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2 축하 기념 전에 썼던 쪽글을 이었습니다!!
더 이어질 수도...??? 모브캐 주의해주세요! 언급 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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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토요일 아침, 휴일을 맞아 늘어지게 한숨 자고 있던 미유키 카즈야는 아침부터 울려대는 차임벨 소리에 겨우 쇼파에서 눈을 떴다. TV를 그대로 틀어놓고 잤던 모양인지 틀어져 있던 TV에서는 아침 뉴스 후의 날씨 예보가 한창이었다
다시 잘까
겨우 손만 더듬더듬 움직여 리모콘을 찾아낸 그는 그대로 TV를 껐다. 토요일은 그동안 업무에 시달린 몸을 쉬게 할 절호의 찬스였다. 때문에 날씨 예보는 현재 그의 잠을 방해하는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울리는 초인종 또한 방해꾼일 뿐이었다. 신문 권유건 잡상인이건 없는 척하면 그냥 지나가겠지. 쇼파에 놓인 쿠션으로 귀를 막고 돌아 누우며 미유키는 생각했다.
곧 초인종 소리가 멎었다. 미유키는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어렴풋하게 꾸었던 꿈의 잔재가 슬슬 눈꺼풀을 덮어오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 거실 테이블에 놓아 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하며 드르르르륵, 하는 소음을 냈다

누가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질이야…”

누군 잠도 없냐. 상사의 호출이 아니길 만을 빌면서 주섬 주섬 쓴 안경 너머 핸드폰 액정은크리스 선배라는 글자를 둥둥 띄우고 있었다.
재빨리 쇼파에 걸쳐 두었던 져지 상의를 꿰어 입고 슬쩍 켜 본 인터폰 너머엔 난처한 얼굴의 크리스가 서 있었다. 젠장, 망했다. 미유키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고등학교 시절 첫 연습에 지각했던 날 아침 달렸던 스피드로 현관문을 열었다. 핸드폰을 코트 주머니에 넣은 크리스가 오랜만이다, 하고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세요, 선배.”
아침부터 미안하다. 부탁해야 할 게 생겨서…”

크리스의 오른쪽 옆엔 여행용 캐리어가, 왼쪽에는 커다란 가방이 있었다. 그리고 발치엔 길다란 체크무늬 가방이 있었다

갑자기 미국에 잠시 돌아가봐야 할 일이 생겼어.”
그런데요…?”

미국에 다녀오는 것과 자신이 무슨 상관인가. 미유키는 현관문을 잡고 서서 멍청하게 되물었다.

좀 맡아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맡아요? 제가?”
그냥 집에 두고 가자니 걱정이 되어서…”
귀중품인가요?”

미유키는 체크무늬 가방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크리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아하니 저 가방 안에 든 것을 잠깐 맡아주기만 하면 되는 모양이다. 미유키는 서재로 꾸미려다가 반쯤 창고로 쓰고 있는 빈 방을 떠올렸다. 거기에 두면 되겠지. 힐끗 힐끗 시간을 확인하는 크리스를 보니 비행기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았다. 미유키는 감히 선배가 집 앞까지 찾아왔는데 없는 척 했던 건방진 후배의 탈을 벗기 위해서라도 그냥 맡겠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선배들에게 이 이야기가 퍼졌다가는 다음 번 동창회를 빙자한 회식비는 모두 미유키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오게 될 것이 틀림 없었다. 자다 깨서 한쪽으로 눌린 머리를 한 채 미유키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맡아드릴게요.”
아니 고양이인데…”

맡겠다는 미유키의 대답과 미유키의 질문에 대한 크리스의 대답이 엇갈리듯 겹쳤다. 그리고 그 순간, 냐아아아옹, 하는 울음소리가 길게 아파트 복도를 울렸다.

 

 

 


생각해보면 세이도 야구부 선배들은 이상한 데서 사람이 좋았다. 후배는 음료수 셔틀로, 안마기로 부려 먹었지만 어느 날 그라운드 근처에 나타난 떠돌이 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끔찍하게 챙겼다. 벤치 밑에 엎드려 있던 녀석을 한 번씩 쓰다듬어 주면서 다음 번 목욕 당번은 서로 하겠다고 나서던 선배들을 회상하던 미유키는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체크무늬 가방, 아니 동물용 이동 가방에 시선을 주었다. 비행기 시간이 촉박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가방에 대고 잘 있어야 한다 하고 속삭이던 크리스의 얼굴을 떠올리니 왜 하필이면 크리스와 같은 동네에 이사를 왔던가 하는 쓸 데 없는 생각도 들었다. 인정이 각박한 대신 동물에게 정이 넘치던 선배들과는 달리, 미유키는 그 반대에 가까웠다. 물론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네가 어딜 봐서 인정이 넘치냐.’고 따지고 들 것이 자명했지만 어쨌든 그는 동물보다 사람이 중하다고 생각했으며 애완동물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가족처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였다. 당연히 평생 동물 따위는 집에 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미유키는 서재가 될 뻔한 창고방 문 앞에 놓인 가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당연히 크리스가 가져가리라고 생각했던지라 그가 체크무늬 가방과 함께 짐가방을 현관 안으로 내려놓았을 때는 의아했었다. 미유키는 그게 뭐냐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한 것을 떠올렸다.

 

에이준 꺼야.’

 

에이준이라.”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혀 끝에서 한 번 굴려보고, 미유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니 무슨 고양이 한 마리에게 필요한 물건이 저렇게 많단 말인가. 친히 가방에서 고양이용 화장실과 물그릇, 사료그릇을 꺼내던 크리스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폭풍처럼 찾아온 크리스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별을 하고 떠난 것이 두 시간 전. 미유키는 미동도 않는 가방을 힐끗 보았다. 지퍼를 열어 두었지만 가방 안에 뭐가 있기나 한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설마 이거 몰래 카메라인가?”

 

그럴 수도 있었다. 선배들은 성격도 나쁜 만큼 미유키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기도 했다. , 진짜 고양이가 있더라도 두 시간 동안 이렇게나 조용했다면 순한 녀석인 게 분명했다. 만약 손 안에 녹음기와 카메라가 잡힌다면 속아 넘어가 줄 셈으로, 미유키는 열린 입구 안으로 왼 손을 뻗었다.

 

캬아아아옹!!!”

아야!!!”

 

그리고 후회했다. 손 끝에 뜨끈한 젤리 같은 것이 만져진다 싶더니 곧이어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소리만큼 날카로운 발톱이 팔 위를 스치면서 따끔한 것 이상의 아픔이 달렸다. 미유키는 이를 악물었다. 재빨리 팔을 꺼내어 확인하니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두 줄을 그리고 있었다.

 

이게…!!”

 

그대로 이동장을 들어 탈탈 털었더니 캬앙!!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진갈색을 띤 팔뚝만한 털뭉치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듯 테이블 위에서 굳어 있다가 미유키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거실 구석으로 후닥닥 달아났다.

 

!!!”

냐아아옹!!! 냐아아아옹!!!!”

 

야구하던 시절 도루하던 순발력으로 미유키가 쇼파에서 일어나 고양이를 쫓자, 고양이는 낯선 환경에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미유키의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 구석 가장 안쪽으로 기어 들어갔다.

 

!! 당장 나와!!!”

냐아아옹!!!”

나오라고!!!”

 

팔이 닿지 않아 버둥거리는 미유키를 비웃기라도 하듯 고양이가 소리 높여 울었다. , 진짜! 미유키는 휴일 아침부터 일어나 남의 고양이를 맡게 된 짜증이 순간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거실로 돌아와 쇼파에 눕듯이 앉는데,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미유키는 액정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는 대신 노려보았다. 한참을 울리던 진동이 멈추고,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적막한 거실을 울렸다.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집어 든 미유키는 내용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쇼파 구석에 던져버렸다.

 

[에이준은 어때? 순한 아이니까 잘 적응하리라고 생각한다. 사료는 아까 내가 덜어둔 양만큼 꺼내두면 알아서 먹을 거야. 아직 화장실은 안 갔나? 화장실 모래는 이틀에 한 번 갈아주면 될 거다. 간식은 너무 자주 주지 말고. , 그리고 하루에 한 번 사진을 보내줄 수 있겠어? 너한테 맡겼으니 걱정은 없지만…]

 

치료비 걱정부터 하셔야 할 겁니다, 선배.”

 

어금니를 악문 미유키는 그대로 욕실로 향했다. 어디든 나갈 생각이었다. 저 짐승과 한 공간에 있는 건 죽어도 싫었다. 긁힌 팔이 따끔따끔하게 아픔을 호소했다.


 

 

 

미유키는 눈을 떴다. 낯선 천장과 어둑한 조명이 흐릿한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대충 몸을 일으켜 앉고 몇 번 눈을 끔뻑이자 옆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남자가 보였다. , 그랬지. 천천히 깨어나기 시작한 기억을 되새기며 미유키는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안경을 찾아 썼다.

 

혼자 본 영화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 하필이면 양 옆으로 커플이 앉는 바람에, 또 그들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속닥거리며 한 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죽을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문화 생활이라도 즐기려던 미유키의 바람은 실낱처럼 사라졌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평소 이쯤이면 술이라도 한 잔 하자고 오던 연락 하나 없다. 영화관 근처 식당에서 대충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미유키는 재킷을 여몄다. 이렇게 된 이상 원나잇 파트너라도 찾아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바는 토요일 밤을 맞아 적당히 북적였다. 자리에 앉자 익숙한 바텐더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두 잔 정도 걸치며 최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오늘 맡게 된 고양이가 떠올라 말을 꺼내니 바텐더는 고생이라며 잔을 채워 주었다. 그리고 그 때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고양이 싫어해요? 나도 싫어하는데.’

 

그 말 한 마디에 그냥 얼굴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남자를 이끌고 근처 호텔로 향했다. 반쯤 스트레스 풀이로 한 관계였는데, 남자는 꽤 만족한 듯한 모습으로 잠이 들었다. 미유키도 누적된 피로와 쾌락의 여파로 세 시간 가량 푹 잤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데 움직임에 잠이 깬 건지 옆에 누워 있던 남자가 잠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근데 그 고양이 밥은 챙겨줬어요? 잠깐 맡은 거라면서.”

.”

방문 열어놓고 나왔으면 집안 엉망일 걸. 전에 내 애인이 키우던 걔도 배고프면 엄청 난리법석이었어.”

 

미유키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객실 바닥에 널브러져있던 셔츠를 집어 들어 팔을 꿰었다. 말 없이 단추를 채우고 코트를 입는 미유키 뒤로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서둘러 시동을 거는데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핸드폰에는 오늘 하루, 아니 24시간 동안만 해도 세 번째로 보는 착신 번호가 떠 있었다.

 

[에이준 밥 먹었어? 내가 바빠서 어제부터 못 챙겨 줬는데.]

 

젠장, 망할 고양이…!”

 

욕설을 짓씹으며 액셀을 밟아가며 도착한 집 안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미유키는 서둘러 현관문을 닫았다. 움직임에 반응해 현관 센서등이 활짝 켜졌다. 조용한 집 안, 센서등 불빛으로 대충 살펴본 거실은 나가기 전과 다를 바가 없어 미유키는 안심하고 구두를 벗었다. 코트를 벗어 쇼파에 던지고,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눈으로 침실을 찾은 그는 침대로 향했다. 순간적으로 긴장했던 몸이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안경을 벗어 침대 맡 선반에 두고, 셔츠를 벗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누운 그는 머리가 베개에 닿은 직후 단 잠에 빠져 들었다.

 

 


 

미유키는 눈을 떴다. 낯익은 천장과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이 눈에 들어 왔다. 다시 눈을 감은 그는 안경을 놓아 두었을 침대 옆쪽으로 손을 더듬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시트 대신 물컹한 감촉이 손에 잡혔다. 아직 호텔이던가? 부옇게 흐려진 기억을 더듬으며 완전히 눈을 뜬 그는 오른 손 끝이 닿아 있는 곳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내가 지금 아직 잠에서 덜 깼나. 왼 손으로 눈을 비빈 그는 침대 헤드 위쪽 선반에 놓인 안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또렷해진 시야로 다시 한 번 옆을 확인했다. 어이 없는 한숨과 함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이게 뭐야…..”

 

알몸인 남자가 미유키의 옆에서 새근 새근 잠들어 있었다. 평범한 애프터의 풍경과 확연히 다른 점은, 남자가 덮고 있는 이불 사이로 늘어진 갈색의 꼬리와 남자의 머리 위에 쫑긋하니 서 있는 귀 두 개였다. 미유키는 남자의 팔에 닿았던 손을 들어 남자의 머리 쪽으로 향했다.

 

머리띠겠지….”

 

조심스레 남자의 머리칼을 헤집어 보았지만 귀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남자의 머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아니 머리에 달려 있었다.’ 솜털이 보송하게 나 있는 귀를 잡자, 남자가 번쩍 눈을 떴다.

 

뭐하는 거야!!!”

 

그리고 날카로운 아픔이 오른팔 위를 달렸다. 셔츠 소매 위로 길게 그어진 선 밑으로 붉은 상처가 언뜻 보였다. 미유키는 눈을 크게 떴다. 셔츠 아래 왼팔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잔뜩 성이 난 듯한 남자가 귀와 꼬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 호박색 눈을 치떴다. 미유키는 재빨리 기억을 뒤졌다. 저 눈과 비슷한 시선을 받아 본 적이 있다.  

 

고양이….”

사와무라 에이준이거든!!”

 

미유키의 중얼거림을 들은 남자가 소리쳤다. 남자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 삐삐. 배터리가 거의 없다는 신호를 보낸 핸드폰이 곧 부르르 울리더니 꺼졌다.

 

크리스 선배…..”

 

! 하고 콧방귀를 낀 남자가 미유키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그리고 미유키에게 물었다.

 

크리스는 어디 있어?”

크리스 선배를 네가 왜 찾아?”

그야 난 크리스네 고양이니까!”

 

미유키는 완성된 퍼즐을 내려다보았다. 이불 위에서 잔뜩 경계 태세를 갖춘 남자, 아니 크리스가 24시간 전에 맡긴 고양이가 적대감을 한껏 담은 채 불안한 눈빛으로 방 안을 둘러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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