페 창가 너머에서 들어오는 햇빛에 안경이 반짝 빛났다.

 

많이 따뜻해졌죠?”

그렇네. 이제 곧 4월이니까.”

봄인데 선배, 데이트는 안 하세요?”

“…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직원이 가져다 준 메뉴판을 넘기던 크리스의 손길이 질문을 듣는 동시에 잠시 멎었다. 핫핫, 오늘 제가 연락 드린 이유랑 좀 통하는 게 있어서요. 넉살 좋은 웃음 소리를 그냥 넘겨 들을 만큼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리스의 이마에 살짝 주름이 생겼다.

 

여자친구랑 싸우셨나 보네요.”

누구 덕에.”

, 설마 여자친구 분이 제가 좋대요?”

 

그럼 곤란한데. 진심으로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짓는 미유키 카즈야를 보고 크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직원을 불러 따뜻한 차 한 잔을 부탁했다.

 

오늘은 커피 안 드시네요?”

“…. 지금 마셨다간 속이 쓰릴 것 같아서.”

핫하, 선배. 건강 관리는 확실히 하셔야죠~”

너랑 만난다고 데이트도 포기했다. 용건만 짧게 얘기 해.”

 

음료를 벌컥 벌컥 들이킨 미유키가 음, 그게 말이죠. 하고 입을 열었다.

 

크리스와 미유키가 같은 대학에 진학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엔 야구는 취미로 남겨놓기로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건 그라운드가 아니라 학교 근처의 식당이었다. 스포츠과학과 신입생들을 데리고 온 크리스와, 경영학과 선배들을 따라온 미유키. 고등학교에 이어 다시 선후배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미유키는 첫 상담을 부탁한 날 인사말처럼 말을 꺼냈다. 식당에서 만난 개강 첫날 이후 미유키는 2주 전, 크리스에게 개인적으로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 세이도 고등학교에 남겨두고 온 첫사랑과 작년 코시엔 이후 처음으로 연락이 닿았다는 것이었다. 최근 연애를 시작한 크리스는 왜 자신을 상담역으로 골랐냐고 물었고, 미유키는 멋쩍은 듯 웃으며

 

크리스 선배가 가장 잘 알 것 같아서요.’

 

라는 대답을 했었다. 그렇게 웃는 미유키의 모습은 처음 보았고, 또 크리스 본인이 알 것 같다고 한 걸 봐서는 야구부 매니저들 중 한 사람인 것 같아 크리스는 흔쾌히 연애 상담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저께, 여자친구가 전화하기 30분 전, 상담할 일이 또 생겼다는 미유키의 말을 먼저 들은 크리스는 여자친구와의 벚꽃 데이트를 선약이 있어서.’라는 어정쩡한 말로 거절해 그녀의 분노 섞인 잔소리를 듣고 막 헤어진 참이었다. 잔뜩 화나 있을 그녀를 생각하며 크리스는 짐작하고 있던 바를 말했다.

 

지난 번에 말한 그 애 얘기야?”

, 지난 주말 학교에서 OB 모임이 있었잖아요.”

무슨 일이 있었나 보지?”

그게고백을 받았어요.”

 

답지 않게 말을 질질 끌던 미유키가 핫하 하는 웃음소리로 쑥스러움을 덮으려고 했다. 생각보다 얘기가 짧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 크리스가 잘됐네. 하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날 MT가 있어 참석하지 못했던 모임이기에 궁금한 것도 있었다.

 

그래서 사귀기로 했어?”

, 그게 또…. 이야기하자면 길어요.”

자세하게 말해 봐.”

제가 고백은 꽤 받아봤다고 생각하는데, 화장실 앞에서 받은 고백은 그게 처음이었어요.”

화장실?”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가 되풀이하자 미유키가 큼큼,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목이 타는지 음료를 반쯤 비워냈다.

 

“OB 모임 대강 끝나고 슬슬 뒷풀이 장소로 이동하려는데 제가 잠깐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비웠거든요. 그때 따라왔던 모양이에요.”

대단하네.”

계속 둘만 있을 기회를 노린 것 같아요. 고백 받는데 중간에 울기 시작해서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그 정도면 꽤 귀여운 편이군. 게다가 네 첫사랑이라며.”

그렇죠. 근데….”

 

미유키가 마저 이야기하려던 순간, 직원이 크리스가 주문한 홍차를 들고 나타났다. 조그만 비스킷과 함께 찻잔을 내려놓고 사라지는 직원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크리스가 이야기를 재촉했다.

 

얼굴이 빨개져서는 시선을 못 맞추는데, 우는 걸 달래다가 그게 너무 귀여워서 키스해버렸어요.”

? 너도 좋아한다고 말은 한 거야?”

아뇨, 핫핫하.”

사귀기 전부터 스킨쉽이라니, 어지간히도 좋았나 보네.”

저도 키스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는데 이걸로 대답이 된 것 같아서 그냥 아무 말 안 했어요.”

둘 다 마음을 확인했으니 해피 엔딩 아닌가?”

….”

 

크리스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삼킬 때까지 미유키는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올해 코시엔 끝날 때까지는 안 사귀려고요.”

????”

 

미유키의 조그만 배려 덕분에, 크리스는 뜨거운 홍차에 사레가 들리는 일을 피했다. 놓칠 뻔한 찻잔을 가까스로 테이블 위에 내려 놓은 크리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둘 다 서로를 좋아하고, 키스까지 했다며. ??”

그 녀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방해하다니, ?”

지금 그 녀석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데 이미 졸업한 제가 끼어 들게 되면 많이 힘들 게 분명하거든요.”

그거, 그 애한테 얘기는 한 건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한 크리스가 진지하게 질문했다. 남은 음료를 한 번에 다 마신 미유키가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신경 쓰게 만들 것 같아서요. 그냥 혼란스러운 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더 편할 거에요.”

 

미유키는 담담하게 말을 끝맺었다. 크리스는 복잡해진 마음에 찻잔을 손에 쥐고 들었다. 목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홍차의 빈자리에 갑작스럽게 떠오른 질문이 차 올랐다.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은데, 왜 나에게 얘기한 거지?”

지난 번에도 말씀 드렸던 것 같은데, 선배가 그 녀석을 가장 잘 이해할 것 같아서요.”

내가? 요시카와를?”

, 매니저가 아닌데.”

매니저가 아니라고?”

제가 선배에게 부탁 드린 건 선배가 그 녀석 포수였기 때문인데요?”

 

다시 차를 들이키던 크리스는 이번에는 사레가 들리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터져 나오는 기침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개까지 숙여가며 콜록대던 크리스는 일어선 미유키의 그림자에 겨우 얼굴을 들었다.

 

그냥, 선배는 알고 계셨으면 하기도 했어요.”

 

계산은 제가 할게요. 계산서를 들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에 멈췄다고 생각한 기침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크리스는 황망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 해 여름이 끝날 때까지 크리스는 미유키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사와무라가 선배에게 상담하고 싶은 게 있다고 메일을 보낸 순간 어쩔 수 없이 학교 앞 그 카페에 다시 앉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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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꽃

연성/글 2014. 3. 29. 14:23

연성 재활 훈련 중....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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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다. 사와무라.”

?”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오늘요?”

 

미유키가 자신작이라며 내놓은 가지 볶음을 맛보고 잔뜩 얼굴을 찌푸렸던 사와무라가 멍청하게 되물었다. 된장국을 한 모금 들이킨 미유키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식사를 계속했다.

 

고지서 내는 날임까?”
아니그런 거 말고.”

메이저 리그 개막식?”

야구도 아냐.”

그럼 뭔데요?”

 

젓가락까지 내려놓고 이어지는 사와무라의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며 식사를 대강 끝마친 미유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쩍 확인한 시간이 어느새 8시를 훌쩍 넘겨 있었다. 슬슬 나가지 않으면 지각이다. 미유키는 옆 의자에 걸쳐두었던 재킷을 집어 들었다.

 

, 모르겠으면 됐어.”

대답은 해주고 출근 해야 할 거 아님까!!”

너 오늘이랑 내일은 쉬지?”

복귀 전 마지막 휴가이긴 한데아니 질문에 대답을 하라고!!”
먼저 물어본 건 난데?”

 

현관으로 향하는 미유키의 뒤를 무의식적으로 쫓아 나왔던 사와무라가 얄미운 말에 한껏 인상을 썼다. 늘 모든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저 성격을 좋아한 적도 없었지만, 오랜만에 같이 먹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까지 그래야 하냐는 게 사와무라의 생각이었다. 가지런히 놓인 구두를 신고 가볍게 구두 코를 부딪혀 나갈 준비를 마친 미유키가 현관 앞에 서 있는 사와무라를 보고 장난스레 웃었다.

 

키스해주려고?”

, 아니거든!!!”
싫음 말고.”
아씨, 해주면 될 거 아냐!!”

 

눈이나 감아!!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얼굴에, 서로의 숨결이 스쳤다. 가볍게 섞이는 감촉이 조그마한 아쉬움을 남겼다. 다녀 올게. 눈 앞에서 들려온 인사가 코 끝을 간질이는 감각에 사와무라가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미유키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가슴 한 구석이 둥글게 부푸는 느낌에 사와무라는 그대로 잠시 서 있었다. 그러나 조용한 집 안을 울리는 벨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핸드폰이 놓인 식탁으로 돌아간 그는 액정을 채우는 문자의 나열에 부풀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확 식어버린 것을 느꼈다.

 

[화장실 청소 좀 부탁해♡]

 

사와무라는 젓가락에 분노를 담아 가지를 쿡쿡 찔렀다.

 

 

점심을 먹으러 사무실을 나서는 동료 직원들의 무리에 합류하며 미유키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출근하려고 차에 시동을 걸면서 보냈던 메일의 회신은 없었다. 길길이 날뛰면서도 결국 집안 청소를 싹 했을 사와무라가 눈 앞에 선했다. 킥킥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자연스럽게 삼키며, 미유키는 자판을 두드렸다.

 

[오늘 퇴근하기 전까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내면 상 줄게. 잘 생각해 봐.]

 

회사 근처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킨 즈음에 핸드폰이 몇 번 진동했다.

 

[일이나 하시지.]

 

미유키는 그대로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더 이상 줄 힌트는 남아 있지도 않았다.

 

 

평소보다 약간 업무가 늦게 끝났지만 사와무라에게서의 연락은 없었다. 미유키는 부드럽게 핸들을 꺾었다. 주차장을 벗어난 자동차는 곧 시내로 진입했다. 신호에 걸린 순간, 버릇처럼 조수석에 둔 핸드폰에 시선을 주었지만 핸드폰은 조용하다.

 

바보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모르는 건가?”

 

한숨기가 섞인 혼잣말은 곧이어 습관처럼 틀어둔 라디오에 묻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정시 뉴스는 거의 끝나서 어느덧 기상 예보로 넘어가 있었다.

 

예년보다 조금 늦었지만 이번 주말, 드디어 완연한 봄이 시작되겠습니다. 내일 도쿄의 날씨는 오랜만에 맑겠습니다. 가까운 곳이라도 나들이를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라디오의 볼륨을 올리며 미유키는 가볍게 속도를 올렸다. 가지 볶음은 실패한 것 같지만, 가지 그라탕은 어떨까? 머리 속 요리책을 한 장씩 넘기며 미유키는 뉴스가 끝나고 이어지는 음악에 맞춰 왼손으로 핸들을 톡톡 두드렸다. 길은 좀 막히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마음은 그리 답답하지 않았다.

 

 

돌아온 집은 아침과는 다르게 꽤 조용했다. 거실에서 TV라도 보면서 노닥거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미유키는 구두를 대강 벗어 현관에 던져두고 불이 켜져 있는 부엌으로 향했다. 뭔가에 잔뜩 집중한 사와무라의 뒷모습이 보였다.

 

와무라, 답은 알아냈어?”

“……”

기억 안 나면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해도 돼. 너 바보인 거 전부터 잘 알았으니까.”
“…..
내가 어떻게 잊겠어.”

 

약간 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미유키는 몇 걸음 더 다가가 사와무라를 뒤에서 껴안았다. 단단한 몸이 조용히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부드러운 향기가 풍기는 뒷목에 얼굴을 묻자 퍼뜩 한 번 몸을 떤 후에도 가만히 안겨 있는 사와무라를 다시 한 번 강하게 안고, 미유키는 그대로 입술을 움직였다.

 

내일은 꽃놀이 가자.”

“… .”

 

오븐이 삑삑거리며 요리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알릴 때까지, 두 사람은 그렇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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