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메이커 연성 소재에서 젖은 머리칼, 표리부동, 짙은 먹구름이 나와서...

(2013. 1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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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건널목 하나만 건너면 곧 집이다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다가코너를 도는 자동차가 튀기는 물벼락을 간발의 차로 피한 미유키는 슬쩍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보았다소나기라고 치기엔 거센 빗방울이 토도독소리를 내며 펼친 손바닥을 리듬감 있게 두드린다가을비라고 하기엔 좀 과한 것 같은데.우산과 장바구니를 함께 들고 있던 반대편 팔목이 슬슬 저려와 미유키는 비를 가늠하던 손을 집어 넣고 우산을 옮겨 잡았다초가을 저녁겨울을 재촉하는 빗 속의 거리는 짙은 먹구름 아래 축축하게 젖어 있다날씨가 좋지 않으니 오늘 저녁은 전골을 해볼까하는 주부 같은 생각에 빠져 있던 미유키는 바뀐 신호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그 때 그의 어깨를 잡는 손이 있었다.

 

선배!”

“!!!”

놀랐어요?”

 

슬그머니 미유키의 우산 안으로 들어온 사와무라가 씨익 웃는다쓰고 있던 후드를 벗어내리며 미유키의 장바구니를 옮겨 드는 손에서 토옥 하고 물방울이 맺혀 떨어졌다.

 

에이준너 셀렉션 준비하는 놈이 지금 무슨 정신으로…!”

비 맞은 것 정도로 감기 걸리진 않는다구요.”

하아말을 말자.”

 

우산도 넘겨 받으려는 사와무라의 손에 그것을 넘겨주고자연스럽게 사와무라가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빼앗아온 미유키가 깜박이는 신호등을 뒤늦게 알아챘다.

 

나 뛸 거니까 잘 맞춰서 우산 들고 뛰어!”

선배!”

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바구니를 든 채 뛰어나가는 미유키의 뒤를 우산을 든 사와무라가 종종종 쫓아 뛴다. 2년 간의 배터리 생활 덕분인지횡단보도를 건넌 미유키의 머리카락엔 물방울 하나 없었다.

 

우산 똑바로 들어.”

알았어요!”

근데 나는 무슨 일로?”

그냥 얼굴 보고 싶어져서요.”

 

또 씨익 웃는다사와무라의 점퍼에서 미처 다 흡수되지 못한 빗방울이 맺혀 또르르 굴러 길바닥을 적신다.게다가 전 해를 부르는 남자라니까요언젠가 들어보았던 것 같은 말이 우산 위로 통통 튀는 빗방울처럼 튀어올라 귓가에 닿는다.

그 때 아무도 네 말 안 믿었어.”

정말요말도 안돼근데 진짜 그날 마지막에 해 떴잖아요!”

해 뜨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어안 그래?”

그렇긴 했지만…”

 

충격임다… 아무도 안 믿었다니… 의외였는지 옛날에 쓰던 말투가 슬그머니 나온 걸 알아채지 못한 듯 사와무라가 중얼중얼 말을 이었다.

 

우산은 안 들고 왔어?”

지하철 타기 전까지는 맑았는데 역에 내리니까 쏟아지더라구요그래서 그냥 달렸죠.”

 

골목길 사이로 미유키의 자취방이 보였다미유키는 속으로 날짜를 계산해보았다코시엔 우승 이후 약 한 달작년 이맘때를 생각해보면 아마 오늘은 감독님이 3학년들에게 준 휴가일 것이었다시선을 슬쩍 돌려 사와무라를 보자그 때 시합에서처럼 젖은 머리칼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이 턱선을 따라 굴러간다정작 본인은 우산을 들고 있는 것에 집중해서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그날 홈에 앉아 있던 미유키가 사와무라의 턱선을 따라 흐르는 빗방울에 잠깐 시선을 빼앗겼을 때도그는 공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느라 아무것도 몰랐었다.

자취방에 다다르자 사와무라는 우산을 접고 미유키가 현관을 열기를 얌전히 기다렸다하지만 달칵문이 열리자 쏜살같이 들어가려는 사와무라의 어깨를 미유키가 잡아 제지했다.

 

오늘 휴가 받은 거 맞지?”

어떻게 알았어요아직 얘기도 안 했는데.”

오늘 자고 가전골 해줄게.”

 

순간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사와무라가 자고 가라는 한 마디에 확 얼굴을 바꾼다.

 

그럼 그럴 줄 알았슴다.”

?”

선배 겉이랑 속 다른 거 이젠 다 알아요돌아가라는 말 안 했을 때부터 알았슴다.”

 

선배 투수 2년이면 속은 다 읽는다구요투덜거리듯 한 마디를 덧붙인 사와무라가 열린 현관문으로 쏘옥 들어갔다저게이젠 내 머리에 앉으시려고 하는구만미유키가 장바구니를 들어올리자 사와무라가 쓱 받아 부엌으로 가져간다.

 

선배한테 맡기면 전골이 잡탕찌개가 되니까 내가 하는 게 낫겠슴다.”

그 전에 샤워부터 하고 나와집이 온통 물바다 되겠다.”

속옷 안 가져왔는데요…”

장 보면서 사왔지.”

 

장바구니 밑바닥에서 비닐 포장된 속옷 한 세트가 쓰윽미유키의 손에 끌려 나왔다욕실로 들어가던 사와무라가 질린 얼굴을 했다.

 

이것까지는 몰랐지?”

그렇게까지 잘난 척하는 얼굴 보고 싶지 않슴다!”

콘돔도 사왔는데.”

“…. 씻고 나올게요.”

 

 

 

사실 이 다음에 먹구름 걷히고 해 뜬다는 걸 넣고 싶었는데 어정쩡해서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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