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올렸던 크리사와 함께 에서 이어지는 글.

이후 에이준은 크리스가 다녔던 세이도에 입학하러 간다는 얘기입니다.... 아... 키잡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201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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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무라는 침대에 앉아 텅 빈 방을 한 번 둘러 보았다더 이상 챙길 짐은 없었다필요한 가구는 모두 기숙사에 있다고 했다당장 갈아입을 옷 몇 벌과 글러브만 챙긴 가방은 가벼웠다읏차가방을 매고 일어나는 사와무라의 뒤로 똑똑노크 소리가 들렸다문이 열려 있는데도 노크하는 사람은 이 집에서 오직 한 사람뿐이다장난기가 돈 사와무라는 큼큼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외쳤다.

 

들어오려면 세 바퀴 돌고 내 공 받기에요!”

지금 돌까?”

 

진지한 목소리에 푸하하하 웃어버린 사와무라가 대답 대신 문가로 다가가 노크한 남자를 꽉 안았다크리스는 매달리듯 안기는 사와무라의 머리를 몇 번 쓸어주었다사와무라의 얼굴이 봄볕 아래의 고양이처럼 나른하게 풀린다.

 

가방 무겁지이리 줘.”

아니에요이 정도도 못 들면 에이스는 꿈도 못 꾸는 걸!!”

그래…”

언제까지 날 애 취급 할 검까!”

 

사와무라가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떨어졌다어느새 크리스와 눈높이가 꽤 비슷해진 사와무라다크리스가 짜 준 프로그램대로 트레이닝한 결과근육도 어느 정도 균형 있게 잡혀 이제는 꽤 든든한 모습이다하지만 크리스의 눈에는 여전히 여섯 살 꼬맹이로만 보여서 무심코 아이처럼 대하게 되곤 했다슬슬 출발할 시간이다사와무라와 크리스는 방을 나섰다.

 

부모님 안 보고 싶겠어?”

아버지 어머니는 벌써 미국 가신 지 오래고…. 괜찮아!”

그럼 나는?”

…. 형은 안 보고 싶을 것 같은데코코아는 보고 싶을 것 같슴다!”

 

장난스레 웃어 보이는 사와무라가 슬쩍 식탁 의자를 끌어내어 앉는다그새 가방을 옆 자리에 올려 두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동생을 본 크리스도 피식웃었다시계를 보자 아직 여유가 좀 있다크리스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커피도 못 마시면서 어른인 척하기는.”

헤엥커피 마시면 아직 한창 클 나이인데 안 큰다고 협박했던 건 어디의 누구시더라?”

협박이 아니라…”

진짠 거 알아요그러니까 코코아!”

 

알 수 없는 노래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사와무라의 목소리를 배경 삼아 크리스는 우유를 팬에 쏟아 붓고 데웠다찬장에서 코코아 가루를 꺼내자 아 마시멜로우도 올려줘요하는 추임새가 들려왔다.

 

체중 관리한다며.”

당분간 못 먹는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요!”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말 끝을 흐리던 사와무라가 식탁에 그냥 엎어진다슬쩍 고개를 뒤로 돌리자,잔뜩 기대한 상을 받지 못한 강아지가 쳐진 귀를 한 채 올려다 보는 것 같아 크리스는 결국 찬장에서 마쉬멜로우가 담긴 통도 내렸다코코아 가루를 따끈하게 데워진 우유에 잘 풀고설탕과 계피 가루를 조금 넣는다.뜨거운 김이 모락 모락 올라오는 코코아를 사와무라 전용 머그 컵에 따르고 마시멜로우룰 하나 올린다자신의 몫으로는 아까 내렸던 커피를 따르는 크리스 뒤로 사와무라가 나타나 낼름 자기 몫의 코코아만 가지고 식탁으로 돌아갔다.

 

치사하네에이준.”

마시멜로우 하나만 올려준 형이 더 치사해.”

 

크리스는 따스한 커피를 호로록마셨다커피 향보다 진하게 감겨오는 코코아 향에 커피를 마시는 건지 코코아를 마시는 건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것 같다조심 조심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신 사와무라가 풀어진 미소를 만면에 띠었다한동안 저렇게 웃는 사와무라를 보기 힘들 것이다사와무라와 그 옆에 놓인 가방을 함께 본 크리스는 다시 한 번 현실을 인식했다.

 

가서 잘 할 수 있겠어?”

천재 포수도 있다니까 내가 못 해도 거기서 알아서 해주겠지.”

에이준.”

고등학교 다시 다니자!! 나랑 같이!!”

 

어느새 예전에 쓰던 말투로 돌아온 사와무라가 투정 부리듯 말했다중학교에 입학한 봄 이후로 제대로 형 대접을 해주겠다며 쓰기 시작한 어설픈 존댓말이 마지막으로 마시는 코코아 앞에서 스르륵 녹아 사라진 모양이었다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코코아가 아쉬운 듯 사와무라가 입술을 핥았다띠로롱문자 착신음에 시간을 확인한 크리스가 사와무라가 내려놓은 코코아 잔과 자신의 커피 잔을 들고 개수대로 향했다사와무라가 매기 전에 슬쩍 가방을 든다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차 열쇠를 한 번 확인하고크리스는 가방을 빼앗으려는 사와무라의 머리를 눌러 막았다거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늘의 마지막 햇살이 현관을 비춘다.

 

나중에 연습 보러 갈 테니까 열심히 해야 해.”

형이 공을 받고 싶어질 만한 에이스가 될 거니까기대하라구요!”

 

 

씨익 웃는 사와무라의 미소를 마지막으로 현관문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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