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봉오리

연성/글 2014. 2. 4. 07:19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영업해주신 김긍졍님께 억지로 보내드린(?) 미유사와 첫 쪽글.

다이에이 파주세요.. 흑흑

(2013.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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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졸업식 이후로 처음 뵙는 것 같슴다!”

그렇네오랜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3사와무라가 말하는 졸업식은 그 3년 전을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시간은 공평하게 흘렀다처음 만났을 때 나보다 머리 하나 만큼 작던 녀석은 이젠 내가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선배술 하심까?”

그런 건 원래 내 쪽에서 묻는 질문이라고너는?”

헤헤간단히는 하지 말임다~”

그래그럼 하늘 같은 선배님께 한 번 따라보든가.”

미유키 선배가 하늘 같다니 하늘이 두 쪽 날 일임다.”

잔소리 말고 얼른 따라.”

 

싱글 싱글 웃던 사와무라가 맥주병을 조심스레 들고 내 잔에 따르기 시작한다병을 잡은 손이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한두 번 따라 본 게 아닌지 거품 없이 잔을 채우는 맥주를 바라보며 나는 내가 여기에 오게 된 계기를 생각했다.

 

 

쿠라모치에게서 망년회를 빙자한 동창회 연락을 받은 건 2주 전이었다시즌이 아닐 때는 꺼두는 연락용 휴대폰이 아닌 사적인 휴대폰으로그것도 메일도 아닌 전화로 연락하는 대범함은 역시 쿠라모치다웠다.

 

쿠라모치무슨 일이야.”

-다다음주에 세이도 야구부 망년회 있으니까 나와라이상!

끊지 말고!”

-슬슬 얼굴 비출 때도 되지 않았냐선배들도 그렇고 후배들도 그렇고 나한테 네 소식 물어보는 거 이제 귀찮으니까 그냥 나와라 엉?

협박조의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올해도 일이 있어서 못 간다고 대답하려던 내 말은 전하지도 못한 채로.

 

 

당일 두 시간 전까지도 아파서 못 간다고 연락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미 시간이 조금 지났다는 걸 알고 급히 도착한 가게는 이미 후끈하게 달아올라있었다오랜만에 뵙는 선배들께 인사 드리고 안내 받은 자리는 하필이면 사와무라 앞이었다사와무라 또한 볼에 발갛게 열이 오른 것을 보아하니 이미 선배들에게서 몇 잔 얻어 마신 듯 했다.

 

이번엔 선배가 제 잔 채워 주실 차례임다!”

너는 물이나 마셔벌써 꽤 마신 것 같은데?”

사나이 사와무라 에이준이 정도로 죽지 않슴다!”

그러다가 그저께 술자리에서 죽었잖아에이준 군.

 

사와무라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코미나토 – 동생 쪽 – 가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그건사케여서 그랬고맥주는 괜찮다고하고 외치는 사와무라가 자신 있게 자신의 잔을 나에게 내밀었다고등학교 시절 근거 없이 공을 받아달라고 외치는 모습이 겹쳐 보여서 나는 괜히 맥주 대신 콜라를 따라주었다.

 

감사함다!”

에이준 군…”

하룻치도 한 잔?!”

아냐괜찮아…”

 

말 끝을 흐린 코미나토는 내 쪽으로 부탁한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더니 슬쩍 자리를 떠서 사라졌다잔에 담긴 게 술인지 음료수인지도 구분 못 하는 주정뱅이 후배를 맡기고 떠나는 뒷모습이 내가 오기 전까지 계속 이 녀석을 맡고 있었던 듯 했다사와무라는 흔들리는 잔을 들어 올렸다.

 

자 선배건배임다!”

그래그래.”

세이도를 위하여!”

 

가볍게 들어올린 내 잔과 사와무라의 잔이 맞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선배 원샷임다원샷시끄럽게 소리치는 녀석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며 나는 맥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씁쓰레하게 넘어가는 것이 거슬렸다.

 

 

 

그 땐진짜 재수 없는 얼굴이라고 생각했슴다능글하게 웃질 않나아즈마 선배랑 시합할 때속이질 않나… 다시 세이도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슴다뛰어 가래서 뛰어갔더니 감독님한테 지각 걸리고!”

네 후배님제가 다잘못했습니다제가 다죄인입니다.”

거기다가그 다음에도…”

 

완전히 취기가 오른 건지 사와무라는 테이블에 몸을 반쯤 기댄 채 웅얼거리듯이 뭐라 뭐라 외치고 있었다.건성으로 대답하며 주위를 슬쩍 살피자 다들 웬만큼 취기가 올랐는지 2! 2!를 연호하고 있었다아즈마 선배와 이시사키 선배 사이에 낀 유우키 선배마저 2차를 외치고 있는 모습에 나는 불현듯 이 가게 안에서 제 정신인 사람이 몇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모임의 총무 격인 쿠라모치가 얼굴이 완전히 풀린 토죠를 짊어지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유키, 2차 갈 거냐?”

아니내일 아침에 본가에 들러야 해서사와무라 녀석 들여 보내고 나도 갈게.”

그 녀석크리스 선배 못 오셨다는 얘기에 침울해있더니만 그래도 너 만나서 기분 풀린 모양이다알겠어,선배들한테는 대강 둘러댈 테니까 들어가라.”

 

내가 왜 총무를 맡았는지 몰라하고 한숨을 푹 쉰 쿠라모치는 토죠를 끌면서 선배들을 이끌고 다음 가게로 옮길 정리를 하는 듯 했다나는 사와무라에게로 얼굴을 돌렸다흔들리는 초점과 완전히 달아오른 볼그리고 풀린 발음이 이 녀석 또한 슬슬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크으그 때는 선배라고도 부르기 싫었슴다진짜.”

사와무라.”

근데근데 말임다미유키 선배.”

 

주절대던 사와무라가 테이블에 완전히 늘어지며 내게 시선을 맞춰왔다.

 

처음으로 선배한테 던지고 나서-”

“…..”

선배한테 한 눈에 반했던 것 같슴다.”

 

시선의 끝에 문득 눈물이 어린 것 같았다.

 

던질 때마다그 때마다 더 반했던 것 같슴다.”

“…..”

그 땐 몰랐슴다그냥지금 생각해보니까그런 생각이 들었슴다.”

“…..”

선배를좋아했슴다.”

 

그 말을 끝으로 사와무라는 덜컥 고개를 테이블에 처박았다완전히 잠에 빠진 듯 고롱거리는 숨소리가 뒤를 이었다.

 

나도너를 좋아했었다.

처음 공을 받았을 때재밌는 공을 던지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다.

다시 세이도에서 만났을 때놀란 듯 둥그래진 눈이 다람쥐 같다고 생각했었다.

처음 마운드에 올랐을 때긴장과 흥분으로 떨리는 손 끝이 안쓰럽다고 생각했었다.

여름 예선 결승전이 끝났을 때충격으로 무너지는 네 몸을 끌어안고 괜찮다고 얼러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만약 너와 내가 마음을 서로 고백했다면 지금 우리는 연애를 하고 있을까나는 술에 취해 늘어지는 사와무라를 들쳐 업고 가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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