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불현듯 내 앞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내 손바닥 정 중앙에 떨어진 그 말을 붙잡아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리고 너를 바라보았다. 잡고 있던 손이 언젠가부터 떨어져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건 그 순간이었다. 싫다. 꽉 붙잡았던 손이 이제 나를 놓아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싫어.”

사토루.”

싫다고.”

 

굳은 얼굴의 네가 나를 바라보았다. 차갑게 놓인 네 손에 내 손을 뻗었다. 너는 손을 거둬 들여서 자켓 주머니에 푹 찔러 넣었다. 여태 억눌러왔던 너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만하자고!!”

싫어.”

난 이제 너 안 좋아해.”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너는 입술을 깨물고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그대로 계속 걷는다. 나는 달려나가 너의 팔을 붙잡았다. 어깨 위에 조금 쌓인 눈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너 안 좋아한다니까!!”

거짓말.”

거짓말 아냐!!”

 

내게 붙잡혀 있으면서도 끝까지 내 시선을 피하는 네 모습에 문득 속이 부글 부글 끓었다. 너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거짓말이잖아.”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헤어지자고!!”

싫어.”

 

네가 잡히지 않은 손으로 나를 밀어냈다. 나는 밀어내는 그 손까지 함께 붙잡았다. 그리고 걷기 시작했다.

 

이거 놔!!!”

싫어.”

놓으라고!!!”

싫어.”

 

잔뜩 반항하는 너를 껴안았다. 한참 몸부림 치던 네가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헤어지기 싫어.”

“……”

너는?”

“.…..”

그것 봐, 거짓말이잖아.”

 

네가 갑자기 내게 손을 뻗었다. 얼굴에 와 닿는 차가운 감촉에 나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미안해.”

.”

헤어지자.”

 

눈을 떴을 때, 너는 내 앞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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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헤어짐

연성/SS 2014. 2. 4. 03:16

사와무라는 오늘도 약속에 늦는다. 미유키는 차갑게 식은 커피 잔을 매만졌다. 먼저 만나자고 해놓고 5분씩 늦는 것은 예사에 핸드폰 연락은 또 제대로 받지도 않는다. 그래서 미유키는 사와무라와 만나기로 한 날이면 습관적으로 책을 한 권씩 챙기곤 했다. 주로 만나는 장소가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 등, 시간 때우기엔 마땅치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특이하게 사와무라가 전에 가보고 싶다고 한 카페에서 보자고 먼저 말을 꺼냈다. 책을 덮은 미유키는 카페 벽에 걸린 시계로 시선을 올렸다. 3 6. 이 곳이 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슬슬 사와무라가 올 때도 됐다. 미유키는 직원을 불러 오렌지 주스를 한 잔 시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꽤 되었건만 사와무라는 여전히 커피가 쓰다며 카페에 오면 주스 종류를 시키곤 했다. 역에서부터 여기까지 뛰어오면 꽤 목이 마를 테다. 주문을 받던 직원이 뒤늦게 미유키를 알아보고는, 주스와 함께 시키지도 않은 케이크 한 조각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지난 결승전도 잘 봤어요! , 이건 별 건 아니지만 서비스에요.”

감사합니다.”

어머 뭘요~ 경기장에서 볼 때 보다 직접 보니까 훨씬 미남이신 걸요!!”

핫핫하,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미유키 씨도 참. , 혹시 괜찮다면 사인 한 장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남편이 미유키 씨 팬이거든요~”

 

직원이 내려놓은 종이에 기계적으로 사인을 하며 미유키는 창가 너머로 힐끗 시선을 주었다. 사와무라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만날 장소를 바꾸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날짜가 적힌 사인지를 돌려 받은 직원이 활짝 웃으며 카운터 뒤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미유키가 핸드폰을 집어 든 순간이었다. 가게 문을 급히 연 남자가 성큼 성큼 큰 걸음으로 다가와 미유키 앞의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꾹 눌러 쓴 모자 아래로 성근 땀방울이 맺혀 얼굴을 타고 또르륵 흐른다. 미유키는 주스가 담긴 잔을 남자 앞으로 밀었다. 거친 숨을 깊은 호흡 한 번으로 정리한 사와무라가 고개를 들었다.

 

늦었잖아.”

미안해요.”

 

오다가 지하철을 잘못 타서.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대답했다. 미유키는 테이블 위에 두었던 책을 가방에 집어 넣었다. 사와무라가 목을 좀 축이면 다른 곳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와무라는 주스를 응시하다가 미유키의 의아한 시선을 느끼고 나서야 눈을 올려 미유키를 마주 보았다. 미유키는 새로운 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매장 안쪽으로 사라지는 직원을 곁눈질로 보고 아무 말 없는 사와무라를 재촉했다.

 

빨리 마셔. 여기 직원이 나 알아봤어.”

선배.”

주스 값은 내가 낼 테니까 다른 데 가자.”

선배.”

 

여전히 메마른 목소리가 듣기 거북하다. 미유키는 계산서와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이번에는 사와무라가 재촉하듯 미유키를 불렀다.

 

선배.”

“….. .”

 

연이은 부름에 결국 미유키는 대답했다. 내려다 보는 미유키의 시선을 그대로 담은 사와무라의 눈이 약간 흔들리다가 곧 잠잠해졌다. 가라 앉은 눈에 그대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미유키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췄다.

 

“….. 헤어져요, 우리.”

“……”

미안해요.”

“……”

“…. 가볼게요.”

 

사와무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굳은 미유키의 시선이 말 없이 뒤따랐다.

 

미안해요.”

 

도망치듯 마지막 말 한 마디만을 남겨놓고 사와무라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가게에 들어왔을 때와 같이 성큼성큼 사라졌다.

 

직원이 다시 나온 건 사와무라가 가게 문을 나서며 울린 종소리 때문이었다. 미유키는 카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산 도와드릴까요?”

.”

아까 오셨던 분은 그새 가셨네요?”

바쁜 일이 있다고 해서요.”

어머, 케이크도 안 드셨네.”

관리 중이라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카드를 건네고 직원이 가리킨 곳에 기계적으로 사인을 하며 미유키는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주스 잔에 맺힌 물방울이 또르륵 잔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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