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바늘은 벌써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미유키는 부엌 테이블 앞에 앉아 조용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가볍게 거실 쇼파로 던졌다. 아무 소리도 없이 쇼파에 파묻힌 휴대폰이 왠지 자기 꼴을 보는 것만 같아 미유키는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테이블 한쪽에 세워둔 샴페인과 오랜만에 꺼낸 와인 잔 두 개로 시선을 옮겼다가 그 가운데에 놓인 포장된 상자에 시선이 닿자 괜히 마음 한 구석이 꽁하니 굳어져 답답한 기분이었다.

 

잡은 물고기엔 이제 미끼를 안 준다 이거냐…”

 

허탈하게 혼잣말을 해보지만 오늘 저녁 생선 아닌데요? 하고 돌아오는 멍청한 대답은 없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미유키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3년 전 이 맘 때, 시선도 온전히 맞추지 못하고 바닥에 고개를 쳐 박고 있으면서도 초콜릿 상자를 내민 두 손만은 떨리지 않던 사와무라를, 미유키는 기억한다. 사와무라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후, 야구부원들끼리 예약한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가던 중 할 말이 있다고 교정 뒤편으로 미유키를 불러냈던 것도 그는 기억한다. 원래는 미유키가 졸업하던 작년에 고백하려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용기를 못 냈다고 했다. 올해가 지나면 영영 못 보게 될까 봐 덜컥 겁이 났다고도 했다. 9회 말 무사 만루에서 던지는 것마냥 부여 잡은 초콜릿 상자의 포장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서 미유키는 그 상자와 그 마음을 받아 들었다. 잔뜩 구겨진 포장지처럼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한 사와무라가 얼굴을 들었을 땐 웃어버리고 말았지만. 그 직후 사와무라는 왜 웃슴까!! 하고 외치면서 엉엉 울었더랬다.

 

미유키의 기억은 그 다음 해 발렌타인 데이로 이어졌다.

2년 전 이 맘 때, 손수 만든 초콜릿 케이크를 내밀던 사와무라를, 미유키는 기억한다. 선배는 단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럼주 넣어서 안 달게 만들었어요. 쑥스러운 듯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 조금 미안해졌던 것도 미유키는 기억한다. 기념일 같은 건 챙기지도, 따로 기억하지도 않는 미유키와는 달리 사와무라는 순 남자다운 성격과는 매우 다르게도 100일이니 200일이니 이것 저것 챙기곤 했었다.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는 미유키와 사와무라가 사귀기 시작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으니, 사와무라가 준비한 것은 대단했다. 꽤 괜찮게 구워진 스테이크를 자르며, 진득하니 달아 보였던 초콜릿 케이크를 한 입 먹으며, 미유키는 사와무라에게 마음 속으로 사과했다.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게 미안했지만 사와무라는 그런 미유키에게 괜찮다며 씨익 웃을 뿐이었다.

 

미유키의 기억은 그 다음 해 발렌타인 데이로 이어졌다.

작년 이 맘 때, 뮤지컬 A석 티켓 두 장을 내밀던 사와무라를, 미유키는 기억한다. 시간이 없어서 올해는 이걸로 퉁침다!! 하고 웃으면서 공연장으로 향했던 사와무라가 뮤지컬이 끝난 직후에는 눈이 새빨개졌던 것도 미유키는 기억한다. 그 날 저녁은 미유키가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미유키가 아는 후배가 못 가게 됐다며 넘겨준 것이었지만 사와무라는 꽤 기뻐 보였다. 레스토랑에서 발렌타인 데이 기념으로 나온 초콜릿을 깨물며, 같이 곁들어 나온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며, 미유키는 이 정도면 합격점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와무라는 간이 전체적으로 싱겁긴 했지만 맛있었다고 평하며 그 날 봤던 뮤지컬 얘기를 식사 내내 조잘 조잘 늘어놓았다.

 

그리고 미유키의 기억은 현재로 돌아왔다.

대학 야구부 선배들과 술자리가 있을 것 같다고 사와무라가 말을 꺼낸 게 이틀 전 아침이었다. 최대한 빨리 빠져 나오겠다고 약속하는 얼굴에 별로 신경 안 쓴다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미유키는 침착하게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분명히 먼저 고백한 것도 사와무라고, 더 정성을 쏟은 것도 사와무라일 텐데 언제부터 늘 여유 있던 자신이 전전긍긍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째깍 째깍 흘러가는 시계 소리를 배경 삼아 그대로 지난 3년 간의 연애를 반추하던 미유키는 부르르 울리는 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쇼파 쿠션 사이에 파묻힌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쇼파로 뛰어가듯 다가선 미유키가 휴대폰을 집어 들고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은 채 전화를 받았다.

 

[선배, 저 지금 갈게요~~]

어딘데?”

[? 집 앞!]

집 앞이라고?”

[, 이제 다 왔슴다~~]

 

한적한 주택가라고 생각할 수 없는 소음이 사와무라의 말 위로 뒤덮였다. 미유키는 쇼파에 걸쳐 두었던 코트를 한 손으로 주섬 주섬 껴 입었다. 휴대폰을 다른 손으로 옮기고 코트에 팔을 꿰는데, 사와무라가 혼자 신나서 말을 이어간다.

 

[선배! 초콜릿 뭐 사갈까요?]

거기 그대로 있어!”

[, 발렌타인 데이잖슴까! 초콜릿~~]

사와무라!”

 

한 쪽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차 열쇠와 지갑을 확인하고, 미유키는 운동화 뒤축을 밟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전화 건너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네엡! 하고 경쾌하게 대답하는 것과 함께 미유키는 시동을 걸었다. 휴대폰을 핸즈 프리로 전환하고 확인한 시간은 11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미유키는 급히 액셀을 밟았다. 역 앞 벤치에서 어느 초콜릿을 사 갈 지 혼자 의논하고 있을 바보 같은 연인을 오늘 중으로 데려오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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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짧은 글

연성/SS 2014. 2. 10. 13:59


스온 못 간 서러움 + 아거님 그림 보고 좋아서... (2014. 0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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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키는 방문을 열었다가 다짜고짜 튀어나온 그림자에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 섰다. 잔뜩 부루퉁하게 튀어나온 입술이 불만을 가득 담고 있었다. 미유키는 일단, 인사부터 해보기로 했다.

 

, 사와무라.”

 

평소와 같은 태평한 목소리에 사와무라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

뭐야,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지금 화가 안 나게 생겼슴까!!!”

 

어깨를 툭툭 치고 방 안으로 들어서는 미유키의 등에 대고 사와무라는 소리를 질렀다. 세탁해 온 옷가지를 대충 서랍장에 밀어 넣는 동안 왁왁대는 사와무라를 슬그머니 무시하며 미유키는 침대에 앉았다. 그새 쪼르르 따라와 계속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른다. 듣지 않아도 무슨 소리인 지 문을 열기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기에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오늘 투구 연습 없다며!! 오늘 불펜 안 쓸 거라고 했잖아!!”

그랬지. 근데…”

근데 왜 후루야 공은 받아주고 내 공은 안 받아줘!!”

그게…”

나도 추가 연습하고 싶다고!!!!”

 

침대에 앉아 있는 미유키를 내려다 보며 소리를 지르는 사와무라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쉿 하고 주의를 주자 사와무라는 앗! 하는 얼굴을 하며 잠시 조용해졌다. 그 틈을 타서 미유키는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갑작스레 진지해진 미유키의 눈빛에 무슨 일인가 싶어 당장 다가와 앉은 사와무라는 잔뜩 궁금한 얼굴이었다. 미유키는 목소리를 낮추고 상체를 숙였다.

 

이건 비밀인데…”

비밀요?”

, 그러니까 좀 가까이 와 봐.”

 

덩달아 갑자기 진지해진 사와무라가 두 뼘 정도 더 미유키 곁으로 붙었다. 그새를 놓치지 않고

미유키는 아직도 부루퉁하게 부어 있는 사와무라의 입술에 입술을 겹쳤다. 사와무라가 반항하며 입술을 꾹 닫자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턱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미유키는 압력에 저절로 벌어진 사와무라의 입 안을 삼키듯이 머금었다. 미유키의 방에 오기 직전 푸딩을 먹었던 건지 달달한 맛이 묻은 혀를 휘감자 반사적으로 마주 감아온다. 슬쩍 내다 본 시선 사이로 바르르 떨리는 몸이 눈을 감고 있어 미유키는 그대로 더 깊게 입술을 묻었다. 가지런한 치열을 천천히 쓸어올리다가 입천장을 건드리자 겹쳐진 입술 새로 사와무라의 억눌린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미유키는 완전히 몸이 풀린 사와무라를 침대 위로 눕혔다. 키스에 서툴게 응하며 꼭 감겨 있던 두 눈이 등이 완전히 침대에 닿자 어룽어룽한 물기를 품은 채 반짝 뜨였다. 천천히 입술을 뗀 미유키가 그대로 사와무라의 이마에 이마를 붙인 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키스는 너 말고 다른 사람이랑은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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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갈증

연성/글 2014. 2. 4. 07:43

출국 준비로 바쁘고 여기 와서는 일정이 바빠서.... 도 있지만 요즘 소비하고 싶어서 ㅠㅁㅠ 안 썼는데 리카르한테 영업한 게 넘 미안해섴ㅋㅋㅋㅋㅋㅋ 써 봤습니다 미안해 리카르님~~~ 

(현지시간 2014.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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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타자가 망설이는 게 보였슴다그래서 따악 결정구를 넣어줬죠!!”

 

그 때 그 타자 얼굴을 선배가 봤었어야 하는 건데!!

사와무라의 앞에 놓인 맥주잔은 여전히 툭 치면 쏟아질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거품이 조금 사그라들어 찰랑거리지 않을 뿐이었다빈 잔을 테이블 구석으로 밀어낸 미유키는 대강 대답해주며 앞에 앉은 사와무라의 맥주잔을 슬쩍 가져가 마셨다사와무라는 미유키가 자신의 잔을 가져간 줄도 모르는 듯 여전히 신나게 자신이 어떻게 다음 타자를 아웃시켰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취했나 싶을 정도로 쉴 새 없이 떠드는 건 사와무라인데 오히려 듣는 미유키 쪽이 목이 말랐다아니솔직히 말해서는 부글 부글 끓는 감정으로 목이 탔다일부러 맥주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아도 술 대신 이야기에 취한 사와무라는 이제 4회 말에 이루어낸 득점 – 사와무라의 번트가 큰 역할을 했다 – 로 주제를 옮겼다미유키는 다시 맥주잔을 잡았다.

 

대학 졸업 후 프로 선수 대신 취직을 선택한 지 일 년본격적으로 야구만 하던 시절을 버린 지도 이제 곧 이 년 즈음에 접어들은 미유키였다프로의 세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대학 시절에 깨닫고타자 대신 소비자를 쥐락 펴락하는 마케팅으로 시선을 돌린 건 미유키 자신이 생각해도 꽤 괜찮은 것이었고 적성에도 맞았다.그 대신프로 진출을 포기한다는 것은 사와무라와의 배터리를 공식전에서 이룰 기회를 영영 잃는다는 말과 같았다운명의 장난인지 미유키와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 사와무라는 매년 여름 꼭 한 번씩 미유키와 경기장에서 만나게 되었다배터리가 아니라 타자와 투수혹은 포수와 타자의 관계로처음 붙었을 때는 미유키의 학교가 이겼고그 다음 해에는 사와무라의 학교가 이겼다미유키는 그 해 이후로는 선수로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둘의 승패는 동점이었다미유키는 사와무라가 이겼던 그 날 밤확실히 자신이 이겼던 침대 위를 잠시 생각했다가 사와무라가 듣고 있냐며 떽떽거리는 바람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지금 선배 안 듣고 있죠!!”

응응듣고 있어~”

전혀 듣고 있는 얼굴이 아니거든!!!!”

 

아직도 욱하면 말이 짧아지는 버릇은 여전하군미유키는 물방울이 맺힌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며 화제를 자연스럽게 돌렸다.

 

그래서 그 번트가 통산 몇 번째 번트냐?”

…. 잠시만요… 한 번 세어 보게.”

 

왈칵 화를 낸 걸 그새 잊어버리고 기억을 곱씹어가며 손가락을 접는 사와무라 몰래 씨익 웃은 미유키는 우우웅울리는 진동 소리에 슬쩍 테이블 밑으로 휴대폰을 꺼냈다다섯…. 여섯…. 진지하게 번트를 헤아리는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잦아들기 전 메일을 보낸 미유키는 언제 그랬냐는 듯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시금 타들어가는 목을 맥주로 축였다… 열하나…. 손가락 대신 기본 안주로 나온 과자를 티슈 위에 올려 놓고 세던 사와무라의 휴대폰이 울린 건 미유키가 사와무라의 맥주를 절반도 넘게 비웠을 때였다.

 

실례하겠슴다.”

 

휴대폰을 들고 재빨리 일어선 사와무라가 잰 걸음으로 가게 밖을 향한다미유키는 외투도 챙기지 않고 나간 사와무라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와무라가 티슈 위에 올려둔 과자를 집어 들어 와작와작 씹었다싸하게 퍼지는 와사비 향이 코 끝을 찡하게 울렸다열 개 남짓 있던 과자가 모두 사라졌을 때 쿵 쿵 울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미유키!!!!”

 

사와무라의 고함 소리는 시끄러운 술집 안의 소음에 파묻혔다하지만 명백히 화난 얼굴은 미유키가 씨익 웃으며 누구야하고 물어도 사그러들지 않았다.

 

크리스 선배 일본에 온 거 알고 있었어?!!”

일단 내가 동창회장을 맡고 있으니까~”

그럼 이제 막 떠나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 전에 한 번 만나자고 하셨으니까~”

그럼 나한테는 왜 말 안 했어!!!”

 

이상한 존대도 선배라는 호칭도 집어 치운 채 거칠게 미유키의 앞에 서서 씩씩대는 사와무라를 흘끗 바라본 미유키는 과자 때문에 꺼끌한 입 안을 맥주로 넘겼다그리고 턱을 괸 채 대답했다.

 

알려줬으면 넌 크리스 선배 만나러 갔을 거 아냐.”

당연하지!!”

근데 난 네가 선배랑 만나는 게 싫거든.”

 

할 말을 잃은 사와무라가 미유키 앞에 선 채로 굳었다칸막이너머로 주변을 슬쩍 둘러보고점원들이 서빙으로 바쁜 것을 확인한 미유키는 그대로 사와무라의 허리를 가볍게 껴안았다뒤늦게 반항하는 몸을 억지로 옆자리에 앉히고포옹했던 왼팔만 풀어내어 오른팔로는 단단한 허리를 휘감는다.

 

아까부터는 계속 다른 포수랑 잡은 아웃 얘기만 하고.”

아니그게….”

나더러 얼른 질투하라는 거야뭐야.”

 

뒷덜미가 붉어진 사와무라가 애써 시선을 피하다가 미유키가 맨투맨 안으로 손을 넣은 순간 빼액 소리질렀다.

 

그러는 미유키 너야 말로 여자들한테 쓸 데 없이 웃고 다니잖아!”

쓸 데 없이?”

가게 들어와서도!! 여자 직원한테 괜히 웃어주고!! 뭐하자는 거야!!”

 

슬금 슬금 배꼽 주위를 타고 올라오는 미유키의 손을 사와무라가 잡아채서 빼냈다아깝네하고 순순히 물러나는 척한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어깨로 팔을 올렸다.

 

쓸 데 없는 거 아닌데?”

그럼 뭔데!!”

너 질투하라고 하는 거.”

 

이번엔 정확하게 스트라이크다고개를 푹 숙인 사와무라의 귓가가 빨갛게 열이 올라 있다가볍게 어깨에 걸쳐 두었던 팔을 들어 뜨끈한 귓가를 지분거리자 아무 말도 못하고 으으으…. 하는 소리만 입술 사이로 내뱉는다미유키는 사와무라의 어깨에 걸쳤던 오른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완전히 힘이 빠진 듯 사와무라가 아까와는 달리 순순히 안긴다.

 

완전 유치해…”

유치하게 만든 게 누군데?”

진짜 싫어.”

왜 사와무라는 좋다는 말을 못할까~”

시끄럽거든!!”

 

 

대답 대신 볼에 와 닿는 입술에 미유키는 갈증이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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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존잘 ㅇㄱ님이 미사와 연성을 던져 주셔서 저도 막 던지고 셜록 보러 간 글(?)

(2014.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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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잠깐 멈추고 연필을 내려놓은 사와무라는 잔뜩 써내려 가던 종이를 구겼다그리고 단단히 뭉친 종이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졌다아니 종이는 깨끗한 포물선을 그리며 쓰레기통을 향했지만 쓰레기통 테두리에 맞고 튀어나와 쓰레기통 주변을 데구르르 굴렀다.

 

아오!!”

 

사와무라는 짜증 섞인 소리를 한 번 지르고 의자에서 내려와 몸을 굽혀 종이를 주웠다너무 힘 줘서 썼던 걸까뭉친 종이 뒷면으로도 글자가 적혀 있을 부분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것이 느껴졌다그대로 방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사와무라는 구겼던 종이를 슬그머니 펴 보았다핑크색 하트 무늬가 여러 크기로 흩뿌려진 편지지는 건장한 남자 고교생이 손에 쥐고 있기에는 너무 화려했다입술을 깨문 채로 다시 종이를 와구와구 구긴 사와무라는 그대로 누워 버렸다.

 

이게 무슨 고생이야….”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빌렸던 만화책을 돌려주려고 향한 같은 반 여자아이의 자리는 꺅꺅대는 비명 소리로 가득했다다른 여자아이들까지 잔뜩 몰려 있는 모습에 만화책을 내려 놓으며 뭐야하고 묻자 사와무라 바로 옆에 서 있던 아이가 책상 위에 놓인 잡지를 가리켰다.

 

이번 달 잡지가 고백 특집이거든!’

 

마침 잡지를 가져온 여자아이가 페이지를 넘겼다별자리에 따라 한 달 운세를 이야기해주는 듯, ‘별들에게 물어봐’ 라고 적힌 코너가 책상 반대편에 서 있는 사와무라에게도 비록 거꾸로 된 글씨였지만 잘 보였다그리고 사와무라의 별자리가 가장 위쪽별 모양의 박스에 화려한 색으로 적혀 있었다그러니까 그건 절대로 다른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다른 여자 아이들이 이 잡지의 운세는 잘 맞는다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좀 거슬렸던 것뿐이었고사와무라의 별자리에 해당하는 것이 크게 써 있었던 것뿐이었다.

 

[오늘 당신의 연애운은 최고사랑하는 그이에게 편지로 고백한다면 달콤한 사랑은 꿈이 아닐지도?! 럭키 컬러는 핑크색♡]

 

 

 

 

사와무라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보 같아…”

 

연습을 끝내고 씻고 돌아와 다른 방에 놀러 간 쿠라모치가 돌아 오기 전 다 쓰겠다는 일념으로 연필을 집어 들었던 게 벌써 30분 전이었고 쓰레기통에 들어간 분홍색 편지지가 세 장이었다사와무라는 손에 들린 구겨진 종이를 빤히 바라보았다어차피 편지지는 이제 딸랑 한 장이 남았다모가 되든도가 되든 써 보고 마지막 한 장조차 마음에 안 들면….

 

그냥말하지 말자.”

 

사와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에는 신중하게 쓰레기통 앞에서 종이를 던져 넣었다쓰레기통 안이 핑크색으로 넘실거리는 꼴이 꼭 지금 자기 모습을 비웃는 것만 같아 속이 쓰렸다의자에 앉아 힘이 들어가려는 손을 몇 번 접었다 펴서 억지로 힘을 뺐다그래도 자꾸처음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졌던 때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만 같다사와무라는 연필을 쥐고 최대한 또박 또박, To. 부터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편지지 중반을 채울 때쯤 사와무라는 숙였던 고개를 조금 들고 뻐근한 어깨를 주물렀다입 속으로 여태까지 쓴 내용을 한 번 훑어 읽어본다네 번의 실패가 좀 도움이 된 것 같긴 했다힘을 주어 쓰다 보니 발갛게 손톱 자국이 남은 손바닥을 문지르며 사와무라는 한숨을 쉬었다.

 

편지로 고백하면 좀 더 쉬울 줄 알았는데…”

뭘 고백해?”

미 미유키!!!”

선배 붙이랬지.”

 

미유키가 사와무라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사와무라는 아야야소리를 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 사이를 틈 타 미유키는 사와무라가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던 책상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길래 문 열리는 소리도 못 듣고 하고 있어?”

미유키가… 아니 미유키 선배가 알 바 아냐!!”

여친한테 편지 쓰고 있던 거구만~”

 

잔뜩 당황한 얼굴인 사와무라가 책상을 가리려고 들었지만 미유키의 손이 더 빨랐다.

 

핑크색 편지지라… 의외로 소녀 같은 부분도 있네.”

그거 돌려줘!!”

선배한테 자꾸 반말 쓴다 이거지?”

 

홱 낚아챈 손에 들린 편지지를 잡으러 사와무라가 벌컥 일어섰다하지만 미유키는 이미 편지지를 읽기 시작한 후였다.

 

“To. 미유키 선배….”

그거 내놔!!!”

 

사와무라의 손이 편지지를 스쳐 지나가 미유키의 안경에 닿았다얼결에 안경을 벗겨낸 사와무라는 미유키가 첫 부분을 반복해서 읽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갑자기 눈 앞이 흐려져 초점을 맞추기 위해 잔뜩 인상을 쓰던 미유키도 그제서야 상황을 깨달았다흐릿한 시야 너머고개를 숙인 사와무라가 보였다귀 끝이 새빨갛게 불타고 있다.

 

여자친구한테 편지 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손에 들린 편지지를 빼앗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굳어 있는 모습이 딱 사와무라답게 바보 같아서 미유키는 편지지를 접어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그리고 사와무라에게 다가갔다.

 

저기사와무라?”

“…..”

나는 말로 고백해주는 게 더 좋은데.”

 

슬그머니 사와무라의 손에 잡힌 안경을 빼내고손에 닿는 감촉에 놀라 고개를 든 사와무라에게 여유 있게 웃어 보인다.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을게내일.”

 

 

점심 같이 먹자고안경을 제대로 쓴 미유키는 그대로 5호실을 나갔다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에야 번쩍 고개를 든 사와무라는 그제서야 미유키가 한 말을 곱씹다가 얼굴이 시뻘겋게 된 채 빽 소리를 질렀다복도를 걷던 미유키는 으아아아악!! 하는 사와무라의 외침과 양 옆호실에서 시끄러워하고 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종이 뒤편으로도 글자의 요철이 느껴질 만큼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이 분홍색처럼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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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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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키가 씻고 나왔을 때엔사와무라는 몸을 대강 웅크린 채 이불도 덮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다행히 히터를 틀어둔 방 안은 훈훈한 기운이 감돌아 근육통이라면 모를까 내일 아침 감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흠흠흠오늘 집에 오는 길에 거리에서 들었던 노래를 어설프게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미유키는 침대 가에 최대한 소리를 죽여 앉았다동그랗게 웅크린 등을 따뜻한 손으로 살살 쓸어주자 불편하게 굳어 있던 몸이 자세를 바꿔간다.

 

이거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말을 알아 들은 것인지 그냥 잠투정인지 우으…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진짜 자냐?”

 

베개 위에 늘어진 오른쪽 볼 대신 왼쪽 얼굴을 쿡 찌르자 사와무라의 얼굴이 팍 인상을 썼다미유키는 킥킥킥 소리 죽여 웃으며 검지와 중지로 주름을 쭈우욱 폈다평소보다 더 바보같이 풀어진 얼굴에 결국 미유키는 침대 구석에 있던 이불로 입을 막은 채 한참 웃었다.

 

후우우미유키는 진정하기 위해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씻는 김에 만들어 온 물수건을 그릇에서 들어올렸다.일부러 좀 뜨겁게 데워온 것이 그사이 조금 식어 딱 좋은 온도가 되어 있었다물을 한 번 짜내고 무방비하게 누운 몸에 수건을 조심스레 갖다 대자 사와무라가 물기에 놀란 듯 퍼드득 몸을 뒤틀었다.

 

물 싫어하는 거 보면 진짜 고양이라니까.”

 

공 좋아하는 거 보면 개과인데침대맡 선반에 떡하니 놓인 사인볼을 흘낏 보고시선을 다시 사와무라에게로 내렸다악몽을 꾸는지 연신 얼굴이 구겨져 있다.

 

이번엔 안 놀라게 살살할게.”

 

고양이를 달래듯 턱을 살살 간질이자 몸을 다시 웅크린다.

 

어허또 웅크린다.”

 

어느새 근육이 완전히 자리잡은 복부에 수건을 올리니 이번엔 상체를 확 펴는 대신 배를 둥글게 말았다.

 

여긴 닦아야 할 거 아냐!”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몸을 다른 한쪽 팔로 살짝 붙잡고 말라붙기 시작하는 자국을 부드럽게 닦아냈다따스한 물수건의 감촉이 익숙해지자 나쁘지 않은지 웅크렸던 몸이 스르륵 풀어진다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말끔하게 닦아낸 미유키가 몸을 숙였다그리고 그대로 킁킁냄새를 맡는다.

 

땀냄새가 좀 나긴 하는데…”

 

방금 전 씻고 나온 자신과 안 씻고 잠들어버린 사와무라엉망이어서 벗겨내어 던져버린 시트와 손에 쥔 물수건을 한 번씩 바라본 미유키는 흠하고 고민하다가 물수건을 시트 위로 던졌다철퍽소리가 났다.

 

땀냄새야 질릴 만큼 맡아봤고사와무라 너도 귀찮지?”

 

흐음…. 잠꼬대를 대답으로 완벽하게 인식한 미유키가 침대에서 일어나 전등 스위치를 껐다시트를 피해 요리조리 침대로 다가와서는 안경을 벗어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두고 그냥 사와무라의 곁에 눕는다.

 

이렇게 애프터 서비스 해주는 게 쉬운 줄 아냐.”

 

오늘은 이 정도로 봐주라미유키는 한쪽 팔로는 사와무라를 꼬옥 안고다른 쪽 팔로는 침대 구석에 있던 이불을 끌어 올려 두 사람의 몸을 한 번에 덮었다고개를 파묻은 사와무라의 쇄골 근처에서 시큼한 향이 언뜻 코 끝을 스쳤지만 그대로 몇 번 잘근잘근 씹은 채로 미유키는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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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사와 영업한 모 존잘님이 잘못하셨네 

항의는 존잘님께 하시는 걸로....

(2014.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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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체인지업 던질 수 있다며.”

던질 수 있거든!!”

 

나루미야는 그대로 열다섯 걸음 뒤로 멀어졌다대강 홈에서 마운드까지의 거리를 계산한 듯 했다사와무라가 당장이라도 던질 듯이 씩씩댔다투수 주제에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난다니까나루미야는 글러브를 팡팡 쳤다.

 

그럼 한 번 던져 보든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 사와무라의 투지를 완전히 건드린 듯 했다으아아!!! 잡기만 해 봐!!! 사와무라가 외치는 소리가 작은 공원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거 왠지 연인들끼리 해변가에서 나눌 애기 같은데.’

폭투하는 거 아냐?”

 

애써 마음에 없는 말로 도발하며 피식 웃자 사와무라가 고양이 눈을 치뜬다그리고 예고 없이 공이 날아왔다쭉 뻗다가 갑자기 속도가 느려지며 꺾이는 공에 나루미야가 시선을 빼앗긴 사이 공은 나루미야를 스쳐 지나가 옆으로 데구르르 구른다배트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게 아쉬운 공이었다.

 

헤헹못 잡았지?”

 

자신만만한 얼굴이 모자 밑에서 빛난다이것도 카즈야 녀석이 가르친 건가기분 나쁘게 웃는 얼굴이 떠올라 나루미야는 표정을 구겼다.

 

오케이한 번 더!”

카즈야 녀석이 잘 해주나 보네~”

?!”

 

자기 혼자 불타서 한 번 더 던지겠다고 포즈를 취하는 사와무라의 등 뒤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아 괜히 던진 말에 사와무라가 잔뜩 허둥댄다포즈가 무너진 채 뭐선배가나한테를 반복하는 얼굴이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느낌이다나루미야는 묵직한 직구를 던지기로 했다.

 

둘이 사귀는 거 아니었어?”

???”

하긴 사귄다고 치기엔 케어가 부족한 느낌이었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주억거리는 나루미야를 바라보는 얼굴이 잠시 물음표를 띄우다가 의미를 알아 듣고 시뻘겋게 변한다스트라이크네나루미야는 사와무라를 살살 꼬여내 공원으로 향할 때의 미유키의 표정을 떠올렸다자식을 물가에 내놓은 것 마냥 안절부절 못하던 모습에 그냥 확 사와무라의 팔을 끌고 나왔다물론 사와무라도 변화구 얘기를 꺼내자마자 벌떡 일어나긴 했지만.

 

카즈야 그 자식스트라이크는 잘 만들더니 정작 본인이 스트라이크 존에 못 넣잖아?’

 

나루미야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공을 꺼내어 던졌다반사적으로 날아오는 공에 반응해 손을 뻗는 사와무라에게 가벼운 변화구를 던져 본다.

 

그럼 나는 어때?”

네가 뭐?”

카즈야 말고 나랑 사귀는 거 어떻냐고.”

 

 

뭐어어어!!!! 나루미야는 마운드에서 짓곤 하던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웠다이번에도 스트라이크 존에 제대로 들어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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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썼던 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에이준 시점입니다.

(201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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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졸업식을 하루 앞둔 교내는 다들 조금씩 들떠서 산만했다졸업식 연습 이전에 담당 구역 청소를 끝내야 한다는 말에 반 아이들 전체가 달려 들어 맡은 구역을 쓸고 닦았다나는 야구부라는 명목으로 따로 담당한 구역이 없었기에 카네마루와 함께 교실 밖으로 내쫓겼다청소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시계를 보니 3학년들이 강당에 모여 있을 시간이었다마침 강당 쪽에서 취악대의 공연 소리가 흘러 나온다나는 바지자락에 잔뜩 땀이 찬 손을 닦았다.

 

그렇다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한 번 더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쪽지에 적어 두었던 시간에 맞추어 학교 뒤편으로 향했다메마른 가지에 겨우 매달린 꽃봉오리가 바람에 흔들린다이제 새로운 봄이 시작된다그가 없는 팀과 함께잔뜩 긴장한 마음을 끌어안고 바닥만 보고 있었던 순간내 앞에 멈춰서는 기척이 났다나는 고개를 들었다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을 한 채그가 내 앞에 서 있었다한동안 아무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배를 좋아해요.”

“…..”

받아주지 않으셔도 됨다.”

 

오랜만에 내는 목소리에 입 안이 거슬거슬하다그의 대답이 없어 재빨리 한 마디를 덧붙였지만 그는 여전히 조용했다조그만 기대와 그보다 큰 불안이 손 끝에서부터 어깨까지 슬금슬금 타고 올라오는 기분에 나는 떨리기 시작한 손을 꽈악 쥐었다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힘을 준 손을 바라보던 그가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의 눈빛 또한 내 손처럼 떨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나는 잠시 숨을 들이켰다.

 

그러면?”

그냥선배의 넥타이를 받고 싶슴다.”

넥타이?”

기념으로 받고 싶슴다여긴 가쿠란이 아니니까 두번째 단추를 받을 수 없잖아요.”

 

그쵸일부러 가볍게농담처럼 던지려던 말 끝이 잔뜩 떨린다나는 고개를 숙였다손 끝에서말 끝에서 시작된 떨림이 온 몸에 퍼지는 감각이 낯설다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숙인 시선에 그의 손이 보였다.목 아래를 부드럽게 오가는 손이 단정하게 넥타이를 매주었다.

 

“…… 감사함다.”

나도사와무라 널 좋아했어.”

“……”

앞으로도 응원하마.”

선배도미국에서 잘 할 거라 믿슴다.”

 

그가 나를 지나쳐간다내 곁을 스치는 그 순간고마워하는 그의 말 한 마디에 나는 떨리는 마음을 그대로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계속 그 한 마디만이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억지로 발걸음을 옮겨 학교로 향하는 내 팔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그 넥타이누구 꺼야?”

“…… 미유키 선배.”

누구 꺼냐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선배가 내 셔츠 아래에 매여 있던 넥타이를 풀었다그리고 선배가 매고 있던 넥타이를 풀더니 내 손에 쥐어주었다나는 이를 악물었다.

 

선배뭐하는 검까!!!”

내 꺼 써.”

?”

내 꺼 쓰라고이거 말고.”

 

선배가 소각장으로 향한다그리고 내가 매고 있던그의 넥타이를 집어 던졌다나는 다시 이를 악물고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참았다.

 

기숙사 가면 네 넥타이 나한테 줘.”

“…… 선배.”

안 그러면 내일 학년 주임한테 걸린단 말야♡

“……”

이따 연습 시간에 보자.”

 

선배가 소각장 옆에 놓여 있던 쓰레기통을 들고 학교 쪽으로 사라졌다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내 마음을그리고 그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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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키가 한 살 어리다는 설정으로!! 

(201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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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안으로 뜨거운 환성이 쏟아졌다마운드 위에 선 투수가 한 번 심호흡을 하더니 곧 팔을 휘둘렀다그 순간 미유키 카즈야는 고민하던 것을 내던졌다.

 

미안하게 됐다메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너랑 배터리 못 짤 것 같아.”

 

저 선수가 있는 팀으로 갈 생각이거든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난 미유키는 먼저 간다는 말 한 마디와 함께 사라졌다혼자 남겨진 나루미야 메이는 영문을 모른 채 사라지는 그의 등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

 

 

 

그렇게 밟게 된 세이도 고등학교 야구부의 그라운드는 시니어 시절과 비교해서 썩 나쁘지 않았다미유키는 견학 차 잠깐 들린 세이도의 분위기를 살폈다실전을 상정해서 진행하는 듯 연습 내내 긴장감이 그라운드를 가득 채운 것이 인상적이었다미유키의 옆에서 학교를 안내하던 타카시마는 이리 저리 둘러보는 미유키의 반응에 내심 안심했다다른 강호교도 그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차라 조금 서둘렀을 뿐인데 대뜸 학교에 가 봐도 되냐고 묻는 그의 말에 냉큼 데리고 와 버렸다그라운드에서 연습하던 선수들에게서 시선을 뗀 미유키가 저기질문이 있는데요하고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투수가 몇 명이죠?”

전체?”

아뇨, 1군에 한해서요.”

“3학년 에이스였던 탄바 군은 제외하고, 2학년 구원투수 카와카미 군, 1학년 에이스 후루야 군이렇게 총 두 명이야.”

 

미유키는 경기장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이름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구속이나 구위가 전에 던졌던 선수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걸로 보아 에이스는 아니었고그렇다고 이름에 ’ 가 들어갔던 것 같진 않았는데

 

그러면 지난 번 시합에서 마지막 이닝을 던졌던 선수는요?”

사와무라 군사와무라 군은 2군이야.”

 

용케 아네하지만 미유키 군은 입부 즉시 1군으로 선발될 텐데타카시마는 1군용 그라운드를 가리켰다.

 

“1학년에서부터 1군으로 선발되는 기회는 몇 없어그만큼 미유키 군의 재능을 높이 산다는 거야.”

…. 근데 그 사람은 왜 그 시합에서 던진 거죠?”

우리는 아직 절대적인 에이스가 없는 상황이야카와카미 군을 구원 투수로 쓰고 있지만 위험한 상황에서는 카와카미 군보다는 사와무라 군에게 기대는 편이고.”

 

감독님도나도 그가 가진 재능의 뿌리는 굉장하다고 생각하니까타카시마의 말에서 묻어 나오는 일말의 아쉬움에 미유키는 대강 눈치챘다아직 피지 못한 꽃봉오리하지만 봉오리만으로도 이 꽃밭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내보이는 꽃이라두근거리기 시작하는 심장을 억누르며 미유키는 타카시마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2군의 연습은 끝났을 텐데 누군가가 2군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었다타카시마가 2군 그라운드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기를 권했다.

 

올해 우리 주전 포수가 졸업해.”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 말이군요.”

그가 다 키워 내지 못한 재능을미유키 군이 피워 내 줬으면 좋겠어.”

왜죠?”

미유키 군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선망하던 대상이 미처 다 키우지 못한 꽃자신의 손으로 아직 아무에게도 보인 적 없는 그 꽃을 피워 낸다.벌써 드리우는 노을을 배경으로 아직도 그라운드에서는 누군가가 뛰고 있다타카시마와 미유키가 앉은 벤치와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유키는 푸하핫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핫지금 저거 타이어에요?”

보다시피.”

누가 요즘도 타이어를 끄나 했는데하하하하!”

 

타카시마는 미유키가 마음껏 웃도록 내버려두었다타이어가 그라운드 반 바퀴를 돌았을 쯤에야 가까스로 웃음을 멈춘 미유키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그래서 미유키 군의 대답은?”

제가 말 안 했던가요이 학교로 정했다고.”

 

미유키는 기대감을 꿀꺽 삼켰다.

 

타이어만 끄는 미련한 선배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노을에 비친 그림자가 그라운드에 길게 늘어진다.

 

 

저도 기대하고 싶어지는 꽃봉오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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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캐치볼

연성/글 2014. 2. 4. 07:35

너 누구 좋아해? 너 야 아니 장난 치지 말고 너 좋아해 아 진짜 좋아하는 사람 말하라니까 너 좋아한다니까 미친넘아 언제까지 장난 칠건데 제대로 대답을 하라고 니가 나도 라고 말할 때까지

를 트위터에서 보고!! 미사와 느낌이 너무 강하게 와서!!!! ㅠㅠㅠ 얘들아 왜 이브에도 야구하니... 엉엉엉

(201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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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까지도 훈련이라니노을이 지는 그라운드를 배경으로 해산하기 시작한 몇몇 부원들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사와무라는 개의치 않고 공을 던졌다파앙-! 글러브를 울리는 소리가 썩 마음에 든다.

 

지금 공 어땠슴까!! 꽤 괜찮은 것 같은데!!”

자세가 흐트러졌어다시!”

 

휘익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글러브 안으로 공이 돌아왔다사와무라는 자세를 바로 잡고 심호흡을 한 번 했다캐치볼한다고 하지 않았냐… 배트를 정리하던 카네마루는 지적해주고 싶은 사실을 꾹 참았다사와무라가 신난 듯이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대강 가방을 챙긴 카네마루는 신난 동기와 웬일인지 묵묵히 공을 받아주는 선배를 바라보고 외쳤다.

 

사와무라 너 이따가 저녁에 나 부르면 죽는다?”

!”

크리스마스 이브잖아넌 가족도 애인도 없냐여튼 선배사와무라저는 갑니다!”

 

네 연습에 어울려 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어야지…. 툴툴거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애인공 던지기에만 열중하던 사와무라의 머리 속에 물음표가 하나 떠올랐다.

 

미유키 선배는 애인 없슴까저랑 연습하고 있게.”

신경 쓰여?”

~전혀!!”

 

야구공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속도감 있게 날아가 미유키의 글러브 안으로 안착한다미유키가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 다시 던졌다.

 

너야말로 애인이 있다고 하면 놀라겠지만!”

뭐 하시는 검까!!”

 

사와무라를 지나쳐 간 공이 그라운드 근처까지 날아갔다갑자기 왜 힘 넣어서 던짐까!! 저도 제 진심을 보여드릴까요!! 공을 주우러 쪼르르 뛰어가며 사와무라가 투덜거렸다.

 

네 진심이 뭔데?”

뭐라구요?? 안 들림다!!!”
됐다얼른 던져!”

그것 참 멀리도 던지셨네…”

 

미유키가 하는 말까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거리를 다시 돌아온 사와무라가 가볍게 공을 던졌다 놓아 받기를 반복했다꼭 마운드 위에 서 있을 때와 같은 모습에 미유키도 베이스에 있을 때와 같이 자세를 낮추었다.

 

그러는 선배는 좋아하는 사람 있슴까!”

 

얼핏 힘을 주어 던지나 싶더니 곧 속도가 느려지는 공을 여유롭게 잡아낸 미유키가 씨익 웃었다두번째로 만났던 날지각한 것을 걸리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웃던 얼굴과 흡사한 모습에 사와무라는 미유키의 폭투를 예상하고 슬그머니 세 걸음 정도 물러났다.

 

넌데?”

 

직구로 날아온 공이 언제 멀리 날아가기라도 했냐는 듯 입을 벌린 사와무라의 글러브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사와무라는 헉 하고 굳었던 몸을 얼른 풀고공을 던지며 대답했다.

 

장난 치지 마십쇼!!!”

 

힘이 들어가지 못한 공은 미유키가 있는 곳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힘없이 중간에 떨어져 굴렀다굴러오는 공을 앞으로 몇 걸음 나와 받은 미유키가 반사적으로 글러브를 벌린 사와무라 쪽으로 부드럽게 던졌다.

 

너 좋아해.”

 

이번에도 부드럽게 글러브에 들어온 공을 잡고 부들부들 떨던 사와무라가 폭발하듯 붉어진 얼굴로 거세게 팔을 휘둘렸다.

 

아 진짜!! 좋아하는 사람 말하라니까요!!!”

 

미유키는 자신을 지나쳐 날아가려는 공을 팔을 뻗어 가볍게 잡아냈다이런사와무라폭투잖아그렇게 부끄러워직접 말했다간 그대로 사와무라가 글러브를 던지고 도망칠 것 같아 꿀꺽 하고 싶은 말을 삼킨 미유키는 두 걸음 앞으로 걸었다그리고 다시 사와무라의 글러브를 향해 공을 던졌다.

 

너 좋아한다니까.”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 결국 사와무라가 글러브를 벗어 던졌다미유키도 글러브를 벗고 사와무라 쪽으로 세 걸음걸었다그라운드 위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공이 데구르르 굴러 갔다.

 

미친 놈아 언제까지 장난 칠 건데!! 제대로 대답을 하라고!!!”

 

미유키는 한 걸음 앞에서 잔뜩 흥분해 선배고 뭐고 잊어버린 채 소리치는 사와무라에게 다가갔다붉어진 얼굴이 추운 날씨 속에 김이라도 나올 것 같다미유키는 사와무라를 와락 껴안았다.

 

네가 나도 라고 말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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