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알람이 울리기도 전, 아니 날이 밝기도 전에 쿠라모치 요이치는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켜 앉자 어두운 방 안에서도 유독 침대 발치 부근이 새까맣게 보인다. 검은 안개처럼 침대 너머에 모여 있던 것이 점점 뭉치더니 어느덧 짐승의 형상이 되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건가? 쿠라모치가 눈을 비빈 사이 짐승이 크게 도약해 그를 침대에 쓰러트리듯 눕혔다. 짐승이 소리 없이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헉헉거리듯 입을 벌린 짐승이 쿠라모치의 목덜미로 고개를 내린 그 순간.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가 울렸다.

 

 

 

그래서? 그게 끝이야?”

, 이상한 꿈도 다 있다 싶더라고.”

 

아마 어젯밤에 좀비가 나오는 게임을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마에조노가 소름이 돋은 양 팔을 털었다. 쿠라모치는 대각선 앞자리에 앉은 사와무라의 접시에서 고기 반찬을 날름 가져와 한 입에 털어 넣었다. 평소라면 엑!!! 내놔!! 하고 바로 젓가락으로 반격을 가했을 후배가 아무 반응이 없다.

 

“…..”

사와무라?”

, 눈 뜨고 자냐?”

!”

 

쿠라모치가 테이블 밑으로 늘어진 다리를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차자 그제야 어, ?! 하면서 반응한다.

 

이젠 밥 먹다가도 자는 거야?”

, 아님다!!”

그럼 뭐해? 멍하니 있고.”

아무것도 아님다!! , 벌써 시간이!! 저는 먼저 갈게요!!”

 

접시와 밥그릇에 거의 손도 안 댄 채로 사와무라가 파드득 일어나 퇴식구로 향했다. 그리고 재빨리 식당 문을 열고 사라졌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카네마루와 토죠가 의아한 눈길로 식당 문을 바라봤다.

 

저 녀석 왜 저래?”

그러게…”

뭐라도 잘못 먹었나…”

, 근데 그래서 그 세이브 포인트에서 딱 뒤를 도는데….”

 

잠시 식당 너머에 꽂혀 있던 시선들은 쿠라모치가 어젯밤 새로 시작했다는 예의 그 좀비 게임에 대해 실감나게 설명하기 시작하자 다시 그에게로 쏠렸다. 우욱, 선배 저 토할 것 같아요!!

 

 

 

도망치듯 기숙사로 돌아온 사와무라는 가까스로 침대에 파묻히듯 엎어졌다. 쿠라모치가 말했던 내용이 자꾸 귓가에 울리듯 되풀이된다. 검은 안개, 짐승,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 사와무라는 입 안에 검지를 넣어 치열을 더듬었다. 앞니는 평소와 같고다른 이보다 길고 날카롭게 튀어나온 송곳니에 손가락이 닿는 순간 사와무라는 식당에서처럼 몸을 굳혔다.

 

“…….. 결국….”

 

사와무라는 그대로 머리를 베개에 박았다.

 

내가, 이러려고흐으….”

 

저 밑바닥에 조금씩 쌓아왔던 감정이 올라오는 동시에 욕구 또한 부글거리며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참고 참았던 것에 대한 갈망이 머리 속을 마구 흩뜨려놓는 감각을 사와무라는 죽도록 싫어했다. 그는 침 범벅이 된 손가락을 빼내고 손바닥이 새하얗게 변하도록 꾹 힘을 주었다. 시계바늘이 도는 소리가 조용한 방을 울렸다.

 

한참이 지나고 사와무라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평소와 달리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재빠르게 교복으로 갈아 입고 교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다급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학교 주변에서 자주 보이던 고양이 한 마리가 정문 근처에서 바싹 마른 미라 상태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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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다.”

 

아침 식사 후 식당을 빠져 나오던 누군가의 한 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부원들의 시선이 모두 그라운드 구석 구석을 뒤지느라 바빠졌다. 어디? 어디! 하고 속삭이는 소리에 니야아아옹!!! 하고 잔뜩 경계심 섞인 울음 소리가 뒤를 이었다.

 

핫핫하, 찾았다!”

 

자판기 옆 벤치 밑을 바라보던 미유키가 즐겁게 웃었다. 캬아옹!! 고양이가 지지 않겠다는 듯이 대답처럼 소리를 내지른다. 어느새 다른 선수들까지 어디 봐봐 하는 소리와 함께 모여들어 고양이가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우쭈쭈 하고 미유키가 손을 내밀자 캬옹! 하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발톱을 내보이고 등을 잔뜩 세운 채 더욱 더 구석으로 들어간다. 그러더니 활시위처럼 당겨진 몸을 한 번에 펴 그 탄성력으로 선수들 사이로 잽싸게 빠져나갔다. 앞뒤 보지 않고 달리다가 마침 식당에서 나오던 크리스의 발에 걸려 넘어지기 전까지는.

 

“…. 고양이?”

, 푸하하하 저 고양이 완전 바보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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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만!!!!”

 

숨까지 헐떡이며 외친 소리는 매정하게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를 넘지 못했다. 사와무라는 급하게 나오느라 꺾어 신은 운동화를 고쳐 신고 서둘러 계단으로 향했다. 사와무라의 집은 아파트 10, 걸어 내려가기엔 조금 힘들다 싶은 층이었지만 등교 시간을 맞이한 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오는 걸 기다리는 것보다는 러닝으로 다져진 다리를 믿어보는 게 완전한 지각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두 칸씩, 막판에는 세 칸씩 뛰어가며 도착한 1층 로비에서 잠시 숨을 고르려고 허리를 숙인 채 헥헥거리는데, 눈 앞에 조그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침부터 수고가 많아, .”

, 이 자식….”

, 벌써 여덟 시네.”

?!?!”

 

거친 숨을 흐읍! 하는 심호흡으로 정리하고, 사와무라는 벌떡 고개를 들었다. 아침 연습에 늦으면 불펜에 서는 것은 고사하고 하루종일 또 그라운드를 뛸 게 뻔하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 사와무라를 올려다 본 맹랑한 꼬맹이가 다시 손목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 미안해.”

, 나중에 두고 보자!! 지금은 내가 바빠서 그런데, !!!”

지금 7 40분이야.”

!!!!!!!!!!!!!”

 

아직 시계를 잘 못 봐서~ 하고 웃는 얼굴이 명백히 의도적인 임을 내포하고 있어서 사와무라는 크게 소리친 것과는 달리 온 몸에서 힘이 주르륵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서둘러 나오느라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넥타이를 꺼내 주섬주섬 매는 손길이 분주하다. 미유키는 사와무라를 빤히 보다가 사와무라 앞에 무릎을 살짝 굽혔다.

 

.”

형 지금 바쁘다.”

운동화 끈은 묶고 다니지 그래?”

 

안 그럼 다쳐. 씨익 웃어 보인 미유키가 몸을 일으키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와무라의 손을 덥석 잡았다.

 

, 손 놔라!!
끈 매줬으니까 학교까지 데려다 줘.”
싫어!! 나 늦었다고!!”

길 잃은 어린이를 도와주느라 늦었다고 해.”

우리 감독님은 그런 변명 안 통하거든??!!”

그러지 말고~”

 

따끈한 체온이 강하게 잡아 끄는 것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사와무라는 입술을 깨물며 미유키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그라운드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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