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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영고모

연성/글 2014. 3. 7. 16:16

영원히 고통 받는 쿠라모치... 사랑해 모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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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폰을 어디에 뒀더라.

귓가에 들릴락 말락 속삭이는 소리들을 무시하기 위해 쿠라모치는 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교과서와 노트, 글러브와 야구공 등이 잔뜩 뒤섞인 책상에서 조그만 이어폰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서랍에서 한쪽이 망가진 헤드폰을 꺼낸 쿠라모치는 들고 있던 게임기 윗부분에 이어폰 잭을 꽂았다. 그나마 오른쪽 귀만이라도 평화를 되찾고 싶었다. 하지만 게임기에 꽂힌 시선과 안 들리는 헤드폰 안쪽의 왼쪽 귀가 자꾸 게임기 바깥으로 향하려고 하는 바람에, 결국 쿠라모치는 침대로 다시 돌아갔다.

 

아씨, 좀 저리 가!!”
공부 가르쳐주겠다는데 불만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여튼 좀 떨어지라고! 왜 이렇게 달라붙는 건데!!”
이래야 교과서를 같이 볼 수 있잖아.”

언제는 교과서 내용 다 외웠다며!!”
누가 그래? 내가?”

 

벽 쪽을 향해 돌아 누웠지만 방 저쪽에서 속살대는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쿠라모치는 게임에 집중하기로 했다. 벌써 한 판 져서 이번 판에는 꼭 이겨야 했다.

 

됐으니까 당신 방으로 돌아가!”
?”
쿠라모치 선배가 이번 판 지면 분명히 화풀이는 내가 당한다고!!”

사와무라, 좀 섭섭하다? 쿠라모치는 선배고 나는 그냥 너야?”

 

상대 캐릭터가 필살기 준비 자세를 취한다. 쿠라모치는 재빨리 회피 버튼을 눌렀지만 미유키의 목소리에 손이 미끄러져서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쿠구궁, 하는 효과음과 함께 상대방의 발차기가 쿠라모치의 캐릭터를 가격한다.

 

, 그럼 뭔데.”

뭐겠어?”

“… 몰라.”

진짜 몰라?”

“……..”

다행히 두 번째 판 초반이라, HP가 많이 남아 있었다. 절반 가량 줄어든 게임기 화면 상단의 체력 바를 확인하고 쿠라모치는 심기일전했다. 이 캐릭터만 이기면 이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늘 두 시간이나 들여가며 거의 끝까지 왔는데 여기에서 패해서 다시 시작하는 건 죽어도 싫었다. , 쉬익! 위협적인 연속 발차기 공격을 성공적으로 피하고, 쿠라모치는 화면 속으로 빠져들 정도로 집중했다. 벽 쪽으로 돌아 누워 있던 몸을 일으키고 침대에 앉아 여태 맞은 것의 카운터 공격으로 상대 캐릭터를 한 방에 날리려는 순간.

 

게임기 너머로 게이 커플 절친한 친구와 룸메이트 후배 의 키스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헤드폰 오른쪽에서 나오는 엄숙한 효과음과 함께 게임기 화면을 가득 채우는 K.O 글자를 본 쿠라모치는 한 번 심호흡을 한 후, 평소 사와무라가 빠뜨린 공을 주워 홈으로 백업하듯 침착하고 재빠르게 게임기를 던졌다. 게임기에 머리를 맞은 미유키가 뭐야, 있었어? 하고 대답한 순간 쿠라모치는 조용히 넘어가려던 1분 전의 자신을 포기했다.

 

당장 나가, 이 호모 자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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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사와] safety

연성/글 2014. 3. 2. 11:14

존잘님께 리퀘했는데 제가 쓰게 된... (???) 느와르 풍 (??)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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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타겟.”

 

소파에 막 앉으려는 후루야의 머리로 뭔가 날아왔다. 뒤통수를 약간 비껴나가게 맞힌 종이 뭉치가 소파 위로 마구 흩어졌다.

 

이게 뭐야?”

이번 타겟 정보라고.”

 

가까스로 놓치지 않은 머그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후루야가 주섬주섬 종이를 주워 모으며 물었다. 소파 등받이에 몸을 걸치고, 사와무라가 짜증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첫 장을 훑는 후루야의 시선 위로 사와무라가 말을 쏟아냈다.

 

넌 왜 한 번 말해주면 못 알아듣냐?”

얘기 안 했잖아.”

얘기했거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높낮이 변화가 없는 목소리가 짜증을 부추긴다. 사와무라는 빽 소리 지르고 후루야가 미처 줍지 못한 종이를 소파 등받이에서 팔을 뻗어 가리켰다.

 

저거! 저거도 있잖아!”
성장 배경이 필요해?”

, 너는 찾는 사람 수고는 무시하냐? ?”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여태까지 살아온 과정을 알아 봤자 뭐해. “

 

사와무라가 가리킨 종이를 주우며 후루야가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리 있는 말에 대답할 말이 없어진 사와무라가 불만을 잔뜩 담아 입술을 삐죽였다.

 

날짜랑 장소는 거기 나와 있는 거고.”

.”

 

단답형으로 끊어지는 말에 사와무라는 요 며칠 내내 받아왔던 스트레스가 단숨에 한계치까지 치솟는 것을 느꼈다. 딱히 저걸 조사하다가 총에 맞을 뻔해서는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자신에 비해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에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 후루야가 훨씬 형편이 낫다는 생각이 머리 구석에서 와글거렸다.

 

좋겠네, 너는.”

뭐가?”

누가 목숨 걸고 구해온 정보 쓱 보고 그냥 가서 총만 탕 쏘면 되잖아.”

 

다 봤지? 없앨 거야. 후루야의 손에 들려 있던 종이 뭉텅이를 빼낸 사와무라가 휴게실 구석 종이 분쇄기 앞으로 향했다. 한 장씩 차례대로 넣자 드드드득 하는 소리가 좁은 휴게실을 꽉 채웠다.

 

다쳤어?”

미쳤냐? 내가 다치게?”

그럼 왜 그래.”

 

종이를 집어 넣던 손 위로 다른 손이 겹쳤다. 잡아오는 후루야의 손을 내친 사와무라가 분쇄기 전원을 껐다.

 

꺼져. 너한테 대줄 생각 없으니까.”

난 왜 안 돼?”

 

어깨에 닿는 손을 완전히 밀치고 사와무라가 흉흉한 눈빛으로 머리 하나 위의 후루야를 쏘아보았다.

 

너 같은 놈한테 대줄 만큼 쓰레기는 아냐.”

 

으드득, 이 가는 소리와 함께 사와무라가 휴게실 문을 나섰다. 후루야는 텅 빈 휴게실 테이블 위에 놓인 차갑게 식은 코코아를 바라보았다. 주려고, 타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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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작가 미유키 x 편집부 사와무라 AU!

시간적으로는 그 소설보다 앞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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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무라, 이제…”

“…..”

사와무라 군?”

 

한 번 더 불러봤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어서, 미유키는 바쁘게 타자를 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앉아 있던 의자를 돌려 뒤를 향했다. 원고 뭉치를 쥔 채로 사와무라는 잠들어 있었다. 쇼파에 몸을 완전히 기대고 깊은 잠에 빠진 것을 보아하니 잠든 지 꽤 지난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대화했던 게 언제였더라, 생각하며 미유키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새벽 3 51. 1시 반쯤에 사와무라가 커피를 가져왔던 이후로 완전히 집중해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미유키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 앉아 있어서 뻐근해진 근육을 살살 스트레칭으로 풀어주며 조심스럽게 사와무라의 옆자리에 앉았다.

 

, 편집자가 작가보다 먼저 자냐?”

 

고른 숨소리가 대답을 대신한다. 가까이에서 본 얼굴이 좀 핼쑥해져 있어서 미유키는 새삼 사와무라가 편집부에서 일한다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 하는 행동거지로 봐서는 아무리 봐도 운동하게 생겼는데.

 

잘 거면 편하게 자던가.”

 

지난 번 사와무라가 낑낑대고 1층에서부터 들고 왔던 접이식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 시작하면 웬만해선 끝날 때까지 잠들지 않는 편인 미유키는 필요 없다고 손을 내저었지만 편집부에서 선물로 들어온 거고 밤 샐 때마다 자기가 여기서 자겠다며 큰소리친 사와무라였다. 그래놓고선 쇼파에 불편하게 기대어 자는 모습이, 미유키는 괜히 귀여웠다.

 

나 끝나는 거 안 기다리고 그냥 잔다면서.”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가자 고롱대는 숨결이 얼굴과 함께 마음 한 구석도 간질인다. 사실 미유키는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다. 이 전에 미유키를 맡았던 편집자들도 미유키가 끝났다고 연락하기 전까지는 작업실 방문을 삼가는 쪽이었다. 내 영역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을 느끼는 미유키의 성격을 알고 난 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오늘은. 미유키는 사와무라가 쇼파에 앉아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글을 써내려 갔었다.

 

그렇게 안 잡고 자도 누가 안 훔쳐 가는데 말야.”

 

왼손에 잡혀 있던 펜은 살짝 힘을 주는 것으로 빼낼 수 있었는데,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원고는 아무리 잡아 당겨도 쉽사리 놓지 않았다. 결국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어 원고를 빼낸 미유키는 헛웃음을 흘렸다. 잔뜩 구겨진 원고지가 급히 흘린 글씨로 가득했다. 아이디어는 자꾸 떠오르는데 밀려오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나도 이렇게 좋아해주면 얼마나 좋아, 그치 에이준 군?”

 

여전히 대답 없는 사와무라에게 혼잣말을 하듯 말을 건넨 미유키는 쇼파 등받이에 기대 있는 사와무라의 고개를 슬쩍 자신의 어깨로 당겨 안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는다. 귓가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숨결을 들으며 미유키도 눈을 감았다. 아침이 되어 완성된 원고를 본 사와무라가 왜 안 깨웠냐고 빽빽댈 것을 알람 삼아 일어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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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붕을 뿌셔뿌셔 팝핀뿌셔!!!!! 예아ㅏㅏ!!!
아포님이 ㅇ ㄸㄹ ㅇㅎㄴ 에이준이랑 고딩 미유키를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 음... 어... 여튼 캐붕!! 캐붕 쩌러여!!!! 이에아아아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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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깬 사와무라는 늘어난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배를 벅벅 긁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마셨다고 생각했는데, 침대 위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걸 보니 예전에 비해 확 떨어진 체력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띵동, 띵동. 끊임 없이 울리는 초인종 소리를 들으며, 사와무라는 주말 늦은 아침대인 이 시간에 찾아올 법한 사람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신문은 일요일에 안 오고, 우유 배달은 월 수 금이다. 맨션 주인은 돈 문제가 아닌 이상은 아예 맨션 근처에 나타나지도 않으며 이번 달 월세는 지난 주에 자동 이체로 빠져나갔을 것이다.

사와무라가 멍하니 누워 생각하는 사이에 초인종 소리는 어느새 노크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똑똑똑보다는 쾅쾅쾅에 가까운 소음이 맨션 복도까지 울린다. 이 정도면 신경질적인 옆집 여자가 나와서 빽빽 소리 지를 때도 됐는데. 쓸 데 없는 일로도 집 주인과 언성을 높여 가며 싸우던 까칠한 목소리가 어서 빨리 나타나 저 소음을 없애주기만을 기다렸지만 끝내 옆집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노트 소리는 십 여분 가까이 더 이어지다가 멎었다. 아쉽게도 그녀는 지금 집에 없는 모양이었다. 필요하면 없다니까. 사와무라는 옆으로 돌아 누웠다. 아직 일요일은 한참 남아 있었고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재킷을 대충 걸치고 구두를 꺾어 신은 채로 사와무라는 급히 현관문을 잠갔다. 일찍 잘 생각이었는데, 늦은 저녁에 받은 카네마루의 연락에 평소보다 더 늦게 잠들게 되었다. 또 차였다는 레퍼토리를 안주 삼아 마시기 시작한 게 새벽이 넘어서야 마무리가 되어서 오늘은 알람도 듣지 못하고 한참 늦게 일어난 것이었다. 재킷 주머니의 핸드폰과 지갑을 확인하고, 구두를 제대로 신으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옆집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썩 좋아하는 이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인사는 해야겠지 싶은 마음에 왼쪽 구두 뒤축에 손을 넣어 세우며 사와무라가 인사를 건넸다.

 

나카무라 씨, 좋은 아침임다.”

안녕하세요.”

 

나카무라 씨는 아니지만요. 확연히 낮은 남자 목소리에 사와무라가 번쩍 몸을 일으켰다. 짙은 남색의 교복 블레이저가 시야를 꽉 채웠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201호 앞에 서 있었다.

 

미유키 카즈야입니다.”

사와무라… 에이준임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OL인 게 분명한 이웃의 새 애인이 고등학생이었단 말인가. 사와무라는 자신과 별 차이가 없는 눈높이를 흘낏 흘낏 곁눈질로 보다가 미유키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얼른 고개를 틀었다. 잘못한 건 없지만 괜히 가슴 한 구석이 찔렸다. 사와무라는 머뭇머뭇 미유키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 미유키 군? 그럼 나카무라 씨와는 관계가…?”

나카무라 씨요? 그게 누군데요?”

?”

, 혹시 전에 살던 여자분 성함인가지난주에 여기 새로 이사 왔어요.”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미유키가 갑자기 꾸벅 인사를 해서 사와무라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하고 인사를 건네고 가방을 고쳐 맨 미유키가 계단으로 향했다가 갑자기 몸을 확 틀었다. 지난주쯤에 맨션 앞에 가구가 많이 나와 있어서 뭔 일인가 싶었었는데, 하고 기억을 되새기던 사와무라가 갑자기 자신에게로 향한 그림자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근데 사와무라 씨.”

“… ?”

출근 안 하세요? 벌써 8시인데.”

 

손목에 찬 시계를 흔들어 보인 미유키가 의아한 듯 물었다. 사와무라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한 번 확인하고 말없이 미유키를 스쳐 지나 우당탕탕 달려나갔다. 주차장으로 달리는 사와무라의 뒷모습을 미유키가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지각해서 상사에게 잔뜩 깨지고, 오늘 업무 시간 내내 골치 아픈 상대에게 걸려서 허둥댔다.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업무를 내버려두고 일찍 퇴근하던 사와무라는 신호에 걸려 차를 세웠다가 보도를 걷고 있는 미유키를 발견했다. 보도 쪽으로 슬슬 차를 붙이고 창문을 내린 그는 미유키를 불렀다.

 

저기!!!”

, 사와무라 씨.”

 

뒤에서 외친 소리에 미유키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다가 사와무라를 발견하고 반색했다. 이미 어두운 기색이 완연한 시간대는 고등학생의 하교 시간대와는 좀 거리가 있었다. 맨션까지는 꽤 멀었기에 일단 사와무라는 미유키를 차에 태웠다.

 

지금 가는 거야?”

, 사와무라 씨는 퇴근하신 거에요?”
….. 근데 고등학생이 지금 하교한다니 좀 늦네.”

야구부라서요.”

 

야구부. 몇 년 만에 듣는 추억 어린 단어에 사와무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조수석에 앉은 미유키가 오늘 연습은 일찍 끝난 편이에요, 하고 덧붙였다. 하긴, 연습이 끝나면 어둑어둑해지곤 했었다. 옛 기억을 떠올린 사와무라는 한결 친근해진 마음으로 핸들을 꺾었다.

 

나도 야구했었는데, 고등학생 때!”
진짜요? 어디 고등학교 나오셨는데요?”

세이도라고 알아?”

저 지금 세이도 다녀요.”

 

, 정말?! 반가운 마음으로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한결 높아졌다. 아직도 감독님은 무섭냐, 그라운드 관리는 어떻냐, 하는 이야기를 주절 주절 늘어 놓자 오늘 하루 있었던 스트레스가 좀 풀어지는 것도 같았다.

 

이렇게 늦게 끝내주시는 거 보면 여전히 많이 무서우신 것 같네.”

그만큼 선수들을 사랑하시는 것 같으니까요.”

맞는 말이야. , 어머니가 기다리는 거 아냐?”

 

사와무라가 인사차 건넨 말에 미유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 자취해요.”

? 여기서 혼자?”

, 원래는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했는데부모님 사이가 요즘 많이 안 좋아지셔서요.”

 

어머니가, 도피처가 필요하시대요. 무덤덤하게 말한 미유키가 확 변한 사와무라의 안색을 보고는 손을 절레 절레 흔들었다.

 

아직 심각한 건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렇긴 한데 그게….”

늘 그러셨으니까요, 두 분은.”

, 그래, 그럼 네 포지션은 뭔데?”

 

사와무라가 애써 화제를 바꾸었다. 그 노력에 부응하듯 미유키도 오늘 있었던 연습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약간씩 굳어진 표정과 시선은, 두 사람 모두 부자연스러웠다.

 

 

 

새 프로젝트의 시작과 함께 사와무라는 한동안 죽을 듯이 바빴다. 새벽에 퇴근해서 새벽에 출근하길 일주일, 겨우 숨 돌 릴 틈이 생겼다. 2주 만에 정시 퇴근을 했지만 사와무라의 머리 속은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할 뿐이었다. 마지막 정신력으로 주차를 하고 201호 앞에서 주섬 주섬 열쇠를 꺼내는 사와무라의 뒤로, 복도 불빛을 받은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에이준.”

… 오랜만이네.”

.”

 

문고리를 잡은 채로, 사와무라는 대답했다. 여자 또한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사와무라에게서 두 걸음 떨어진 거리에 멈춰 섰다. 입 안이 모래를 삼킨 것처럼 껄끄러웠다. 갈라지려는 목소리에 일부러 몇 번 헛기침을 한 사와무라가 입을 간신히 열었다.

 

잘 지냈어?”

대충.”

“……”

오늘은 할 말이 있어서 온 거야.”

 

여자가 어깨에 매고 있던 핸드백에서 종이 서너 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하지만 사와무라는 받아. 하는 여자의 목소리에도 뒤로 돌지 못했다. 한숨을 한 번 쉰 여자가 종이를 바닥에 던졌다.

 

양육권이랑 친권, 네 밑으로 옮겼어.”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때문에 생긴 애고, 너 때문에 생긴 장애물이야. 이젠 네가 키워.”

이혼할 때는 네가 데려가겠다고 했잖아!”

 

나 같은 인간한테는 못 맡긴다며. 그랬잖아! 사와무라가 현관문에 머리를 박은 채 외쳤다. 여자는 그런 사와무라에게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렸다.

 

나 결혼할 남자 생겼어. 근데 그 사람이 내가 이혼한 것까지는 괜찮아도, 남의 애 키울 자신은 없대.”

“……”

나도 네가 그랬다는 걸 알았다면 결혼 안 했어. 그러니까 이젠 네가 책임져.”

“…..”

가 볼게. 조만간 변호사가 연락할 거야.”

“….”

이제 다시는 보지 말자.”

 

여자가 가 버린 한참 후에야 사와무라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꺼져 있던 복도의 전등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사와무라에 반응해 반짝 불이 켜졌다. 문이 쾅,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 초인종 소리에 사와무라는 눈을 떴다. 컴컴한 거실, 쇼파에 불편한 자세로 파묻혀 있던 몸이 고통을 호소했다. 머릿속이 멍했다.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띵동, 띵동. 끊임없이 울리는 초인종 소리를 들으며, 사와무라는 이 시간에 올 법한 사람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그녀는 아마 평생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었다. 관리인은 이미 퇴근하고 없다.

사와무라가 멍하니 누워 생각하는 사이에 초인종 소리는 어느새 노크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똑똑똑보다는 쾅쾅쾅에 가까운 소음이 맨션 복도까지 울린다. 이 정도면 신경질적인 옆집 여자가 나와서 빽빽 소리 지를 때도 됐는데. 여기까지 생각하던 사와무라는 더 이상 나카무라가 옆집에 살지 않는다는 것과 함께 한 달 전 옆집에 새로 이사온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때마침 문 너머에서 미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와무라 씨!!’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에, 사와무라는 벌떡 일어났다. 최근 이 근방에 도둑이 출몰한다는 얘기가 문득 생각이 났다. 다급하게 현관문을 열자, 굳은 얼굴의 미유키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 오늘밤만 재워주시면 안될까요?”

?”

 

사와무라가 다짜고짜 본론부터 이야기한 미유키의 시선 끝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은 당황해서 되물은 직후였다. 미유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다 말리지 못하고 그라운드에서 돌아온 것인지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교복 셔츠 위에 동그랗게 떨어진다.

 

부모님께서 이혼하신대요. 어머니께서 오늘밤 여기서 주무시고 가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하룻밤만 재워주세요, 선배.”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망설이던 사와무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좋아. 대신 오늘밤 내 술 상대 좀 해줘.”

저 미성년자인데요?”

그냥, 상대만 해달라는 거야.”

 

곧 돌아서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사와무라를 미유키가 뒤따랐다.

 

 

 

거실 테이블에 더 놓을 자리가 없어서, 미유키는 냉장고에서 갓 꺼내온 맥주 캔을 일단 쇼파 빈자리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던 정종 병과 맥주병을 집어 들어 바닥으로 옮겼다. 그 사이 사와무라가 맥주 캔을 하나 잡아 땄다.

 

그래서. , 이혼하시는 건데?”

아버지가 숨겼던 게 있으셨나 봐요. 그걸 어머니가 알게 되면서 사이가 안 좋아지셨죠.”

 

사와무라는 대답 대신 맥주 캔을 입에 가져다 대고 마셨다. 단숨에 절반 이상을 비워 내고, 가벼워진 캔을 쇼파 팔걸이에 내려놨다. 미유키도 목이 타는지 자신의 몫으로 따라 두었던 주스 잔을 잡았다. 사와무라는 자꾸만 꼬이려는 혀를 가볍게 찼다.

 

이혼, 그거 나쁜 거야.”

“…..”

아이한테도 나쁘고, 부부한테도 나쁘고.”

“…..”

근데…. 숨기는 게 더 나쁘지.”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다 마신 사와무라가 빈 캔을 바닥에 내려 놓고 다른 캔을 들었다. 미유키는 그런 사와무라를 말 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 안 좋은 일 있으셨어요, 선배?”

안 좋다면 안 좋은 거고, 좋다면 좋은 거고….”

 

사와무라는 그대로 벌러덩 쇼파에 누웠다. 맥주 거품이 조금 흘러 손바닥을 적셨다.

 

선배는 결혼하실 분 있으세요?”

? 아니.”

 

젖은 손바닥도 찝찝하고 잔뜩 엉킨 감정도 찝찝했다. 사와무라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캔 안에서 톡톡 튀는 탄산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내 아내가, 결혼할 사람이 생겼지.”

“……”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미유키는 앉아 있던 거실 바닥에서 일어나 쇼파로 다가갔다. 그리고 누워 있는 사와무라를 내려다 보았다. 터질 듯이 쥐고 있는 맥주 캔을 잡아 테이블에 내려놓고, 미유키는 조용히 쇼파에 앉았다.

 

왜 이혼하셨는데요?”

내가 그녀를 속였어.”

왜요?”

….. 시험해보고 싶었어.”

 

사와무라가 손을 올려 그대로 얼굴을 가렸다. 미유키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 속이셨어요?”

내가 게이라는 거.”

“……”

처음 할 때, 딱 알았어. 난 어쩔 수 없다고. 여자를, 사랑할 수 없다고.”

 

말소리에 점차 흐느낌이 섞여 간다. 한껏 부풀어 오른 감정을 입 안에 잔뜩 물고 사와무라가 웅얼거렸다.

 

근데, 아이가생겼어.”

“…..”

그래서 결혼했는데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사와무라가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미유키는 그런 사와무라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사와무라의 팔을 부드럽게 잡았다. 사와무라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감긴 눈 아래로 흐르다 만 눈물이 방울 방울 맺혀 있었다. 잠든 사와무라를 들쳐 업은 미유키는 침실 문을 조용히 열고 침대 위에 그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선배, 푹 주무세요.”

 

저는 쇼파에서 잘게요. 들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할,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그는 이마에 짧게 입맞춤을 남겼다. 그리고 침묵 같은 발걸음으로 침실을 벗어나서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사와무라가 누웠던 바로 그 자리에 누운 미유키는 스르륵 입가가 올라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저지하고 눈을 감았다. 처음 만난 날 흘낏 쳐다보던 시선에 섞인 감정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 기회가 생겼다는 만족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날 밤, 202호의 문이 열리는 소리는 결국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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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2. 22 축하 기념 전에 썼던 쪽글을 이었습니다!!
더 이어질 수도...??? 모브캐 주의해주세요! 언급 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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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토요일 아침, 휴일을 맞아 늘어지게 한숨 자고 있던 미유키 카즈야는 아침부터 울려대는 차임벨 소리에 겨우 쇼파에서 눈을 떴다. TV를 그대로 틀어놓고 잤던 모양인지 틀어져 있던 TV에서는 아침 뉴스 후의 날씨 예보가 한창이었다
다시 잘까
겨우 손만 더듬더듬 움직여 리모콘을 찾아낸 그는 그대로 TV를 껐다. 토요일은 그동안 업무에 시달린 몸을 쉬게 할 절호의 찬스였다. 때문에 날씨 예보는 현재 그의 잠을 방해하는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울리는 초인종 또한 방해꾼일 뿐이었다. 신문 권유건 잡상인이건 없는 척하면 그냥 지나가겠지. 쇼파에 놓인 쿠션으로 귀를 막고 돌아 누우며 미유키는 생각했다.
곧 초인종 소리가 멎었다. 미유키는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어렴풋하게 꾸었던 꿈의 잔재가 슬슬 눈꺼풀을 덮어오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 거실 테이블에 놓아 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하며 드르르르륵, 하는 소음을 냈다

누가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질이야…”

누군 잠도 없냐. 상사의 호출이 아니길 만을 빌면서 주섬 주섬 쓴 안경 너머 핸드폰 액정은크리스 선배라는 글자를 둥둥 띄우고 있었다.
재빨리 쇼파에 걸쳐 두었던 져지 상의를 꿰어 입고 슬쩍 켜 본 인터폰 너머엔 난처한 얼굴의 크리스가 서 있었다. 젠장, 망했다. 미유키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고등학교 시절 첫 연습에 지각했던 날 아침 달렸던 스피드로 현관문을 열었다. 핸드폰을 코트 주머니에 넣은 크리스가 오랜만이다, 하고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세요, 선배.”
아침부터 미안하다. 부탁해야 할 게 생겨서…”

크리스의 오른쪽 옆엔 여행용 캐리어가, 왼쪽에는 커다란 가방이 있었다. 그리고 발치엔 길다란 체크무늬 가방이 있었다

갑자기 미국에 잠시 돌아가봐야 할 일이 생겼어.”
그런데요…?”

미국에 다녀오는 것과 자신이 무슨 상관인가. 미유키는 현관문을 잡고 서서 멍청하게 되물었다.

좀 맡아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맡아요? 제가?”
그냥 집에 두고 가자니 걱정이 되어서…”
귀중품인가요?”

미유키는 체크무늬 가방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크리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아하니 저 가방 안에 든 것을 잠깐 맡아주기만 하면 되는 모양이다. 미유키는 서재로 꾸미려다가 반쯤 창고로 쓰고 있는 빈 방을 떠올렸다. 거기에 두면 되겠지. 힐끗 힐끗 시간을 확인하는 크리스를 보니 비행기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았다. 미유키는 감히 선배가 집 앞까지 찾아왔는데 없는 척 했던 건방진 후배의 탈을 벗기 위해서라도 그냥 맡겠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선배들에게 이 이야기가 퍼졌다가는 다음 번 동창회를 빙자한 회식비는 모두 미유키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오게 될 것이 틀림 없었다. 자다 깨서 한쪽으로 눌린 머리를 한 채 미유키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맡아드릴게요.”
아니 고양이인데…”

맡겠다는 미유키의 대답과 미유키의 질문에 대한 크리스의 대답이 엇갈리듯 겹쳤다. 그리고 그 순간, 냐아아아옹, 하는 울음소리가 길게 아파트 복도를 울렸다.

 

 

 


생각해보면 세이도 야구부 선배들은 이상한 데서 사람이 좋았다. 후배는 음료수 셔틀로, 안마기로 부려 먹었지만 어느 날 그라운드 근처에 나타난 떠돌이 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끔찍하게 챙겼다. 벤치 밑에 엎드려 있던 녀석을 한 번씩 쓰다듬어 주면서 다음 번 목욕 당번은 서로 하겠다고 나서던 선배들을 회상하던 미유키는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체크무늬 가방, 아니 동물용 이동 가방에 시선을 주었다. 비행기 시간이 촉박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가방에 대고 잘 있어야 한다 하고 속삭이던 크리스의 얼굴을 떠올리니 왜 하필이면 크리스와 같은 동네에 이사를 왔던가 하는 쓸 데 없는 생각도 들었다. 인정이 각박한 대신 동물에게 정이 넘치던 선배들과는 달리, 미유키는 그 반대에 가까웠다. 물론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네가 어딜 봐서 인정이 넘치냐.’고 따지고 들 것이 자명했지만 어쨌든 그는 동물보다 사람이 중하다고 생각했으며 애완동물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가족처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였다. 당연히 평생 동물 따위는 집에 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미유키는 서재가 될 뻔한 창고방 문 앞에 놓인 가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당연히 크리스가 가져가리라고 생각했던지라 그가 체크무늬 가방과 함께 짐가방을 현관 안으로 내려놓았을 때는 의아했었다. 미유키는 그게 뭐냐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한 것을 떠올렸다.

 

에이준 꺼야.’

 

에이준이라.”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혀 끝에서 한 번 굴려보고, 미유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니 무슨 고양이 한 마리에게 필요한 물건이 저렇게 많단 말인가. 친히 가방에서 고양이용 화장실과 물그릇, 사료그릇을 꺼내던 크리스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폭풍처럼 찾아온 크리스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별을 하고 떠난 것이 두 시간 전. 미유키는 미동도 않는 가방을 힐끗 보았다. 지퍼를 열어 두었지만 가방 안에 뭐가 있기나 한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설마 이거 몰래 카메라인가?”

 

그럴 수도 있었다. 선배들은 성격도 나쁜 만큼 미유키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기도 했다. , 진짜 고양이가 있더라도 두 시간 동안 이렇게나 조용했다면 순한 녀석인 게 분명했다. 만약 손 안에 녹음기와 카메라가 잡힌다면 속아 넘어가 줄 셈으로, 미유키는 열린 입구 안으로 왼 손을 뻗었다.

 

캬아아아옹!!!”

아야!!!”

 

그리고 후회했다. 손 끝에 뜨끈한 젤리 같은 것이 만져진다 싶더니 곧이어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소리만큼 날카로운 발톱이 팔 위를 스치면서 따끔한 것 이상의 아픔이 달렸다. 미유키는 이를 악물었다. 재빨리 팔을 꺼내어 확인하니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두 줄을 그리고 있었다.

 

이게…!!”

 

그대로 이동장을 들어 탈탈 털었더니 캬앙!!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진갈색을 띤 팔뚝만한 털뭉치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듯 테이블 위에서 굳어 있다가 미유키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거실 구석으로 후닥닥 달아났다.

 

!!!”

냐아아옹!!! 냐아아아옹!!!!”

 

야구하던 시절 도루하던 순발력으로 미유키가 쇼파에서 일어나 고양이를 쫓자, 고양이는 낯선 환경에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미유키의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 구석 가장 안쪽으로 기어 들어갔다.

 

!! 당장 나와!!!”

냐아아옹!!!”

나오라고!!!”

 

팔이 닿지 않아 버둥거리는 미유키를 비웃기라도 하듯 고양이가 소리 높여 울었다. , 진짜! 미유키는 휴일 아침부터 일어나 남의 고양이를 맡게 된 짜증이 순간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거실로 돌아와 쇼파에 눕듯이 앉는데,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미유키는 액정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는 대신 노려보았다. 한참을 울리던 진동이 멈추고,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적막한 거실을 울렸다.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집어 든 미유키는 내용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쇼파 구석에 던져버렸다.

 

[에이준은 어때? 순한 아이니까 잘 적응하리라고 생각한다. 사료는 아까 내가 덜어둔 양만큼 꺼내두면 알아서 먹을 거야. 아직 화장실은 안 갔나? 화장실 모래는 이틀에 한 번 갈아주면 될 거다. 간식은 너무 자주 주지 말고. , 그리고 하루에 한 번 사진을 보내줄 수 있겠어? 너한테 맡겼으니 걱정은 없지만…]

 

치료비 걱정부터 하셔야 할 겁니다, 선배.”

 

어금니를 악문 미유키는 그대로 욕실로 향했다. 어디든 나갈 생각이었다. 저 짐승과 한 공간에 있는 건 죽어도 싫었다. 긁힌 팔이 따끔따끔하게 아픔을 호소했다.


 

 

 

미유키는 눈을 떴다. 낯선 천장과 어둑한 조명이 흐릿한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대충 몸을 일으켜 앉고 몇 번 눈을 끔뻑이자 옆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남자가 보였다. , 그랬지. 천천히 깨어나기 시작한 기억을 되새기며 미유키는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안경을 찾아 썼다.

 

혼자 본 영화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 하필이면 양 옆으로 커플이 앉는 바람에, 또 그들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속닥거리며 한 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죽을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문화 생활이라도 즐기려던 미유키의 바람은 실낱처럼 사라졌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평소 이쯤이면 술이라도 한 잔 하자고 오던 연락 하나 없다. 영화관 근처 식당에서 대충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미유키는 재킷을 여몄다. 이렇게 된 이상 원나잇 파트너라도 찾아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바는 토요일 밤을 맞아 적당히 북적였다. 자리에 앉자 익숙한 바텐더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두 잔 정도 걸치며 최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오늘 맡게 된 고양이가 떠올라 말을 꺼내니 바텐더는 고생이라며 잔을 채워 주었다. 그리고 그 때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고양이 싫어해요? 나도 싫어하는데.’

 

그 말 한 마디에 그냥 얼굴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남자를 이끌고 근처 호텔로 향했다. 반쯤 스트레스 풀이로 한 관계였는데, 남자는 꽤 만족한 듯한 모습으로 잠이 들었다. 미유키도 누적된 피로와 쾌락의 여파로 세 시간 가량 푹 잤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데 움직임에 잠이 깬 건지 옆에 누워 있던 남자가 잠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근데 그 고양이 밥은 챙겨줬어요? 잠깐 맡은 거라면서.”

.”

방문 열어놓고 나왔으면 집안 엉망일 걸. 전에 내 애인이 키우던 걔도 배고프면 엄청 난리법석이었어.”

 

미유키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객실 바닥에 널브러져있던 셔츠를 집어 들어 팔을 꿰었다. 말 없이 단추를 채우고 코트를 입는 미유키 뒤로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서둘러 시동을 거는데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핸드폰에는 오늘 하루, 아니 24시간 동안만 해도 세 번째로 보는 착신 번호가 떠 있었다.

 

[에이준 밥 먹었어? 내가 바빠서 어제부터 못 챙겨 줬는데.]

 

젠장, 망할 고양이…!”

 

욕설을 짓씹으며 액셀을 밟아가며 도착한 집 안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미유키는 서둘러 현관문을 닫았다. 움직임에 반응해 현관 센서등이 활짝 켜졌다. 조용한 집 안, 센서등 불빛으로 대충 살펴본 거실은 나가기 전과 다를 바가 없어 미유키는 안심하고 구두를 벗었다. 코트를 벗어 쇼파에 던지고,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눈으로 침실을 찾은 그는 침대로 향했다. 순간적으로 긴장했던 몸이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안경을 벗어 침대 맡 선반에 두고, 셔츠를 벗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누운 그는 머리가 베개에 닿은 직후 단 잠에 빠져 들었다.

 

 


 

미유키는 눈을 떴다. 낯익은 천장과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이 눈에 들어 왔다. 다시 눈을 감은 그는 안경을 놓아 두었을 침대 옆쪽으로 손을 더듬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시트 대신 물컹한 감촉이 손에 잡혔다. 아직 호텔이던가? 부옇게 흐려진 기억을 더듬으며 완전히 눈을 뜬 그는 오른 손 끝이 닿아 있는 곳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내가 지금 아직 잠에서 덜 깼나. 왼 손으로 눈을 비빈 그는 침대 헤드 위쪽 선반에 놓인 안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또렷해진 시야로 다시 한 번 옆을 확인했다. 어이 없는 한숨과 함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이게 뭐야…..”

 

알몸인 남자가 미유키의 옆에서 새근 새근 잠들어 있었다. 평범한 애프터의 풍경과 확연히 다른 점은, 남자가 덮고 있는 이불 사이로 늘어진 갈색의 꼬리와 남자의 머리 위에 쫑긋하니 서 있는 귀 두 개였다. 미유키는 남자의 팔에 닿았던 손을 들어 남자의 머리 쪽으로 향했다.

 

머리띠겠지….”

 

조심스레 남자의 머리칼을 헤집어 보았지만 귀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남자의 머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아니 머리에 달려 있었다.’ 솜털이 보송하게 나 있는 귀를 잡자, 남자가 번쩍 눈을 떴다.

 

뭐하는 거야!!!”

 

그리고 날카로운 아픔이 오른팔 위를 달렸다. 셔츠 소매 위로 길게 그어진 선 밑으로 붉은 상처가 언뜻 보였다. 미유키는 눈을 크게 떴다. 셔츠 아래 왼팔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잔뜩 성이 난 듯한 남자가 귀와 꼬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 호박색 눈을 치떴다. 미유키는 재빨리 기억을 뒤졌다. 저 눈과 비슷한 시선을 받아 본 적이 있다.  

 

고양이….”

사와무라 에이준이거든!!”

 

미유키의 중얼거림을 들은 남자가 소리쳤다. 남자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 삐삐. 배터리가 거의 없다는 신호를 보낸 핸드폰이 곧 부르르 울리더니 꺼졌다.

 

크리스 선배…..”

 

! 하고 콧방귀를 낀 남자가 미유키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그리고 미유키에게 물었다.

 

크리스는 어디 있어?”

크리스 선배를 네가 왜 찾아?”

그야 난 크리스네 고양이니까!”

 

미유키는 완성된 퍼즐을 내려다보았다. 이불 위에서 잔뜩 경계 태세를 갖춘 남자, 아니 크리스가 24시간 전에 맡긴 고양이가 적대감을 한껏 담은 채 불안한 눈빛으로 방 안을 둘러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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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첫 연애

연성/글 2014. 2. 18. 14:15

40분 만에 급히 쓴 미사와 데이 기념 소설!! 으아 퇴고 못했어요 으아아ㅏ 으아아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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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비명과 함께 사와무라가 힘껏 뒷걸음쳤다. 귓가를 울리는 비명 소리에, 미유키는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뭐 하는 검까!!!”

이게 뭐 하는 거겠냐?”

 

키스하려고 했지.

미유키의 대답에 사와무라의 얼굴이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단숨에 미유키에게서 두 걸음 더 멀어졌다.

 

떨어져!!”

, 너무한 거 아니냐?”

뭐가!!”

애인이잖아. 애인끼리 키스하는 게 뭐 어떻다고.”

 

미유키는 갈 곳 없이 허공을 맴돌던 손을 간신히 바지 주머니에 넣어 갈무리했다. 여전히 충격 받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와무라가 애인, 하고 중얼거려 본다. 미유키는 그런 사와무라를 보고 한숨을 내쉬고는 한 걸음 다가갔다. 화들짝 놀란 사와무라가 한 걸음 더 멀어진다.

 

너 내가 좋다며. 그래서 고백했잖아.”

, 그렇긴 한데…!”

나보고 사귀어 달라며.”

“…..”

우리 사귀는 거 아니었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사와무라 앞으로 미유키가 한 걸음 다시 다가가자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을 잔뜩 굳힌 채, 아래만 내다보고 있는 시선이 싫었다.

 

내가 못할 짓 한 것도 아니고. 사귀는 사이에.”

“……”

설마 키스할 줄 몰랐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지?”

, 진짜 몰랐다고!!! 키스라니!!!”

 

말 없이 미유키가 따지는 것만 듣고 있던 사와무라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당황한 얼굴빛이 거짓말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 미유키는 눈 앞의 녀석이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 걸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스킨쉽을 거부할 리가 없는데. 남자라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닿고 싶고 만지고 싶던 게 아니었나. 특히 한창 그럴 생각으로 가득한 고등학생인데. 자연스럽게 끌어 안아 키스하려다가 불발로 끝난 3분 전 상황을 생각하며, 미유키는 씁쓸함에 몸부림쳤다. 갑작스레 조용해진 미유키의 눈치를 살짝 살핀 사와무라가 다시 시선을 발 끝으로 향한 채 말을 이었다. 슬리퍼를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래 바닥을 슬슬 긁으며 의미 없는 낙서를 하면서.

 

그게, 나는진짜 몰랐고선배를, 그런 눈으로 본 게 아니라…”

그런 눈으로 본 게 아니다?”

아니, 그러니까! 키스하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라! 아직….”

 

미유키가 재촉하자 횡설수설하며 우물거리는 입술과는 달리 사와무라의 발이 바삐 움직인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할까….”

키스하는데 마음의 준비씩이나 필요해?”

여튼 그렇다고!!!”

 

미유키의 대답에 어이 없다는 기색이 섞인 걸 알아차린 사와무라가 버럭 소리질렀다. , 그래? 자기는 여자랑 많이 사귀어봤다 이건가? 괜히 가슴 부근이 질투와 초조함으로 들썩인다. 사와무라는 울컥대는 마음을 와르르 쏟아냈다.

 

당신은 경험이 많을 지도 몰라도!! 나는 이게 첫 연애란 말야!!”

저기, 사와무….”

안녕히 주무십쇼!!”

 

사와무라는 그대로 미유키의 말도 듣지 않은 채 5호실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침대로 잽싸게 기어 들어갔다. 쿠라모치가 다른 방에 놀러 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와무라는 다 뱉어내지 못한 감정이 화악 얼굴로 쏠리는 감각에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문이 닫히기 직전, 놀란 미유키의 얼굴이 다시 떠올라 사와무라는 촉촉해지기 시작한 눈가를 베개에 마구 비볐다. 조그만 것에도 이렇게 어린애처럼 대응하게 되는 자신이 싫고, 늘 우위에 있는 것 같이 행동하는 미유키도 싫다. 그래도 제일 싫은 건, 내일 당장 헤어지자는 말을 들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한 구석이었다.

 

 

 

 

결국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퉁퉁 부은 눈으로 식당으로 향하는 사와무라의 뒤로 장난스런 선배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와카나쨩이랑 헤어졌어?”

어이구, 사와무라쨩 밤새 울었쪄요?”

아님다!!!”

아니긴 뭐가 아냐~ 얼굴에 다 써 있잖아!”

제가 어제 방에 들어가니까요, 훌쩍대고 있던데요~”

 

막 아침 식사를 받아 자리에 앉은 사와무라의 앞자리에서 쿠라모치가 한 술 더 떴다. 와하하하, 하는 큰 웃음 소리가 식당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사와무라는 아니라니까요! 하고 외치곤 그대로 아침 식사에 시선을 고정했다. 쿠라모치 옆에 앉은 미유키와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웠다. 당장이라도 미유키의 입이 이별을 선언할 것 같아 무서웠다. 먹는 둥 마는 둥 후닥닥 식사를 끝내고 식당을 나서는 사와무라의 뒤를 지켜보던 미유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복으로 갈아 입고 학교로 향하던 사와무라는 결국 걸음을 늦췄다.

 

선배.”

?”

왜 따라옴까!”

나 학교 가는 건데?”

 

사와무라를 지나친 미유키가 태평한 어조로 대답했다. 재킷을 손에 들고 걷는 모양새가 평소와 완전히 같아서, 사와무라는 지난 밤 내내 고민했던 자신이 우스워지는 것만 같았다. 완전히 멈춰선 사와무라의 앞에 선 미유키가 가방으로 쿡쿡 사와무라를 건드렸다.

 

학교 안 가? 지각한다?”

당신은 늘 그렇게 여유로워?! 맨날 초조해하는 건 나뿐이고…!!”

그렇게 생각해?”

 

목소리와 함께 미유키의 얼굴이, 서서히 겹쳐졌다. 어젯밤의 기억에 사와무라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바라본 미유키가 그대로 사와무라의 이마에 꿀밤을 날렸다.

 

아야!!”

아직도 긴장하고 있으면서.”

그건 갑자기….!!”

 

얼얼한 이마를 문지르며 사와무라가 소리를 지르려다가 그대로 말을 멈췄다. 마주친 눈빛 끝자락의 미유키가 방금 전과는 달리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왜 울었어?”

“……. 선배가 싫어서.”

진짜?”

“…….. 헤어지자는 말 들을 까봐….”

 

조그맣게 흩어지는 말 한 조각 한 조각을 끝까지 들어낸 미유키가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첫 연애라 이렇게 어려운 건지, 아니면 바보 상대라 이렇게 어려운 건지.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미유키는 이번에는 사와무라의 콧잔등에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아얏!!”

혼자만 불안하고 혼자만 고민하는 줄 알아? 진짜 바보라니까.”

바보 아니거든!!”

, 나도 처음 연애해보는 거야.”

 

이어진 미유키의 대답에 사와무라가 눈을 크게 떴다. 놀란 눈동자 너머로 미유키 자신이 온전하게 비치는 것이 어젯밤 시선을 피하던 것과는 달리 매우 흡족했다. 가방을 등굣길에 던져 두고, 미유키는 한 손으로 가볍게 사와무라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흠칫 놀라긴 하지만 도망치지 않는 것이 뿌듯하다. 아직도 크게 뜬 사와무라의 눈을 바라보며 미유키는 속삭였다.

 

미리 얘기했으니까 이번엔 피하지 마라.”

…?”
눈 감아, 키스할 거니까.”

 

그대로 다가오는 미유키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사와무라는 첫 키스를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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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데이트

연성/글 2014. 2. 18. 11:03

미사와 합작 http://lemonpot.wix.com/218project 에 제출한 글입니다!

미사와 행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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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 비워 놔. 보충이나 추가 숙제 걸리지 말고♡’


그 말 한마디에 사와무라의 2주는 바쁘게 흘러갔다. 훈련으로 쌓인 피로 때문에 졸기 일쑤였던 수업 시간에도 가까스로 교과서를 부여잡았으며 차마 알아볼 수 없는 글씨긴 했지만 필기까지 하는 정성을 들였다. 카네마루가 진지하게 사와무라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어쨌든 그렇게 2주 동안 선생님들의 의심 어린 눈길과 감동한 시선, 그리고 진심 어린 격려를 받으며 쪽지 시험에서까지 낙제를 면한 사와무라는 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기숙사 정문에 기대어 서서 미유키를 기다렸다. 좀 신경 써서 입을 걸 그랬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지만 약속 시간이 다 된 이젠 별수가 없었다. 괜히 티셔츠에 주름이 지는 것 같아 사와무라는 기대어 있던 자세를 곧게 폈다. 그리고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미유키가 비니를 눌러 쓴 채 나타났다. 평소와 별 다를 것 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자신의 얼굴이 헤실헤실 풀리는 건 아마 오늘이 데이트이기 때문이라고 사와무라는 생각했다.


“자, 그럼 갈까?”

‘네, 넵!!“


잔뜩 긴장한 티가 역력한 사와무라와는 달리 미유키는 여유롭게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쫓는 사와무라의 발걸음이 가볍게 통통 튀어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서 조금 걷자 곧 학교 같은 건물이 보였다. 미유키는 교문을 통과하고 교정을 가로지르는 대신, 학교 건물 왼편 넓은 운동장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곧 뒤에서 따라오던 발걸음이 멈춘 것을 알아챘다.


“사와무라!! 뭐해!!”

“여기... 학교 아님까?”

“당연히 학교지. 〇〇고등학교.”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학교 현판과 미유키를 한 번씩 쳐다 본 사와무라가 물었다.


“왜 온 건데요?”


사와무라의 질문에 오히려 미유키의 얼굴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왜긴, 오늘 여기서 연습 시합 있잖아.”

“....?”

“나베가 오늘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해서 내가 온 거고.”

“....??”

“여기 투수가 독특한 공을 던져서 너한테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고 감독님이 그러셔서.”


내가 설명 안 했던가? 하는 미유키의 말에 사와무라는 긴장과 설렘으로 뒤섞였던 마음이 여름날 아이스크림 녹듯 스르륵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하긴 미유키는 데이트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2주 전부터 잔뜩 기대했던 게 단순히 착각이었다니. 잘못 생각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혼자 들떴다는 게 슬프기도 해서 사와무라는 ‘안 했슴다!’ 하고 대답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미유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보 수집으로 온 거라면 시합만 보고 돌아가면 된다. 독특한 투수라고 하니 관전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재미는 있겠지. 사와무라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기숙사에 돌아가면, 침대에 파묻혀서 울자.’


입술을 꾹 깨무는 사와무라가 묵묵히 뒤를 따라오는 것을 보던 미유키는 걸음을 조금 늦췄다. 사와무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걷다가 같은 보폭으로 걷게 된 순간, 점퍼 속에 있던 미유키의 오른손이 걸음걸이에 맞춰 달랑이던 사와무라의 왼손을 꼭 잡았다.


“서, 선배?!”

“이러니까 꼭 데이트 같다, 그치?”


당황한 듯 목소리가 뒤집힌 사와무라의 손을 한 번 힘을 주어 잡고 씩 웃자 그에 답하듯 사와무라가 손을 마주 잡아 왔다. 슬쩍 곁눈질로 본 눈가에 약간 물기가 어려 있어 미유키는 소리 높여 웃고 싶은 것을 다시 한 번 사와무라의 손을 잡는 것으로 겨우 참아 냈다.


‘바보, 누가 너같이 시끄러운 후배를 시합 정찰에 데려 오냐?’


웃었다가는 사와무라가 엉엉 울어버릴 것 같아 참았지만 정말 끝까지 눈치라고는 없는 녀석이다. 나베가 사정이 생겨 오늘 정찰을 할 수 없게 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자료 수집에 지원한 건 미유키였다. 안 가도 뻔히 다 아는 선수들인데 왜 가냐는 감독의 물음에 사와무라를 언급하며 최근 이것저것 고민하는 것 같으니 다른 투수의 시합을 보여주고 싶다고 대답한 것도 미유키였다.


‘애초에 내가 간다는 점에서 자료 수집보다는 압력 쪽이 맞는 얘기지만.’


돌아가는 길엔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려서 저녁을 먹고 가면 될 것이다. 그리고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 이 모든 게 계획이었다고 말하면 분명히 놀라고 화내겠지. 그 때를 틈타 키스할 것까지 짜놓으며 미유키는 경쾌하게 시합이 진행되고 있는 구장으로 향했다. 매달리듯 잡은 사와무라의 손을 놓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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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바늘은 벌써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미유키는 부엌 테이블 앞에 앉아 조용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가볍게 거실 쇼파로 던졌다. 아무 소리도 없이 쇼파에 파묻힌 휴대폰이 왠지 자기 꼴을 보는 것만 같아 미유키는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테이블 한쪽에 세워둔 샴페인과 오랜만에 꺼낸 와인 잔 두 개로 시선을 옮겼다가 그 가운데에 놓인 포장된 상자에 시선이 닿자 괜히 마음 한 구석이 꽁하니 굳어져 답답한 기분이었다.

 

잡은 물고기엔 이제 미끼를 안 준다 이거냐…”

 

허탈하게 혼잣말을 해보지만 오늘 저녁 생선 아닌데요? 하고 돌아오는 멍청한 대답은 없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미유키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3년 전 이 맘 때, 시선도 온전히 맞추지 못하고 바닥에 고개를 쳐 박고 있으면서도 초콜릿 상자를 내민 두 손만은 떨리지 않던 사와무라를, 미유키는 기억한다. 사와무라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후, 야구부원들끼리 예약한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가던 중 할 말이 있다고 교정 뒤편으로 미유키를 불러냈던 것도 그는 기억한다. 원래는 미유키가 졸업하던 작년에 고백하려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용기를 못 냈다고 했다. 올해가 지나면 영영 못 보게 될까 봐 덜컥 겁이 났다고도 했다. 9회 말 무사 만루에서 던지는 것마냥 부여 잡은 초콜릿 상자의 포장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서 미유키는 그 상자와 그 마음을 받아 들었다. 잔뜩 구겨진 포장지처럼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한 사와무라가 얼굴을 들었을 땐 웃어버리고 말았지만. 그 직후 사와무라는 왜 웃슴까!! 하고 외치면서 엉엉 울었더랬다.

 

미유키의 기억은 그 다음 해 발렌타인 데이로 이어졌다.

2년 전 이 맘 때, 손수 만든 초콜릿 케이크를 내밀던 사와무라를, 미유키는 기억한다. 선배는 단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럼주 넣어서 안 달게 만들었어요. 쑥스러운 듯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 조금 미안해졌던 것도 미유키는 기억한다. 기념일 같은 건 챙기지도, 따로 기억하지도 않는 미유키와는 달리 사와무라는 순 남자다운 성격과는 매우 다르게도 100일이니 200일이니 이것 저것 챙기곤 했었다.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는 미유키와 사와무라가 사귀기 시작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으니, 사와무라가 준비한 것은 대단했다. 꽤 괜찮게 구워진 스테이크를 자르며, 진득하니 달아 보였던 초콜릿 케이크를 한 입 먹으며, 미유키는 사와무라에게 마음 속으로 사과했다.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게 미안했지만 사와무라는 그런 미유키에게 괜찮다며 씨익 웃을 뿐이었다.

 

미유키의 기억은 그 다음 해 발렌타인 데이로 이어졌다.

작년 이 맘 때, 뮤지컬 A석 티켓 두 장을 내밀던 사와무라를, 미유키는 기억한다. 시간이 없어서 올해는 이걸로 퉁침다!! 하고 웃으면서 공연장으로 향했던 사와무라가 뮤지컬이 끝난 직후에는 눈이 새빨개졌던 것도 미유키는 기억한다. 그 날 저녁은 미유키가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미유키가 아는 후배가 못 가게 됐다며 넘겨준 것이었지만 사와무라는 꽤 기뻐 보였다. 레스토랑에서 발렌타인 데이 기념으로 나온 초콜릿을 깨물며, 같이 곁들어 나온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며, 미유키는 이 정도면 합격점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와무라는 간이 전체적으로 싱겁긴 했지만 맛있었다고 평하며 그 날 봤던 뮤지컬 얘기를 식사 내내 조잘 조잘 늘어놓았다.

 

그리고 미유키의 기억은 현재로 돌아왔다.

대학 야구부 선배들과 술자리가 있을 것 같다고 사와무라가 말을 꺼낸 게 이틀 전 아침이었다. 최대한 빨리 빠져 나오겠다고 약속하는 얼굴에 별로 신경 안 쓴다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미유키는 침착하게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분명히 먼저 고백한 것도 사와무라고, 더 정성을 쏟은 것도 사와무라일 텐데 언제부터 늘 여유 있던 자신이 전전긍긍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째깍 째깍 흘러가는 시계 소리를 배경 삼아 그대로 지난 3년 간의 연애를 반추하던 미유키는 부르르 울리는 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쇼파 쿠션 사이에 파묻힌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쇼파로 뛰어가듯 다가선 미유키가 휴대폰을 집어 들고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은 채 전화를 받았다.

 

[선배, 저 지금 갈게요~~]

어딘데?”

[? 집 앞!]

집 앞이라고?”

[, 이제 다 왔슴다~~]

 

한적한 주택가라고 생각할 수 없는 소음이 사와무라의 말 위로 뒤덮였다. 미유키는 쇼파에 걸쳐 두었던 코트를 한 손으로 주섬 주섬 껴 입었다. 휴대폰을 다른 손으로 옮기고 코트에 팔을 꿰는데, 사와무라가 혼자 신나서 말을 이어간다.

 

[선배! 초콜릿 뭐 사갈까요?]

거기 그대로 있어!”

[, 발렌타인 데이잖슴까! 초콜릿~~]

사와무라!”

 

한 쪽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차 열쇠와 지갑을 확인하고, 미유키는 운동화 뒤축을 밟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전화 건너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네엡! 하고 경쾌하게 대답하는 것과 함께 미유키는 시동을 걸었다. 휴대폰을 핸즈 프리로 전환하고 확인한 시간은 11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미유키는 급히 액셀을 밟았다. 역 앞 벤치에서 어느 초콜릿을 사 갈 지 혼자 의논하고 있을 바보 같은 연인을 오늘 중으로 데려오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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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사와] 장갑

연성/글 2014. 2. 4. 07:44


장갑 잃어버린 기념 ㅠㅠㅠ 포근한 후루사와

(현지시간 2014. 0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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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에 장바구니가 들려 있어서 사와무라는 왼손에 꼈던 장갑 끄트머리를 입술로 물고 고개를 들어 장갑을 벗었다그리고 점퍼 주머니 안에서 그새 차가워진 열쇠를 꺼내 들었다움직임에 반응해 반짝 불이 들어오는 현관등 밑에서 한쪽 발로 다른 신발 뒤축을 꾸욱 밟아 벗고그대로 다리를 흔들어 운동화를 아무렇게나 현관에 내던지듯 벗었다겨울 내음이 한껏 묻어나는 집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현관등의 불빛에 의존해서 복도를 걸으며 사와무라는 여전히 장갑을 문 채 입술을 움직였다그냥 습관적인 일이었다.

 

다녀왔슴다.”

“…… 늦었어.”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에서 막 깬 듯 낮게 잠긴 목소리가 어두운 거실에서 흘러나와 사와무라는 무심코 입을 헤 벌렸다투둑장갑이 방바닥에 떨어졌다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방바닥을 가볍게 딛는 발걸음이 고요한 집 안을 울렸다후아아암늘어지게 하품을 한 후루야가 까치집이 된 머리를 벅벅 긁으며 현관 복도로 다가왔다더 이상 아무런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한 현관등이 막 꺼진 순간이었다따뜻한 기운을 품은 몸이 매달리듯 사와무라에게 안겨왔다응석을 부리듯 꽉 끌어안은 후루야는 그대로 찬 공기가 가닥 가닥 감겨 든 사와무라의 머리 위로 고개를 파묻었다.

 

왜 네가 여기 있어?!?”

우리 집이잖아.”

그게 아니라!!”

 

고개를 들려고 하던 사와무라는 꾸우욱 누르는 힘에 눌려 어쩔 수 없이 후루야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그제야 만족한 듯 후루야가 머리카락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그 사이를 틈 타 사와무라가 파드득 얼굴을 올렸다.

 

너 왜 여기 있냐니까!!!”

훈련이 일찍 끝나서.”

그래서?”

얼굴 보려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 뒤로 둘러진 팔이 더욱 강하게 온 몸을 감싼다잠자코 있던 사와무라는 일단 계란이 깨지지 않도록 장바구니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았다그리고 후루야의 등으로 팔을 둘러 마주 안았다등을 토닥이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손길에 후루야가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쉰다.

 

보자마자 끌어안는 건 뭐하는 거야.”

누가 집에 돌아오면 이렇게 해주라고 하던데…”

누가.”

팀 선배가…. 이게 아닌 거야?”

 

후루야와 사와무라가 표면적으로는 라이벌 팀의 투수이자 서로에게 투지를 불태우는 사이지만 실제로는 동거하는 사이라는 걸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후루야의 팀 선수들을 머리 속으로 생각해보다가사와무라는 곧 포기했다다 기억도 나지 않을뿐더러 누가 알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사와무라는 얼핏 입이 무거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입이 가벼운 후루야를 속으로 탓했다.

 

됐다됐어…..”

.”

근데 후루야.”

 

억지로 몸을 떼어놓자 후루야의 불만스러운 시선이 사와무라에게로 향한다벌써부터 벌개지려는 볼을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하며 사와무라는 근질거리는 목 때문에 한 번 큼큼헛기침을 했다.

 

얼굴을 보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약간 거칠어진 입술이 그대로 볼에 닿았다가 떨어졌다빤히 사와무라를 보던 후루야가 천천히 손을 올려 사와무라의 입술이 닿았던 볼을 쓰다듬는다왠지 그걸 보고 있자니 더욱 부끄러워져서 사와무라는 시선을 후루야의 발치로 돌렸다.

 

마운드 위에서든어디서든 너한테는 질 생각 없으니까!!”

“……”

여튼 알아 두라고!!!”

 

사와무라는 완전히 녹은 손으로 재빨리 바닥에 내려두었던 장바구니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후루야는 잠시 그대로 서서 그런 사와무라를 눈으로 쫓다가 안 도와줄 거면 넌 저녁 먹지 마!!’ 하는 일갈에 슬쩍 몸을 숙여 떨어진 장갑을 주웠다장갑 테두리에 수놓아진 K.H 글씨가 불이 들어온 현관등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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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갈증

연성/글 2014. 2. 4. 07:43

출국 준비로 바쁘고 여기 와서는 일정이 바빠서.... 도 있지만 요즘 소비하고 싶어서 ㅠㅁㅠ 안 썼는데 리카르한테 영업한 게 넘 미안해섴ㅋㅋㅋㅋㅋㅋ 써 봤습니다 미안해 리카르님~~~ 

(현지시간 2014.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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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타자가 망설이는 게 보였슴다그래서 따악 결정구를 넣어줬죠!!”

 

그 때 그 타자 얼굴을 선배가 봤었어야 하는 건데!!

사와무라의 앞에 놓인 맥주잔은 여전히 툭 치면 쏟아질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거품이 조금 사그라들어 찰랑거리지 않을 뿐이었다빈 잔을 테이블 구석으로 밀어낸 미유키는 대강 대답해주며 앞에 앉은 사와무라의 맥주잔을 슬쩍 가져가 마셨다사와무라는 미유키가 자신의 잔을 가져간 줄도 모르는 듯 여전히 신나게 자신이 어떻게 다음 타자를 아웃시켰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취했나 싶을 정도로 쉴 새 없이 떠드는 건 사와무라인데 오히려 듣는 미유키 쪽이 목이 말랐다아니솔직히 말해서는 부글 부글 끓는 감정으로 목이 탔다일부러 맥주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아도 술 대신 이야기에 취한 사와무라는 이제 4회 말에 이루어낸 득점 – 사와무라의 번트가 큰 역할을 했다 – 로 주제를 옮겼다미유키는 다시 맥주잔을 잡았다.

 

대학 졸업 후 프로 선수 대신 취직을 선택한 지 일 년본격적으로 야구만 하던 시절을 버린 지도 이제 곧 이 년 즈음에 접어들은 미유키였다프로의 세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대학 시절에 깨닫고타자 대신 소비자를 쥐락 펴락하는 마케팅으로 시선을 돌린 건 미유키 자신이 생각해도 꽤 괜찮은 것이었고 적성에도 맞았다.그 대신프로 진출을 포기한다는 것은 사와무라와의 배터리를 공식전에서 이룰 기회를 영영 잃는다는 말과 같았다운명의 장난인지 미유키와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 사와무라는 매년 여름 꼭 한 번씩 미유키와 경기장에서 만나게 되었다배터리가 아니라 타자와 투수혹은 포수와 타자의 관계로처음 붙었을 때는 미유키의 학교가 이겼고그 다음 해에는 사와무라의 학교가 이겼다미유키는 그 해 이후로는 선수로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둘의 승패는 동점이었다미유키는 사와무라가 이겼던 그 날 밤확실히 자신이 이겼던 침대 위를 잠시 생각했다가 사와무라가 듣고 있냐며 떽떽거리는 바람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지금 선배 안 듣고 있죠!!”

응응듣고 있어~”

전혀 듣고 있는 얼굴이 아니거든!!!!”

 

아직도 욱하면 말이 짧아지는 버릇은 여전하군미유키는 물방울이 맺힌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며 화제를 자연스럽게 돌렸다.

 

그래서 그 번트가 통산 몇 번째 번트냐?”

…. 잠시만요… 한 번 세어 보게.”

 

왈칵 화를 낸 걸 그새 잊어버리고 기억을 곱씹어가며 손가락을 접는 사와무라 몰래 씨익 웃은 미유키는 우우웅울리는 진동 소리에 슬쩍 테이블 밑으로 휴대폰을 꺼냈다다섯…. 여섯…. 진지하게 번트를 헤아리는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잦아들기 전 메일을 보낸 미유키는 언제 그랬냐는 듯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시금 타들어가는 목을 맥주로 축였다… 열하나…. 손가락 대신 기본 안주로 나온 과자를 티슈 위에 올려 놓고 세던 사와무라의 휴대폰이 울린 건 미유키가 사와무라의 맥주를 절반도 넘게 비웠을 때였다.

 

실례하겠슴다.”

 

휴대폰을 들고 재빨리 일어선 사와무라가 잰 걸음으로 가게 밖을 향한다미유키는 외투도 챙기지 않고 나간 사와무라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와무라가 티슈 위에 올려둔 과자를 집어 들어 와작와작 씹었다싸하게 퍼지는 와사비 향이 코 끝을 찡하게 울렸다열 개 남짓 있던 과자가 모두 사라졌을 때 쿵 쿵 울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미유키!!!!”

 

사와무라의 고함 소리는 시끄러운 술집 안의 소음에 파묻혔다하지만 명백히 화난 얼굴은 미유키가 씨익 웃으며 누구야하고 물어도 사그러들지 않았다.

 

크리스 선배 일본에 온 거 알고 있었어?!!”

일단 내가 동창회장을 맡고 있으니까~”

그럼 이제 막 떠나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 전에 한 번 만나자고 하셨으니까~”

그럼 나한테는 왜 말 안 했어!!!”

 

이상한 존대도 선배라는 호칭도 집어 치운 채 거칠게 미유키의 앞에 서서 씩씩대는 사와무라를 흘끗 바라본 미유키는 과자 때문에 꺼끌한 입 안을 맥주로 넘겼다그리고 턱을 괸 채 대답했다.

 

알려줬으면 넌 크리스 선배 만나러 갔을 거 아냐.”

당연하지!!”

근데 난 네가 선배랑 만나는 게 싫거든.”

 

할 말을 잃은 사와무라가 미유키 앞에 선 채로 굳었다칸막이너머로 주변을 슬쩍 둘러보고점원들이 서빙으로 바쁜 것을 확인한 미유키는 그대로 사와무라의 허리를 가볍게 껴안았다뒤늦게 반항하는 몸을 억지로 옆자리에 앉히고포옹했던 왼팔만 풀어내어 오른팔로는 단단한 허리를 휘감는다.

 

아까부터는 계속 다른 포수랑 잡은 아웃 얘기만 하고.”

아니그게….”

나더러 얼른 질투하라는 거야뭐야.”

 

뒷덜미가 붉어진 사와무라가 애써 시선을 피하다가 미유키가 맨투맨 안으로 손을 넣은 순간 빼액 소리질렀다.

 

그러는 미유키 너야 말로 여자들한테 쓸 데 없이 웃고 다니잖아!”

쓸 데 없이?”

가게 들어와서도!! 여자 직원한테 괜히 웃어주고!! 뭐하자는 거야!!”

 

슬금 슬금 배꼽 주위를 타고 올라오는 미유키의 손을 사와무라가 잡아채서 빼냈다아깝네하고 순순히 물러나는 척한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어깨로 팔을 올렸다.

 

쓸 데 없는 거 아닌데?”

그럼 뭔데!!”

너 질투하라고 하는 거.”

 

이번엔 정확하게 스트라이크다고개를 푹 숙인 사와무라의 귓가가 빨갛게 열이 올라 있다가볍게 어깨에 걸쳐 두었던 팔을 들어 뜨끈한 귓가를 지분거리자 아무 말도 못하고 으으으…. 하는 소리만 입술 사이로 내뱉는다미유키는 사와무라의 어깨에 걸쳤던 오른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완전히 힘이 빠진 듯 사와무라가 아까와는 달리 순순히 안긴다.

 

완전 유치해…”

유치하게 만든 게 누군데?”

진짜 싫어.”

왜 사와무라는 좋다는 말을 못할까~”

시끄럽거든!!”

 

 

대답 대신 볼에 와 닿는 입술에 미유키는 갈증이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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