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사와로 주종

연성/SS 2014. 2. 27. 10:44

열 살 정도 차이나는 기사 크리스랑 소년왕 에이준이 보고 싶어서 짧게 짧게!



1.



아이는 여러 겹 껴 입은 옷이 갑갑한지 자꾸만 몸을 뒤틀었다. 크리스는 높은 왕좌에 앉아있는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
조금만 참으면 내일은 하루종일 공 받아 줄게."
"
으으...."

아이는 앉아 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다리를 까딱이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연회장 저 너머에 서 있는 유우키에게 시선을 주었다. 줄곧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신호를 알아채고 연회장 밖으로 향한다
곧이어 우렁찬 트럼펫 소리가 교황의 행렬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북적이던 연회장 안의 사람들이 모두 막 열리기 시작한 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다가온 교황은 영문도 모르는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낯선 손에 주춤하던 그는 크리스가 부드럽게 등을 미는 손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
폐하, 홀을 잡으소서."
"
? ?"
"
왕국에 평화 있으라. 그리고 왕께 영광을!"

엉겁결에 크리스가 내민 홀을 집어 든 아이의 머리 위로 교황이 왕관을 씌우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연회장에 모인 모든 사람이 합창했다.

"
왕국에 평화 있으라!"
"
그리고 왕께 영광을!"

모두가 새로운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동안 크리스는 다른 마음을 버렸다. 이제 에이준은 더 이상 돌봐주어야 할 아버지 친구의 아들이 아니다. 받들어야 할 왕이다. 울려퍼지는 맹세의 말을 입모양으로 따라하며 크리스는 왕좌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2.


 

에이준이 던지는 공은 아직 약하다. 크리스는 공이 에이준의 손 끝을 떠난 직후 재빨리 앞으로 다섯 걸음 걸어 나와 공을 받아냈다. 혹여나 놓치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크리스는 에이준과의 거리를 계산해서 적당히 힘을 빼고 던졌다. 흐물흐물한 궤적을 그린 공이 에이준의 글러브 앞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
뭐야, 크리스! 힘이 없잖아!"
"
오늘 훈련을 많이 해서 그래."
"
거짓말!"

있는 힘껏 담아 에이준이 던진 공을 크리스가 가볍게 받아냈다

"
크리스, 크리스는 기사야?"
"
아직 훈련 중이야."
"
그럼 기사 하지 마."

에이준이 쪼르르 달려와 크리스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어린 후계자가 이번엔 무슨 떼를 쓰려고 그러는 걸까. 크리스는 에이준을 안아 들었다

"
이미 견습 기사인데?"
"
나 클 때까지 하지 마!"
"
에이준?"
"
내가 왕이 되면."

가벼운 운동 직후라 따끈하게 온기가 오른 작은 몸이 품에 안겨 온다

"
그 때 크리스를 기사로 만들 거니까." 

그 때 기사단장 시켜줄 테니까 아직 기사 하지 마
기사 서임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어린 왕자가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을 느끼며, 크리스는 에이준을 안은 채 성으로 향했다

"
아직 열 번 밖에 못 던졌는데!"
"
저녁 식사 시간이야."

바둥거려봤지만 자신보다 열 살 더 많은 크리스의 힘을 이길 수 없었던 에이준이 치사해! 하고 투덜거렸다. 나중에 크리스보다 더 커질 거야! 하고 외치는 이 왕국의 후계자를 잘 달래면서 성으로 향하는 크리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연성 > S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사와 짧은 글  (0) 2014.04.12
[미사와] 잔디밭  (0) 2014.02.27
미사와 짧은 글  (0) 2014.02.24
쿠라사와 짧은 글  (1) 2014.02.24
미사와 짧은 글 두 개  (0) 2014.02.17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