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사와 AU. 크리스가 에이준보다 아홉 살 많습니다! 아마도 더 이어질 수도 있고...?
아마도 키잡 목표....?? 서니님과 얘기하던 크리사와에서 멋대로 이것 저것 더 넣어봤습니다.
(201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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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오는 길, 작은 어깨에 매달린 란도셀이 흔들리며 경쾌한 소리가 난다. 골목길 코너를 바로 돌자, 낯익은 얼굴이 불쑥 나타나 에이준을 덥썩 안아 올렸다.
“잘 지냈어, 에이준?”
“유우 형!!”
다정한 목소리와 따뜻하고 넓은 품에 매달려 에이준은 오랜만에 한껏 온기를 즐겼다. 품 안으로 파고든 에이준을 단단하게 끌어 안아 주며, 크리스는 부모님이 기다리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형, 나 있잖아, 오늘 학교에서 야구했어!”
“에이준이 야구를?”
“응, 투수했어!!”
“오, 포수는 누구였는데?”
“옆 반 오노. 근데 카네마루가…”
끊임없이 재잘대는 에이준의 말에 하나하나 고개를 끄덕여주는 크리스의 얼굴에도 곧 미소가 번져갔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앉은 식탁은 평소보다도 활기가 넘쳤다. 아니, 시끄러웠다. 에이준은 저녁을 먹는 것도 잊은 채 한 달 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려 들었고 결국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숟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이준의 이야기를 들으며 식사를 끝낸 크리스와 아버지는 최근 코시엔 현황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다. 에이준이 마지막 남은 브로콜리 조각을 반 억지로 다 먹어 치우자, 어머니는 크리스가 집에 오는 길 디저트 가게에 들러 사온 딸기 케이크를 한 조각씩 잘라서 내어주었다.
“그럼 오늘은 자고 가는 거니?”
“네, 외박계 받아서 나왔어요.”
“형! 나랑 자자!”
입가에 크림을 묻힌 채 케이크를 먹던 에이준이 그새 크리스가 도망가기라도 한 듯 퍼뜩 고개를 들고 외쳤다.
“에이준, 형이 먹을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지?”
“다 먹고 나서 얘기할 것. 소리 지르지 않을 것!”
“자,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넵…”
금새 풀이 죽어 케이크를 포크로 뒤적이는 모습에 크리스의 부모님과 크리스는 에이준 머리 위로 웃음기 담긴 시선을 교환했다. 이제 아홉 살이 된 에이준은 또래 아이들보다 활발한 편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커피 좀 더 가져올게요, 하고 어머니가 부엌 쪽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말 없이 포크로 케이크를 푹푹 쑤시는 에이준의 접시 위로, 딸기가 하나 나타났다.
“어?!”
“자, 이건 형이 주는 상. 오늘 집에 오자마자 손 깨끗이 씻었지?”
“응! 근데 형은 딸기 안 먹어?”
“에이준이 맛있게 먹으면 그걸로 괜찮아.”
접시 위에 딸기가 둘. 딸기와 크리스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에이준이 이윽고 큰 결심을 했는지 자기 케이크 위에 있던 딸기를 조심스레 포크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크리스의 케이크 위에 딸기를 내려놓는다.
“자, 이건 형이 먹어!”
“네 딸기잖아?”
“한 달 동안 수고했다고 내가 주는 상이야!”
아홉 살 어린 동생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며 크리스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쟁반에 커피 두 잔을 들고 돌아온 어머니가 무슨 일이니? 하고 물었지만 웃느라 정신 없던 크리스와 그런 크리스를 흘겨보는 에이준 대신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입가에 미소를 지은 아버지가 나중에.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자신의 팔을 베고 곤히 잠든 에이준을 내려다보는 크리스는 에이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잠결에도 그것을 느꼈는지, 혀엉… 하는 잠꼬대가 대답으로 돌아왔다.
크리스와 에이준이 처음 만난 것은 크리스가 열 다섯, 에이준이 여섯 살이던 삼 년 전이었다. 에이준의 조부모는 크리스의 아버지가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옆집에 살았던 이웃으로, 아직 일본어가 서툴던 그를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었다. 또, 크리스의 어머니를 그에게 소개해준 은인이기도 했다. 크리스의 부모가 먼저 이사를 가게 되면서 한동안 연락이 끊겼었지만 에이준의 조부 장례식에서 오랜만에 만나면서 에이준의 부모와는 가끔 안부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랬던 에이준의 부모마저 어느 저녁 퇴근길에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여섯 살 에이준은 세상에 혼자 남게 되었다. 남겨진 재산도 거의 없는 아이의 운명이 그렇듯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다가 고아원에 맡겨지는 것이었지만 뒤늦게 소식을 접한 크리스의 아버지가 에이준을 데려오면서 그날부터 사와무라 에이준은 타키가와의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중학생이었던 크리스의 학교가 결승전에서 패퇴한 날이었다. 열정을 못다한 설움을 품고 해가 질 때까지 우울하게 학교 그라운드에서 주저 앉아 있다가 돌아온 집에서 크리스는 에이준을 만났다. 정확히 말해선 에이준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게 맞지만.
분함과 부족함에 잠이 오지 않아 간단히 겉옷을 걸치고 산책이라도 하려던 참이었다. 방문을 열고 1층으로 내려오려는데, 살짝 열린 옆방 문 사이로 훌쩍이는 흐느낌이 들려왔다. 들여다보니 아이는 큰 싱글 침대 위,이불 안에서 소리를 죽이고 울고 있었다. 그제서야 크리스는 일주일 전부터 이 집에서 같이 살게 된 아이가 있다는 것을 머리 한 구석에서 기억해냈다. 합숙소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가 왔던 모양이었다.
부모를 잃고 친척 집을 떠돌다가 도착한 전혀 모르는 사람의 집. 부모님은 아이가 활발하게 웃고 떠든다며,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고 크리스에게 말했지만 크리스는 중학교 1학년 때의 첫 합숙 기억을 떠올렸다. 부모님 곁을 떠나와 낯선 곳에서 자는 그 느낌은 잊을 수 없었다. 저 아이는, 지금 시합에 진 나보다 얼마나 더 슬프고 괴로울까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크리스는 발소리를 죽이고 침대 맡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침대에 살며시 앉았다. 스프링이 한 번 삐걱였다.그리고 아이가 놀란 듯 크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도 들렸다. 크리스는 이불째로 아이를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
“안녕?”
“…..”
“내 이름은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 편하게 불러.”
“…..”
“앞으로, 네 형이 될 사람이야.”
이불이 조용히 들썩였다. 크리스는 아이의 머리로 짐작 가는 부분을 쓰다듬었다.
“형 얼굴 보고 싶지 않아? 형은 네 얼굴 보고 싶은데.”
“…..”
“괜찮아. 앞으로는 형이 있으니까.”
조용 조용 이르던 크리스의 말이 끝나자, 아이가 조심스레 이불을 끌어 당겨 내렸다. 눈물범벅에 새빨갛게 충혈된 두 눈이 크리스를 빤히 올려다 보았다. 크리스가 조용히 눈을 맞추자, 히끅 하고 한 번 딸꾹질을 한다. 시합에 진 이후 처음으로, 부드러운 미소가 크리스의 입가에 걸렸다.
“….준…”
“응?”
“내 이름, 사와무라 에이준이야.”
“에이준.”
조그만 소리로 흘러나온 이름을 다정한 목소리로 되풀이하자 아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날 밤 에이준은 그대로 크리스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듣고 보니, 에이준은 일주일 내내 밤마다 울면서 거의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알고 계셨어요? 하고 되묻자 크리스의 어머니는 너도 네 나름대로의 위로가 필요해 보였단다. 하고 알쏭달쏭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 넘기자 혈색 좋은 이마가 드러난다. 가지런히 감긴 두 눈과 달리 꿈 속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지 양 손은 이리 저리 움직이며 난리다. 에이준의 이마에 한 번 입맞춤을 남긴 채 크리스는 처음 만났던 날 밤처럼 속삭였다.
“잘 자, 에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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