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짧은 글

연성/SS 2014. 4. 12. 04:05

이제 잠이 깨?”

“…… …”

 

물 좀…. 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덧붙이자 테이블 옆 의자에 몸을 묻고 있던 미유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생수병을 들어 가볍게 사와무라에게 던졌다. 이불 밖으로 내민 손까지 닿지 못한 물병이 침대 위를 한 바퀴 구른다. 사와무라는 몸을 일으켜 물병을 잡았다. 미적지근한 물이 메마른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이 10년 전 노을진 운동장 위에서 헉헉대는 숨결을 정리하며 급히 물을 넘기던 기억을 선명하게 되살린다. 물병에서 입을 떼고 후우, 한 번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는 사와무라를 바라보며 미유키가 리듬을 타듯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몇 번 두드렸다. 미유키 건너편에 놓인 의자엔 대강 벗어두었던 사와무라의 옷가지들이 늘어져 있었다. 물병 뚜껑을 닫는 걸 지켜보던 미유키가 테이블 위에 벌어져 있던 지갑을 툭툭 건드렸다.

 

지갑 좀 봤어.”

.”

이거 언제 찍은 거야?”

 

긴 손가락이 지갑 안에서 꺼낸 것을 팔랑 팔랑 흔들었다. 아직 뿌연 머리 속을 한 번 고개를 흔들어 가라앉히고, 사와무라는 미유키가 들고 있는 사진에 시선을 집중했다. 미유키의 검지가 같이 찍힌 사람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사와무라는 그 사진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대학교 때여행 가서 찍은 거에요.”

그래.”

왜요?”

그냥.”

 

사진을 내려놓은 미유키는 사진 속 사와무라의 얼굴을 손으로 덧그렸다.

 

아직 젖살이 덜 빠진 것 같아서.”

“…. 그땐 어렸으니까요.”

 

물병을 침대 옆 협탁에 두고 사와무라는 다시 침대 위로 몸을 눕혔다. 이불 밖으로 내밀었던 어깨가 찬 공기에 닿아 시렸다.

 

이따 아침 먹고 사진 찍으러 가자.”

뭐하러요.”

재결합 기념?”

 

말해놓고도 본인이 머쓱한지 미유키가 시선을 돌려 창 밖을 향했다. 반쯤 커튼이 가려진 창가 너머로 아직 어둑어둑한 시내가 보였다. 이불을 끌어 올려 덮으며 사와무라는 다시 눈을 감았다.

 

누가 재결합했슴까.”

 

알람 울리면 깨워줘요.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시선을 무시하고 사와무라는 그대로 다시 잠들었다.

 

 

미유키는 사와무라를 바라보았다. 못 본 사이에 완전히 어른이 되었다 싶었다. 사와무라가 미유키의 후배였을 적, 공을 안 받아준다고 투덜거릴 때마다 부풀어오르던 볼을 꾹 찔러 보고 싶었던 마음을 몇 번이나 겨우 참았는지 모른다. 미유키가 졸업할 때까지 매달 했던 키 재기 내기에서, 매번 몇 센티미터 차이로 져서 부루퉁하던 얼굴도 기억한다. 아직 덜 여문 몸이 미유키를 와락 껴안았던 기억도 아직 바래지 않았는데. 한 번 뒤척인 사와무라가 미유키가 앉아 있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불 사이로 햇빛에 그을린 팔과 완연히 대비되는 하얀 어깨가 보였다. 날카롭게 다듬어진 얼굴선이 베개에 파묻혀 절반도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약간 벌어진 입가가 지금 그와 같은 공간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이 사와무라라고 알려온다. 미유키는 사진 너머로 웃고 있는 사와무라의 입술을 매만졌다. 잘 자라는 인사 대신으로 생각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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