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영업해주신 김긍졍님께 억지로 보내드린(?) 미유사와 첫 쪽글.
다이에이 파주세요.. 흑흑
(2013.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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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졸업식 이후로 처음 뵙는 것 같슴다!”
“그렇네. 오랜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3년. 사와무라가 말하는 졸업식은 그 3년 전을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시간은 공평하게 흘렀다. 처음 만났을 때 나보다 머리 하나 만큼 작던 녀석은 이젠 내가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선배, 술 하심까?”
“그런 건 원래 내 쪽에서 묻는 질문이라고. 너는?”
“헤헤, 간단히는 하지 말임다~”
“그래? 그럼 하늘 같은 선배님께 한 번 따라보든가.”
“미유키 선배가 하늘 같다니 하늘이 두 쪽 날 일임다.”
“잔소리 말고 얼른 따라.”
싱글 싱글 웃던 사와무라가 맥주병을 조심스레 들고 내 잔에 따르기 시작한다. 병을 잡은 손이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한두 번 따라 본 게 아닌지 거품 없이 잔을 채우는 맥주를 바라보며 나는 내가 여기에 오게 된 계기를 생각했다.
쿠라모치에게서 망년회를 빙자한 동창회 연락을 받은 건 2주 전이었다. 시즌이 아닐 때는 꺼두는 연락용 휴대폰이 아닌 사적인 휴대폰으로, 그것도 메일도 아닌 전화로 연락하는 대범함은 역시 쿠라모치다웠다.
“쿠라모치? 무슨 일이야.”
-다다음주에 세이도 야구부 망년회 있으니까 나와라. 이상!
“야, 끊지 말고!”
-슬슬 얼굴 비출 때도 되지 않았냐? 선배들도 그렇고 후배들도 그렇고 나한테 네 소식 물어보는 거 이제 귀찮으니까 그냥 나와라 엉?
협박조의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올해도 일이 있어서 못 간다고 대답하려던 내 말은 전하지도 못한 채로.
당일 두 시간 전까지도 아파서 못 간다고 연락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미 시간이 조금 지났다는 걸 알고 급히 도착한 가게는 이미 후끈하게 달아올라있었다. 오랜만에 뵙는 선배들께 인사 드리고 안내 받은 자리는 하필이면 사와무라 앞이었다. 사와무라 또한 볼에 발갛게 열이 오른 것을 보아하니 이미 선배들에게서 몇 잔 얻어 마신 듯 했다.
“자, 이번엔 선배가 제 잔 채워 주실 차례임다!”
“너는 물이나 마셔. 벌써 꽤 마신 것 같은데?”
“사나이 사와무라 에이준! 이 정도로 죽지 않슴다!”
“그러다가 그저께 술자리에서 죽었잖아, 에이준 군.
사와무라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코미나토 – 동생 쪽 – 가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그건! 사케여서 그랬고! 맥주는 괜찮다고! 하고 외치는 사와무라가 자신 있게 자신의 잔을 나에게 내밀었다. 고등학교 시절 근거 없이 공을 받아달라고 외치는 모습이 겹쳐 보여서 나는 괜히 맥주 대신 콜라를 따라주었다.
“핫, 감사함다!”
“에이준 군…”
“하룻치도 한 잔?!”
“아냐, 괜찮아…”
말 끝을 흐린 코미나토는 내 쪽으로 부탁한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더니 슬쩍 자리를 떠서 사라졌다. 잔에 담긴 게 술인지 음료수인지도 구분 못 하는 주정뱅이 후배를 맡기고 떠나는 뒷모습이 내가 오기 전까지 계속 이 녀석을 맡고 있었던 듯 했다. 사와무라는 흔들리는 잔을 들어 올렸다.
“자 선배! 건배임다!”
“그래, 그래.”
“세이도를 위하여!”
가볍게 들어올린 내 잔과 사와무라의 잔이 맞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 선배 원샷임다, 원샷! 시끄럽게 소리치는 녀석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며 나는 맥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씁쓰레하게 넘어가는 것이 거슬렸다.
“그 땐, 진짜 재수 없는 얼굴이라고 생각했슴다~ 능글하게 웃질 않나, 아즈마 선배랑 시합할 때, 속이질 않나… 다시 세이도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슴다! 뛰어 가래서 뛰어갔더니 감독님한테 지각 걸리고!”
“네, 네 후배님.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다~ 죄인입니다.”
“거기다가! 그 다음에도…”
완전히 취기가 오른 건지 사와무라는 테이블에 몸을 반쯤 기댄 채 웅얼거리듯이 뭐라 뭐라 외치고 있었다.건성으로 대답하며 주위를 슬쩍 살피자 다들 웬만큼 취기가 올랐는지 2차! 2차!를 연호하고 있었다. 아즈마 선배와 이시사키 선배 사이에 낀 유우키 선배마저 2차를 외치고 있는 모습에 나는 불현듯 이 가게 안에서 제 정신인 사람이 몇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임의 총무 격인 쿠라모치가 얼굴이 완전히 풀린 토죠를 짊어지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유키, 2차 갈 거냐?”
“아니, 내일 아침에 본가에 들러야 해서. 사와무라 녀석 들여 보내고 나도 갈게.”
“그 녀석, 크리스 선배 못 오셨다는 얘기에 침울해있더니만 그래도 너 만나서 기분 풀린 모양이다. 알겠어,선배들한테는 대강 둘러댈 테니까 들어가라.”
내가 왜 총무를 맡았는지 몰라, 하고 한숨을 푹 쉰 쿠라모치는 토죠를 끌면서 선배들을 이끌고 다음 가게로 옮길 정리를 하는 듯 했다. 나는 사와무라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흔들리는 초점과 완전히 달아오른 볼, 그리고 풀린 발음이 이 녀석 또한 슬슬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크으, 그 때는 선배라고도 부르기 싫었슴다. 진짜.”
“사와무라.”
“근데, 근데 말임다, 미유키 선배.”
주절대던 사와무라가 테이블에 완전히 늘어지며 내게 시선을 맞춰왔다.
“나, 처음으로 선배한테 던지고 나서-”
“…..”
“선배한테 한 눈에 반했던 것 같슴다.”
시선의 끝에 문득 눈물이 어린 것 같았다.
“던질 때마다, 그 때마다 더 반했던 것 같슴다.”
“…..”
“그 땐 몰랐슴다. 그냥,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슴다.”
“…..”
“선배를, 좋아했슴다.”
그 말을 끝으로 사와무라는 덜컥 고개를 테이블에 처박았다. 완전히 잠에 빠진 듯 고롱거리는 숨소리가 뒤를 이었다.
나도, 너를 좋아했었다.
처음 공을 받았을 때, 재밌는 공을 던지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다.
다시 세이도에서 만났을 때, 놀란 듯 둥그래진 눈이 다람쥐 같다고 생각했었다.
처음 마운드에 올랐을 때, 긴장과 흥분으로 떨리는 손 끝이 안쓰럽다고 생각했었다.
여름 예선 결승전이 끝났을 때, 충격으로 무너지는 네 몸을 끌어안고 괜찮다고 얼러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만약 너와 내가 마음을 서로 고백했다면 지금 우리는 연애를 하고 있을까. 나는 술에 취해 늘어지는 사와무라를 들쳐 업고 가게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