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잔디밭

연성/SS 2014. 2. 27. 10:48

엔솔 메인 그림이 넘 좋더라구요ㅠㅠ 짧게 짧게...



그라운드 너머 잔뜩 풀숲이 우거진 길에서 녀석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풋풋한 풀내음이 공기 중을 떠돌았다. 나는 발걸음을 크게 옮겼다

"
, 와무라!!
"
사와무라임다!!"

툴툴대던 목소리가 내 얼굴을 확인하고 조금 기쁜 기색을 담는다. 나는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교복 너머로 비누향이 언뜻 풍긴다. 씻고 나온 듯 했다

"
기록표는 챙겨왔지?"
"
당연하죠!!"

어깨를 으쓱이는 녀석에게 오케이. 하고 대답해주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OB 친선 경기가 벌어지는 구장은 옆 동네에 위치해있었다. 그라운드 정비가 늦어지는 통에 학교 구장을 쓸 수 없게 되어 장소를 옮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경기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그곳까지 날라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다른 선후배들은 모두 이미 하나둘씩 배트와 공을 들고 구장으로 향했고, 병원에 다녀와야 해서 반조퇴 형식으로 빠졌던 녀석과 진로 상담이 있었던 나만 조금 늦게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매니저가 깜빡한 점수 기록표는 녀석이 챙기기로 했고, 나는 선배들 몫의 드링크가 담긴 비닐 봉지를 품에 안았다

"OB
들끼리 시합... 대단한 것 같슴다."
"
, 나도 좀 있음 OB인데."

가볍게 대꾸하며 몇 걸음 걸었는데, 녀석의 얼굴이 놀란 기색으로 변했다가 울상으로 바뀌더니 결국엔 딱딱하게 굳어진다

"....
선배 학교는요...?"
"
? 오늘 상담했는데."
"
..."

그대로 녀석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진동을 멈추지 않는다. 어디냐고 묻는 연락일 것이다. 나는 녀석을 재촉했다.

"
와무라, 뭐해."

어느새 골똘히 생각에 빠진 듯 바닥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사와무라가 고개를 들었다.

"
, 선배."
"...
?"
"
, 그게........!!"

갑작스레 변한 분위기에 대답하던 내 목소리도 살짝 어긋났지만 별명으로 부른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듯한 녀석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녀석이 더듬대다가 대뜸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깁스를 해서 팔을 고정시킨 상태라는 걸 잊은 채로. 갑작스레 중심을 잃은 녀석이 크게 비틀거렸고, 곧 왼쪽으로 쓰러지려고 했다. 나는 들고 있던 드링크를 바닥에 던지고 팔을 뻗었다

감싸 안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나 또한 발을 헛디뎌 비탈길 왼쪽 풀숲으로 함께 넘어졌다. 한바퀴 굴러 떨어진 셔츠 자락에 풀물이 배였다. 코 끝에 풍기는 풀내음만큼 풋풋한 눈빛이 흔들리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소리가, 와닿은 품 속에서 쿵쿵 울린다. 질문도 대답도 없이 시선과 고동만 남았다. 시선이 섞이는 순간, 나의 숨결과 녀석의 숨결 또한 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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